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날
교토 고쇼에서 나올 즈음은 이미 니시야마(서산)가 태양을 품을 즈음이었다. 궁내청 소속 안내원들이 폐장을 알렸다. 더위를 식힐 겸 에어컨으로 시원한 대기처에서 쉬고 있던 여행객들은 쫓기듯 다시금 더위로 내몰렸다. 집에 돌아갈 시간이었다. 나카다치우리고몬으로 나와 북쪽의 도시샤 대학 앞에서 버스를 타고 다시 기온으로 돌아왔다. 참고로 도시샤 대학은 시인 윤동주가 수학했던 대학이다(영화 <동주> 참고).
도시샤 대학과 윤동주 시인 시비. 정지용 시인 시비도 있다(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버스는 야사카 신사의 서쪽 누문 앞 기온 정류장에서 멈췄다. 버스에서 내리니 수상한 기운이 감지됐다. 기온시조를 통과해야 했을 버스의 노선이 다르고, 기온 거리의 차도오 왠지 한산했다. 하차하기 직전에 버스 기사가 무언가를 누차 방송하기도 했다. 문득 알아들은 단어 하나가 생각났다. “...마츠리...마츠리”. 그래, 기온 마츠리다!
도쿄의 간다 마츠리 & 오사카의 텐진 마츠리
(사진 출처 동양북스 블로그)
마츠리라 하면 원래는 신사를 중심으로 하는 종교 의식이었지만 지금은 마을 전체의 ‘축제’와 같은 의미로 통용된다. 교토에서 가장 중요한 신사인 야사카 신사에서 시작하는 기온 마츠리는 도쿄의 간다 마츠리, 오사카의 텐진 마츠리와 함께 일본 3대 마츠리로 불리고, 교토의 3대 마츠리 중 하나다(5월:아오이 마츠리, 7월:기온 마츠리, 10월:지다이 마츠리).
아오이 마츠리 & 지다이 마츠리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7월 초일부터 말일까지 한달동안 진행되는 기온 마츠리(또는 기온제)의 절정은 7월 14일부터 17일까지 4일동안 진행되는 야마보코 순행과 그 전야제인 요이야마다. 이 때의 야마보코 순행은 신화 속 인물을 상징하는 인형을 태운 산처럼 높은 가마인 야마보코 32채가 야사카 신사에서 출발해 교토 시내를 통과하는 것으로 그 모습은 가히 장관이라고 한다.
야마보코 : 야마(山)는 산 모양을 본 따 만든 가마. 한편 원래 정화 의식에서 사용되던 창을 꽂은 커다란 가마 호코(鉾)는 야마에 비해 크기가 크며 무게가 12톤에 달하기도 한다.
(출처: 세계의 축제•기념일 백과)
요이야마 : 요이야마에서는 오랜 전통을 지닌 가옥이나 점포에서 대대로 보관해오던 병풍과 족자 등 골동품을 공개하는 행사가 펼쳐져, 귀중한 유물들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된다. 이 때문에 전야제를 ‘뵤우부마츠리(屛風祭, 병풍제)’라고도 한다.
(출처: 세계의 축제•기념일 백과)
이 때 야사카 신사에 머물고 있는 신들도 집을 떠나 도시로 나오는데, 신들을 태운 가마 세 채가 신사를 떠나는 것을 신코사이, 다시 신사로 돌아가는 것을 간코사이라고 한다. 오늘(7월24일)은 신사를 떠난 신의 가마가 돌아오는 간코사이 행렬이 있는 날. 기온시조 거리의 수상한 분위기는 모두 이 때문이었다.
신코사이 (출처: 세계의 축제•기념일 백과)
신을 모신 가마가 일주일동안 머무는 오타비쇼에서 나오는 시간은 오후 6시정도지만 시내를 순행한 뒤에 야사카 신사 누문 앞까지 오는 것은 늦은 10시에서 11시 사이였다. 1년에 한 번 있는 행사를 운좋게 볼 수 있게 됐으니 좋은 자리에 앉아서 미리 기다리기로 했다. 그 전에 시간이 많이 남아 생각도 하지 않았던 야사카 신사에 들어가기로 했다. 그래도 교토에서 가장 중요한 신사가 아닌가.
야사카 신사는 열도 전역의 야사카 신사 총본산이면서 교토에서 가장 오래된 신사 중 하나다. 656년에 창건됐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니 어쩌면 헤이안쿄(현 교토)보다 나이가 많은 신사다. 고구려 도래인이 창건했다는 것이 통설인데, 그래서인지 야사카 신사의 주신인 스사노오(스사노오노미고토; 사스케의 그 스사노오다) 신화도 도래신일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한다(바다 건너 어머니의 고향을 그리워한다든지 등등). 전염병을 막기 위해 시작한 기온 마츠리도 1,100년의 시간동안 끊임 없이 유지하고 있다(오닌의 난과 세계2차대전 등의 시기에만 중단됐다).
몇 번을 지나치기만 했던 붉은 누문의 계단을 올랐다. 처음 들어간 신사의 분위기는 묘했다. 누문을 지나면 우거진 나무를 피해 길이 옆으로 나 있다. 작은 도리이와 신당을 지나서야 본당이 나온다. 신사의 정확한 구조는 모르겠으나, 정가운데 등이 달린 건물을 다른 건물들이 둘러쌓고 있었다. 신사는 사방이 뚫려 있어 어느 방향이든 들어올 수 있는데, 남쪽 누문도 서쪽 정문처럼 모습이 화려하다.
숙소에서 쉬다가 해가 질 때쯤 야사카 신사 앞으로 나왔다. 누문 앞의 계단에 앉아서 한참을 기다렸다. 나 뿐만이 아니었다. 1년에 한 번 있는 행렬을 구경하기 위해 국적 가릴 것 없이 계단을 가득 채웠다. 언제쯤 오나, 그냥 숙소로 돌아가야 하나 싶을 때쯤, 멀리서 전통 복장을 한 무리가 보였다. 가마 행렬을 이끄는 선발대의 모습이었다.
다양한 신분의 남녀노소로 이루어진 행렬이 신사 앞을 돌아 지나갔다. 남녀 한쌍이 말을 타고 지나갔고, 그 뒤로 작은 가마 몇 개가 지나갔다. 그리고 한참 소식이 없더니, 이내 다시 차량이 통제됐다. 북소리와 함께 커다란 가마가 행렬에 나타났다. 야마보코 같은 거대하고 화려한 형태의 가마는 아니었지만 충분히 육중한 모습이었다. 어느새 신사 앞의 삼거리에 하얀색 전통복장을 한 남성들로 가득 찼다. 그 중심에 신의 가마가 있었다.
가마은 파열음을 내며 흔들리는 방울 소리에 요란했다. 큰소리로 구호를 내지르는 행렬의 열기는 좌중을 압도했다. 구호에 맞춰서 낮게 들고 있던 가마를 높이 들어올리기도 하고, 좌우로 흔들어 방울 소리를 내기도 했다. 가마를 시계바늘처럼 돌리는데, 가늠하기 어려운 무게를 짊어지고 있는 가마꾼들을 응원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가마를 꽤나 한참 돌린 뒤 길을 돌아 야사카 신사로 들어가니 다시 차량 통제가 풀렸다. 가마를 한 번 본 인파도 슬슬 파장 분위기였다. 나 역시 숙소로 돌아갔는데, 숙소가 신사로 올라가는 길 바로 옆에 있어서 숙소 창문을 통해서 나머지 두 채의 가마도 볼 수 있었다.
7월의 교토는 무덥다. 여름의 절정 때에 고생을 하면서 마츠리에 임하는 이들은 더위와 고통을 이겨낸 패기와 열정의 영웅이었다. 낮동안 뜨거워진 계단 위에 앉아있는 것만으로도 고역이었는데, 그 무거운 가마를 이끌고 교토 시내를 몇 시간동안 누볐을 저들의 고생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다. 가장 뜨거운 여름, 기온 마츠리의 가운데서 뜨거운 태양과 싸웠던 사람들을 기억하며 오늘 하루도 저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