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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시아 Dec 19. 2020

프랑스적 유머와 언어유희 그림책*

프랑스에서 토미 웅게러의 작품 세계를 분석해 박사논문을 썼다. 그의 그림책 『세 강도』(시공주니어)가 한국에 처음 출간되었을 무렵부터 그의 그림책을 좋아하기 시작해서 거의 20년 만이었다. 그사이 다섯 살과 세 살이던 아이들은 어른이 되었다. 『세 강도』는 궁금증을 많이 자아내는 그림책이다. 강도가 주인공이라니! 게다가 표지에서 세 강도 중 한 명은 빨간 도끼를 들고 있다니! 하지만 책을 펼치면 세 강도가 어린 고아 티파니를 만나 착해진 후 불쌍한 고아들을 데려다 키우고 존경받는 사람이 된다는 이야기이다. 토미 웅게러는 이렇게 강도를 주인공으로 선택할 뿐만 아니라 뱀, 박쥐, 문어와 상이군인 등을 주인공으로 사람들의 편견에 강력 펀치를 날리는 그림책들을 만들었다. 프란츠 카프카가 친구 오스카 폴락에게 한 말이 연상되듯, 토미 웅게러에게 그림책이란 편견으로 꽁꽁 얼어붙은 어른 독자의 마음을 뒤흔들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그림책을 내는 것이었다. 그는 어른 독자, 어린이 독자뿐만 아니라 자신의 이야기를 하려고 그림책을 만들었다. 그림책 구석구석 작가의 일화가 숨겨져 있다. 

『라신 아저씨와 괴물』(비룡소)을 보면 프랑스 어느 마을에 은퇴한 라신 아저씨가 ‘배’를 심고 키워 상을 타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그러나 이상한 ‘괴물’들이 정원에 매일 놀러 와 맛있는 배를 다 따먹고 소동이 벌어진다. 도대체 괴물의 정체는 무얼까? 이 그림책을 펼치면 아이들과 놀기 좋아하는 어른, 즉 작가 자신의 자화상적인 모습을 볼 수 있다. 동시에 이 책은 프랑스 사회를 비판하고 어른들의 이중성을 고발한 책이기도 한데 더욱더 낯선 것은 기차역에서 벌어지는 장면이다. 훈장을 단 아저씨가 잘린 발을 보따리에 담아 긴 막대로 어깨에 걸치고 가는 디테일이다. 이 인물은 『모자』(시공주니어)의 주인공인 ‘상이군인’을 연상시키기도 하는데 토미 웅게러 특유의 블랙 유머를 낯설어하는 독자들, 특히 어른 독자들은 “이런 장면을 아이들이 봐도 될까요?”라며 종종 같은 질문을 한다. 기차역에서의 불안하고 위태위태한 장면들은 작가가 우리들의 현실은 사고가 넘쳐나는 ‘위험한 곳’이라고 경고하는 장면들이다. 어른들의 부주의, 폭력성, 편견 들이 작가가 웃음으로 희화화하는 대상들이다. 

토미 웅게러의 그림책이 낯선 독자들에게 가장 먼저 권하고 싶은 그림책은 『개와 고양이의 영웅 플릭스』(비룡소)인데 이솝우화처럼 개와 고양이가 싸우는 이야기가 아니라 ‘개‘와 ‘고양이’ 두 정체성을 가진 주인공 플릭스의 이야기이다. 개와 고양이처럼 싸우던 독일과 프랑스의 평화를 위해 열심히 일했던 작가의 경험을 바탕으로 만든 그림책이다. 남한과 북한이 개와 고양이처럼 싸우지 않기 위해 남쪽에 사는 사람들도 북쪽에 사는 사람들도 이 그림책을 함께 읽었으면 하는 마음이 그득한 평화 그림책이다. 또한 코로나19라는 상황 속에서 해외여행이 자유롭지 못한 요즘 하늘을 나는 특이한 캥거루 『아델라이드』(천개의바람)와 함께 파리 여행을 그림책으로 즐겨도 좋을 것이다. 

프랑스적인 유머 코드로 한국 독자를 낯설게 하는 작가 중에 프랑스에서 유명하면서 한국에선 잘 알려지지 않은 작가는 아마도 필립 코랑텡과 클로드 퐁티를 들 수 있다. 이 두 작가는 토미 웅게러처럼 유머와 언어유희로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구축한 작가들이다. 

먼저 필립 코랑텡의 그림책은 스무 권의 그림책 중 한국에 네 권만 번역 출간되었다. 『아빠』(베틀북), 『풍덩!』『먹보 귀신과 늑대와 꼬마와 과자 이야기』(주니어파랑새), 『엉터리 아프리카』(바람의아이들). 프랑스의 레꼴데르와지르 출판사의 주요 작가인 그는 작가를 소개하는 작은 책자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의 모든 것」에서 프로필을 소개하는데 간단명료하게 자신이 태어난 연도와 아버지가 된 연도, 할아버지가 된 연도만 소개한다. 주로 동식물을 주인공으로 의인화하고 인간과 동물 사이에 벽이 없다. 작가는 옛이야기와 우화를 패러디하면서 웃음을 유발한다. 그러므로 라퐁텐의 우화나 ‘빨간 모자’ 이야기를 아는 독자는 웃음이 배가된다. 이렇게 작품 안에서 다른 작품을 불러오는 것을 ‘상호텍스트성’이라 하며 원래 이야기와 반대되거나 비트는 이야기로 웃음을 유발하는 장르를 ‘패러디’라고 한다. 『풍덩』의 면지엔 치즈처럼 하얀 달님이 의인화되어 웃고 있다. 단순한 이 그림은 라퐁텐의 우화 「까마귀와 여우」 이야기를 암시하며 여우가 아닌 늑대와 돼지, 토끼들이 우물 속에 빠지고 탈출하기 위해 오르락내리락하며 벌어지는 코믹한 이야기다. 『풍덩』은 우물 안이라는 이야기 설정에 맞추어 그림책의 판형은 세로로 길며 페이지를 아래에서 위로 넘기는 구조로 되어있다. 

프랑스에서 파리 근교 제피로트 국립 유치원의 이름이 클로드 퐁티의 그림책 『제피로트들의 밤』(미번역)에서 따올 정도로 프랑스 독자들이 좋아하는 클로드 퐁티의 그림책도 한국엔 네 권만 번역된 상태다. 『끝없는 나무』 『나의 계곡』 『조르주의 마법 공원』(비룡소)이 출간되었으며 『심술꾸러기 두두』는 전집에 묶여 서점에서 구하기도 힘들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영향을 많이 받은 클로드 퐁티의 그림책은 날아다니는 물고기와 이상한 형상의 동물들이 자주 등장하며 초현실적이다. 게다가 한국의 독자들에게 퐁티의 그림책들이 낯선 이유는 작가가 만들어낸 독창적인 고유명사들과 언어유희 때문이다. 그러나 호기심이 많은 독자에겐 장애가 되지 않는다. 난센스 시처럼 언어적 운율에 몸을 맡기고 말놀이를 즐기면 등장인물들과 함께 상상의 춤을 추며 이야기에 몰입할 수 있다. 아이들의 언어적 특성을 잘 이해하는 클로드 퐁티는 새로운 이름을 만들기 위해 심지어 2주 동안 골몰하기도 한단다. 언어유희와 유머는 사회적이고 문화적이어서 다른 나라 말로 옮기기가 정말 어렵다. 그래서 의미만 남고 언어적 재미는 사라지는 경우가 다반사인데 그림책은 다행히 말 없는 그림이 독자에게 소곤소곤 많은 것을 이야기해줄 수 있다. 대신 귀를 기울여야 한다. 글자에 갇히지 않고 그림을 꼼꼼히 보다 보면 낯선 풍경이 말을 건다. 『오킬렐레』(미번역)처럼 나무의 언어를 알아듣기 위해 나무처럼 가만히 멈추어 땅에 뿌리를 내릴 때까지 기다려 나뭇잎이 나면 나무의 대화를 알아들을 수도 있고 새들의 노랫소리까지 알아들을 수 있다. 자연의 소리에 귀 기울이면 작가의 웃음과 메시지가 낯설지 않다. 


*『월간그림책』 2020년 12월호 6면  조금 낯선 그림책 이야기   프랑스 그림책' 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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