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 물류 센터
2-1. 출고에서 경험한 나의 일들 : 나의 첫날과 집품
"이건 토트예요! 그냥 바구니가 아니라고요!"
첫날 나는 대형 사고를 쳤다. 나는 연신 죄송하다고 했지만 이미 내가 친 사고는 벌어진 뒤였다. 내가 토트 마감을 제대로 하지 않아 오류토트들이 산처럼 쌓여 있었다. 첫날 나는 집품을 아주 엉망으로 했다. 첫날 너무 큰 사고를 쳐서, 나는 그대로 계약직에 떨어질 줄 알았는데, 웬일인지 붙었다. 나는 언제부터 출근할 거냐는 HR직원의 물음에 가능한 한 빨리 나오겠다고 했다. 첫날부터 사고를 쳐서 너무 미안했고, 그런데도 붙여줬으니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이틀 뒤부터 정식으로 출근했다. 출근하자마자 나는 관리자님에게 내가 대형 사고를 쳤던 토트 마감부터 다시 배우고 집품 일을 시작했다. 혹시 몰라 불안해서 일하는 도중마다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확인을 받았다. 다행히 다른 집품하는 사람들 모두들 친절하게 일을 알려주어서 나는 그 뒤로 2주 정도 집품을 계속했다.
집품은 확실히 몸이 힘들다. 처음 계약직 입사 후 2주 내내 집품만 했었는데 어깨, 팔, 손목, 허리, 종아리, 다리, 발바닥이 너무 아팠다. 손목 보호대와 종아리 압박 스타킹, 두꺼운 깔창을 쓰니 훨씬 나았다. 그리고 여름에는 정말 집품이 걸리면 어마어마하게 덥다. 한증막에서 8시간 걷는다고 보면 된다.
나는 그래도 사실 집품을 좋아한다. 별로 싫어하지 않는다. 다만 내가 걷는 속도가 느려서 집품을 빨리빨리 잘하지는 못 한다.
나는 원래 걷는 걸 좋아한다. 쉬는 날이나 심심할 때면 여기저기로 혼자도 산책을 다니고, 키우는 개와도 산책을 다닌다. 얼마나 좋아하냐면, 마음먹고 산책을 가면 대형견인 나의 개도 힘들다고 그만 가자며 뻗곤 할 만큼 걷는 걸 좋아한다. 그래서 예전에 직장에 불만스러울 때면 정말로 '걷기만 해도 누가 돈 주면 좋겠다. 근데 그걸로 주는 돈으로 먹고살 수 있으면 좋겠다' 이렇게 생각하곤 했었다. 그런데 집품을 하면, 진짜로 계속 걸으면서 돈을 번다. 물론 8시간 내내 하니까 절대 쉽지는 않다. 나도 집품을 하면 퇴근 시간쯤 되면 정말 몸이 너무 힘들긴 하다. 하지만 집품은 정말 정신적 스트레스가 일절 없다. 내가 일하는 물류센터는 음악을 틀어줘서 음악을 들으며 집품을 할 때면 소소하게 행복하다. 사람들이 없는 구석에서 집품할 때는 사실 몰래 혼자 노래도 부르면서 집품하곤 한다. 이러고 돈을 번다는 게 처음에는 진짜 좀 안 믿겼다. 포장처럼 팩 스테이션에 갇혀있지 않고 쇼핑하듯 여기저기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고 관리자님들과 거리가 멀어 관리자님들의 감시(?)에서도 한결 자유롭다. 이런저런 상품들을 쇼핑하듯 구경하는 재미도 있어서 나는 특히 화장품이나 도서 집품을 갈 때 너무 재밌었다. 이런 점 때문에 포장을 싫어하고 집품만 하겠다는 사원님들도 있다. 물론 사람마다 좋아하는 업무가 다 다르긴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