나와 친한 아저씨 사원님은 친해진 이후 우리에게 늘 입버릇처럼 말하셨다
"여기 물류 센터에서 남자 만나지 말아~ 너희가 걱정돼서 하는 소리여~"
나와 여동생들은 다들 까르르 웃으며 대답했다.
"저희도 물류 센터 다니는데요ㅋㅋㅋㅋ"
"아니야~ 여자애들이랑 남자애들은 달라~"
"아이고 생기지도 않아요~'
그런데 이변이 일어났다. 어느 날 친한 동생에게 남자친구가 생긴 것이었다.
그 이후로 계속 물류센터에서 일하면서 수많은 커플들을 보았다. 포장사원과 간접사원, 사원과 지게차사원, 포장사원과 PS사원, PS사원과 관리자, 관리자와 사원, 심지어 관리자와 결혼한 매니저도 있었다. 전쟁터에서도 아이는 태어난다고 하지만 이 힘든 물류센터에서도 수많은 여자와 남자들이 모이다 보니 결국 사랑하는 마음은 통제할 수 없는 건가 보다. 수많은 커플들이 생기는 것도 보았고 깨지는 것도 보았고 오랫동안 서로 의지하고 도우며 힘든 물류센터 일을 이겨내는 것도 보았다. 함께 성장하는 모습도 보았고 함께 망가지는 모습도 보았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그 힘든 육체노동 속에서도 짝을 찾고 사랑을 한다. 시간이 좀 흐르고 보니 정말 이미 결혼한 사람 빼고 다 연애하는 것 같았다. 연애는 나이를 가리지도 않는다. 20대, 30대, 40대와 50대 커플도 보았다.
새로운 커플의 탄생은 어느 날 들리는 소식들로 퍼진다.
"저기 저 사원님, 지하 1층 그 새로 온 관리자랑 사귄대~"
"언니~! 나 ㅇㅇ사원님이랑 사귀어~!ㅋㅋㅋㅋ"
"너 그거 아니? 그 단기 사원님이랑 ㅇㅇ관리자랑 사귄대~!"
다들 어쩌면 그렇게 다들 몰래몰래 잘도 사귀는지 새로운 커플 탄생은 어느 날 들리는 소식들로 모두가 알게 된다. 그리고 대부분 좋은 물류센터 사람들은 티 내지 않고 커플들을 도와주고 응원해주곤 한다.
물류센터에서 시작되는 사랑은 사실 별 것 아닌 일상적인 대화와 따뜻한 도움이다. 포장으로 바쁜 여자 사원들에게 간접사원들이 말없이 추가 종이 박스를 가져다준다거나, 주변을 맴돌다 말을 걸며 친해진다거나 하는 그런 소소한 일들로 시작된다. 힘들고 지치는 노동 속에서 그런 작은 도움들로 사람들은 하루하루를 버티고 힘을 얻곤 한다. 그저 그곳에 그 사람이 함께 열심히 일하고 있다는 것, 서로의 존재로 힘을 얻고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아갈 힘이 난다면 그걸로 충분한 것이 아닐까. 수고하셨다는 말, 무리하지 말라며 도와주는 손길, 미소와 웃음. 그냥 그런 소소한 것들이 사람들이 서로 친구가 되게 하고, 연인이 되게 하는 것이 아닐까. 사람들은 아무리 힘든 상황 속에서도 서로를 돕고 사랑할 수 있다. 화려한 배경에서 좋은 옷을 입고 우아한 식사를 하는 연애도 있다. 하지만 먼지 구덩이에서 함께 물건을 들고 나르며 땀범벅이고 엉망인 몰골이지만 그런 서로를 보고도 웃을 수 있는 연애야말로 사실 흔치 않고 진짜 사랑일 수도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나도 힘들고 발이 아프지만 상대를 위해 더 뛰어주고, 나도 지치고 어렵지만 너를 위해 더 마음을 써주는, 소소하지만 참 진실한 사랑들이다.
혹시 모를 커플들의 팔이 안으로 굽는 일들을 방지하기 위해 특히나 관리자와 연애하는 사람은 다른 층으로 가서 일하게 하는 등 상급 관리자들을 조용히 일부 커플들은 거리를 두도록 하기도 한다. 이러한 조치에 대부분의 사원들도 동의하고 따른다. 점심시간, 쉬는 시간, 출퇴근 시간이 그러한 커플들에겐 소중한 시간이 된다. 점심때 같이 밥 먹는 커플들을 통해 누가 누가 연애하는지를 알게 되기도 하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관리자들의 우려와는 달리 사랑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더 위험을 감수하고, 더 힘든 일을 앞장서서 떠맡으려 솔선수범하는 모습을 나는 많이 보았다. 나 때문에 상대방이 혹시라도 누군가에게 미움받지 않도록, 더 뛰고 더 달리는 그런 아름다운 커플들이 더 많았다.
누군가는 물류센터나 직장에서의 사내연애를 좋게 보지 않지만, 나는 오히려 사랑의 힘이 이 힘들고 거친 일들을 견디고 이겨낼 원동력이 된다고 생각한다. 서로 돕고 이해하고 마음 맞는 사람들과 친구가 되듯 연인이 될 수도 있는 게 죄나 잘못은 아니지 않을까. 어디에서 만났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어차피 바깥세상이든 물류센터 든 세상은 가혹하고, 알 수 없는 곳이다. 그저 진실되게 서로를 사랑하고 서로의 영혼을 구원할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천국에서도 힘들고 미워하면 그곳이 지옥이다. 진짜 지옥에 있다 하더라도 지옥에서도 서로를 구원하면 그들은 구원받는 것이다. 그리고 그 구원은 서로에 대한 작은 관심과 배려, 사랑일 것이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