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 물류 센터 : 7. 워터, 그들이 지는 삶의 무게
7. 사실, 좋지만은 않은 순간들 : 워터, 그들이 지는 삶의 무게
출고에는 간접사원(일명 워터)님들이 있다. 원래 물류센터에서 가장 신체적으로 힘든 분야는 허브(상하차)로 유명한데, 내가 보기에 그다음으로 힘든 게 출고의 워터 사원님들이다. 무겁고, 힘든 일은 다 하지만 허브만큼 돈을 더 받지도 않는다.(센터에 따라 워터 분들에게 추가 수당을 주는 곳도 있다고는 들었는데 내가 일하는 센터는 없다) 그래서 내가 일하는 센터는 워터는 젋거나 튼튼하거나 힘이 센 남자 사원님들만 하신다. 나는 여자 사원이지만, 간접사원 님들에게 더 좋은 혜택이나 수당을 주어야 한다고 하면 대찬성이다. 허브만큼 돈을 더 받는 것도 아닌데 그분들은 응당 더 좋은 대우를 받을 자격이 있다.
내가 직접 해본 것은 아니지만 그냥 옆에서 보고만 있어도 워터 분들은 정말 힘들어 보인다. 업무 자체가 무겁고 힘들고 강도가 세다. 싱귤의 워터 분들은 물건이 가득 찬 라지카트들을(라지카트는 빈 카트만 하루종일 끌어도 여자인 나는 어깨가 나갈 것 같았다) 하루종일 끌어서 포장 사원님들에게 갖다주고 빼주는 일을 쉴 새 없이 반복한다. 보통 10명의 포장사원님들의 카트를 워터 한분이 다 보조해 주시는 것 같다. 익숙해진 분들은 가득 찬 라지 카트 2개를 동시에 끌거나 5개 카트를 줄 세워 밀기도 하는데 그럴 때면 정말 눈이 휘둥그레진다. '저게 끌어져?''저게 밀려?' 그들을 볼 때마다 내가 드는 생각이다. 나는 가끔 하나만 끌어봐도 너무 무겁고 힘들다. 오토백 워터분들은 강도가 더 세다. 적게는 5킬로, 심하면 20킬로씩 든 토트를 하루에 최고 100개 이상을 들어 포장사원들의 포장대로 갖다 준다. 그 무거운 토트들을 하루종일 들고 내리는데 끄는 카트도 아니고 말 그대로 워터분들 본인의 허리와 무릎을 갈아서 일을 해주시는 수준이다. 다른 간접사원님들도 사람키보다 높이 쌓인 토트나 종이상자들을 랩핑 해서 끌고 다니시는데 저렇게 무거운 걸 어떻게 하루종일 끌고 다니시나 존경스럽다. 친한 아저씨 말로는 막노동도 가면 쉬는 시간, 낮잠 시간이 있다는데 물류센터 워터들은 쉬지 않고 업무 시간 내내 그 일을 한다. 단기로 처음 온 분들은 하루 워터 하고 나면 다음날 아파서 못 나오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그들이 약해서가 아니라 정말 말 그대로 신체적 업무 강도가 상상을 초월한다. 말 그대로 '약한 자는 살아남지 못하는' 업무가 워터이다.
그래서 오래 워터를 하신 분들은 정말 사람들이 말하는 '진정한 남자'에 나는 가깝다고 본다. 물론 이제 세상은 변화했고 남성다움이나 여성다움을 강조하는 건 고리타분하고 구시대적인 발상이라는 것은 알지만, 각자가 가진 특성을 인정한다는 점에서 본다면 센터의 워터 분들이야 말로 정말 멋진 남자분들이다. 그분들은 무겁고 힘든 일들을 두려워하지 않고 뛰어들고, 오랜 시간의 고생들을 인내하고, 남들의 편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며(워터, 간접사원이라는 명칭부터가 직접사원(포장, 집품)들을 도와준다는 의미가 있다.) 그러면서 동시에 친절하고 사실 똑똑한 분들이다. 단순히 힘만으로는 워터 업무를 오래 할 수가 없다. 어떻게 토트와 카트들을 공평하게 사원들에게 분배할지 결정하고, 마감 시간에 맞춰 시간 별로 물건을 정리하며, 동시에 포장이나 집품 사원들을 보조하기 위해 그분들의 편의를 봐주는 눈치도 필요한, 말 그대로 힘과 머리가 다 필요한 문무를 다 갖춘 분들이다.
그래서 그런지 내가 일하는 센터는 워터분들의 승진이 빠르다. 나는 단기로 와서 워터를 하시던 분이 몇 달 만에 관리자까지 승진하는 것도 보았다. 그분의 능력도 뛰어난 것이기도 하고, 나는 워터 분들은 이런 혜택을 받는 것이 맞다고 본다. 정말 그분들의 일이 너무 고되다. 그리고 이건 나의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워터 출신 관리자님들은 말 그대로 일반 사원들의 '고생을 이해한다'. 자신들이 가장 힘들고 어려운 일들을 했기 때문에 오히려 일반 사원이나 다른 워터들의 고생을 알고, 공감하고, 이들을 배려하고, 조금이라도 더 나은 환경에서 일하게 해 주려 노력하며 '사람을 아낀다'. 다른 일반 관리자들보다 자신의 힘든 때를 기억하려는 태도를 더 갖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내가 처음 오토백을 배울 때, 자주 오토백 워터를 해주던 젊은 남자애가 있었는데, 그 아이는 오토백을 할 줄 알아서 내가 롤백을 못 갈거나 버벅 댈 때마다 도와주었다. 매번 '아이고 사원님, 또 안 돼요?'라고 장난을 치며 와서 도와주고 가르쳐 주었는데 덕분에 나는 그 사원님에게 오토백을 다 배웠다. 그 사원님이 오토백을 할 줄 몰라서 안 하는 게 아니다. 할 줄 알지만, 사실 관리자님들의 배정에 의해 남자분들이 여자분들에게 좀 더 몸이 편한 일을 양보하게 된 셈이었다. 지금까지도 정말 그 사원님에게 감사하게 생각한다. 그 사원님이 오토백 워터를 하다가 나에게 종종 '배고파요', '힘들어요'라고 하곤 했는데 그때마다 나는 내가 도와주거나 해줄 게 없어서 초콜릿이나 사탕을 준비해 뒀다가 주고는 했다. 정말 고맙고 미안한데,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없었다. 그저 누군가는 여자로 태어났고, 누군가는 남자로 태어났는데, 똑같이 물류센터에 와서 분배된 일이 이렇게 다르니 내 입장에서는 그저 미안하고 고마울 따름이다. 그러나 대부분 워터님들은 쿨하다. 일이 힘든데도 포장 사원님들의 입장을 배려해 주고 도와준다. 정말 남자답고 기사도가 느껴지는 좋은 청년들과 아저씨들이다. 워터를 오래 하신 분들 치고는 정말 인성이 나쁜 남자분들 단 한 분도 없었다. 몸이나 마음이 조금이라도 약하면 애초에 오래 하는 게 불가능한 업무다. 정말 마음도, 몸도 강한 분들만이 워터로 오래 남곤 하신다. 그건 키나 덩치에서 나오는 힘도 아니다. 사람은 겉모습으로 판단하는 게 아니라는 걸 정말 뼈저리게 느꼈다. 나는 나보다 훨씬 키도 작고 마르셨는데, 키가 큰 워터 분들의 3배 속도로 엄청나게 일을 잘하시던 워터 분도 보았다. 그분은 진짜 너무 일도 잘 하시도 친절하셔서, 마침 관리자님이 왔길래 저분 너무 일 잘하신다고 감사하다고 칭찬의 말을 전하기도 했다.
워터분들이 없으면 물류센터의 출고는 거의 먹통이 된다고 보면 된다. 오늘도 어디선가 땀 흘리고 계실 그분들 덕분에 물류센터는 돌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