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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라 Nov 10. 2023

낭만 물류 센터

3-1. 출고에서 경험한 나의 일들 : 출고 포장 개요 2

  싱귤에서 어느 정도 익숙해지고 잘하게 되면 오토백 포장을 배운다. 나는 2주 정도 지나고 오토백을 배우러 갔다. 택배를 받으면 오는 비닐 봉지, 위에 직선으로 밀봉되어 있다면 오토백 포장이 되어 있는 것이다. 오토백으로 포장하면 싱귤과는 비교도 안되게 빠르게, 많이 포장할 수 있다


오토백은 말 그대로 기계 포장이다. 물류 센터 한쪽에 쭉 늘어서 있는 기계들이 그것이다. 사실 오토백 포장은 싱귤에 비하면 엄청나게 단순하다. 토트에 포장해야 할 물품이 담겨 오토백 기계 옆으로 온다. 그러면 그 안에 든 상품을 하나 들고 스캐너에 찍는다. 싱귤과 달리 스캐너가 2개인데, 하나는 싱귤처럼 직접 들고 눌러야 찍히는 일반적인 스캐너이고, 하나는 센서 식이라 스캐너 불빛 옆에 바코드를 스치기만 해도 찍혀 아주 편리하다. 그러고 나면 화면에 상품과 상품 개수가 뜬다. 하나라면 화면은 순식간에 검증이 되었다며 사라지고 기계 아래로 택배 봉지가 인쇄된 운송장까지 붙어서 바람으로 넣을 구멍까지 열려서 나온다. 여러 개라면 개수에 맞춰 스캐너에 찍으면 택배 봉지가 똑같이 나온다. 그럼 거기에 상품을 넣고, 초록색 양수 버튼을 동시에 두 손으로 누르면, 기계가 움직여 포장이 된다. 내가 있는 층은 직접 포장된 봉투를 다시 뒤의 토트에 담아 레일로 태워 보낸다. 아래에 있는 층은 그대로 바로 레일을 타고 가서 담을 필요도 없다고 한다. 이렇게 써 놓고 보면 길지만 실제로 포장하는 사람은 싱귤에 비하면 훨씬 몸이 편하다. 사실 찍고, 넣고, 버튼을 누르면 끝이다. 포장을 하나 하는데에 1초도 걸리지 않는다. 그래서 오토백에서는 하루에 1000개면 적게 포장한 셈이다. 내 주변에 잘하는 분들은 하루에 1800개, 2200개씩도 포장한다. 싱귤에 비하면 어마어마하게 빠르고 많이 포장할 수 있다.


말 그대로, 오토백 포장은 손이 2개면 할 수 있다. 하지만 오토백을 싱귤보다 더 나중에 가르치는 건 이유가 있다. 바로 기계를 다뤄야 하기 때문이다. 택배 봉지들이 두루마리처럼 둘둘 말려있는 것을 롤백이라고 한다. 롤백을 다 쓰면 롤백을 갈아야 한다. 이 과정이 처음 보는 사람은 '읭?'소리가 나온다. 이걸 이쪽 방향으로 넣으시고 몇 장을 뜯고 빼셔서 여기로 넣고 이쪽으로 빼시고 이 아래로 넣어서 이쪽으로 넣고 고정 레버를 내리시고 앞에서 수평을 맞추고 테스트를 하세요 하고 관리자가 보여주는데 솔직히 천재가 아니면 한 3번은 봐야 안다. 롤백 가는 건 주변에서 한 일주일 가르쳐 주면 할 수 있다. 롤백을 갈고 나면 이번에는 송장이다. 송장(운송장)도 두루마리 휴지처럼 돌돌 말려 있는데 이것도 다 쓰면 갈아 끼워야 한다. 송장은 더 복잡하다. 이전 송장을 빼서 버리고, 방향에 맞춰 끼운 후, 끝을 하나 남겨서 접고 그 이후 5장을 떼서 버린 후에 기계를 2개 열고 끼우고... 나는 송장은 혼자 할 수 있게 되는데 2-3주는 걸렸던 것 같다. 처음에는 이 롤백과 송장 가는 것만으로도 너무 스트레스를 받아서 오토백을 하러 가라고 관리자님이 시키면 진심 도망가고 싶었다. 관리자에게 물어보는 것도 한두 번이고 주변 사람들에게도 물어보는 것도 너무 눈치가 보였다. 다행히 내가 있는 층 사람들은 정말 좋은 사람들이라, 10번이고 20번이고 몇 번을 물어봐도 다들 친절하게 가르쳐 주셨다. 그 사람들 덕에 나도 배우게 되어서 나도 새로운 사람이 오토백에 들어오면 걱정 말고 백번 물어보시라고 한다. 


롤백과 송장을 갈고 나면 오토백을 마스터한 것 같지만 이제부터 시작이다. 와이파이 오류, 프린터기 오류, 롤백 컷팅, 안전알람, 스캐너 이상으로 인한 미스캔부터 송장이 붙거나 롤백이 말려 펑 터지는 것까지 갖가지 오류와 오토백 고장들을 경험하게 된다. 아래층 오토백들은 새것이라 이런 오류가 거의 없다고는 하는데, 내가 있는 층은 오토백 기계들이 낡아서 정말 말 그대로 기계들이 '가지가지'오류를 다 낸다. 처음에는 관리자님들과 ps사원님들이 도와주지만 매번 미안하고 고맙고 눈치 보이는 건 어쩔 수 없다. 심지어 관리자나 ps사원들 중에는 오토백을 못 고치는 사람들도 있다! 이런 경우에는 그 층에서 오토백에 뼈가 굵은 오래된 오토백 사원님들에게 의지하는 수밖에 없다. 나도 다행히 이러면서 오토백 사람들과 친해져서 함께 다니고 있는데, 처음에는 도움을 받으면서도 너무 미안하고 폐를 끼치는 것 같아 울고 싶은 날이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계속 고장 나는 오토백이 밉고, 나만 이런 건가 싶고 자꾸 포장 흐름이 끊겨 짜증이 솟구친다. 오토백 사원들끼리 말로 '오토백 하려면 도 닦는 마음으로 해야 한다'고들 한다. 급한 마음으로 고치려고 하면 할수록 더 화가 난다. 차차리 욕심을 버리고 천천히 고쳐가며 하면 적어도 속은 안 상한다. 나도 하루는 일진이 안 좋았는지 아침부터 일어날 수 있는 오토백 고장이란 고장은 다 난 날도 있었다. 3개 포장하고 롤백컷팅, 10개 포장하고 롤백컷팅, 이렇게 반복해서 1300개를 포장한 날도 있었다. 실제로 경험하면 정말 번거롭고 짜증 나는 상황이다. 그래도 나는 화내지 않고 그냥 고쳐가며 한다. 정 안되면 관리자님에게 말하면 관리자님이 고쳐주시거나, 정 안되면 수리 기사를 불러 고쳐준다. 나는 하루에 수리기사를 3번 부른 날도 있었다. 포장은 어렵지 않다. 말 그대로 기계를 다뤄야 해서 오토백이 어려운 것이다. 


사실 별건 아니지만, 오토백을 하다 보면 '어? 이게 기술 노동자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나는 그동안 기술직을 해본 적이 없었는데 오토백을 하면서 왠지 이런 방식이 마음에 들어서 이 참에 뭔가 기술을 배워서 먹고살아볼까 하는 생각도 했었다. 오토백 사원들이 단체로 연차를 쓰거나 결근하거나 하면 안 그런 곳도 있지만 오토백 사원이 적은 곳은 난리가 난다. 오토백을 할 수 있는 사람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그렇다. 가르치면 되지만 물류센터 특성상 오래도록 꾸준히 다니는 사람들이 많지 않고, 아이러니하게도 오토백은 한 달은 넘게 다녀야 오토백을 온전히 혼자 다 할 수 있다. 그래서 그때 뭔가 알고 있다는 것이 힘이 된다는 것을 알았다. 특히 일에 관계된 것이라면 더더욱. 

나는 사실 오토백은 그다지 잘 하진 못 한다. 포장은 잘 못 한다. 사실 오토백 포장은 너무나 쉬워서 잘 못 한다고 하면 사람들이 의아해하기는 한데, 나는 크로스 출고(교차 출고. A를 넣어야 하는 포장지에 A가 아닌 B상품을 잘못 넣는 것) 실수가 너무 자주 난다. 그래서 관리자님들에게 미안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나 스스로가 한심해서 속상할 때도 너무 많다. 그래서 나는 주로 싱귤 포장을 많이 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고장 난 오토백을 이리저리 고쳐보려고 하거나 운송장을 새로 가는 게 더 재미있다. 고장이 여러 번 나도 '천천히 하지 뭐~'라는 마음가짐으로 차근차근 고쳐본다. 그래서 도중에 오토백을 자진해서 그만두지는 않는다. 나랑 친한 친구는 포장은 진짜 빠르게 잘하는데, 기계가 고장 나면 어쩔 줄을 몰라해서 내가 자주 대신 해주곤 했다. 이것도 사람마다 적성이 다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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