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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멱 Aug 07. 2018

교토03. 교토의 시간을 걷다, 기온&시조&기요미즈마치

첫째 날

한껏 달아오른 몸을 블루보틀에서 식힌 뒤 걸음을 옮겨 숙소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은 한적했다. 큰길을 벗어나 최대한 골목 골목으로 들어가 보았다. 사찰의 도시, 역사의 도시가 아닌, 현대의 교토를 보고 싶었다. 높은 건물 하나 없이 복층의 주택으로 이루어진 마을이 이어졌다. 군데군데 세월이 느껴지는 오래된 목조 전통가옥도 있었다. 또는 커다란 대문 너머로 삐죽 솟아 보이는 정원에서 이름 난 가문의 저택임을 알리는 곳도 여럿 있었다. 중간중간 마주친 여행자의 숫자는 적었다. 한국인은 더더욱 없었다. 오히려 그래서 더 좋았다.

숙소로 돌아온 시간은 하루에 태양과 지열이 가장 뜨겁다는 오후 2시. 햇빛과 더이상 싸우기 힘들다는 판단에 해가 조금 질 때까지 쉬기로 했다. 땀범벅이 된 옷을 벗고 임시방편으로 탈취제를 뿌려 의자 위에 널었다. 옷이 넉넉치 않아 또 다른 옷을 꺼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뜨겁고 축축한 몸에 차가운 물을 뿌려 대충 씻었다. 그렇게 침대에 누웠다. 체온이 내려가고 에어컨 바람이 솔솔 나오니 잠도 솔솔 왔다. 휴식을 취하고 다시 밖으로 나오니 어느새 오후 5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이었다.


야사카 신사에서 시작하는 시조 거리와 전통 가옥의 주점과 밥집이 늘어서 있는 기온은 서울의 인사동과 익선동에 해당한다. 교토에서 머무는 자, 교토에 도착한 자, 교토를 곧 떠날 자가 모두 모이는 기온시조는 그야말로 인산인해. 한국어, 일본어, 중국어, 영어, 그리고 못 알아 들을 다양한 언어가 뒤섞이는 세계촌의 현장이다.

시조 거리는 길을 따라 지붕이 설치돼 있는 아케이드 형식의 상점가다. 식당, 카페, 기념품점 등 여행객을 위한 다양한 가게들이 진을 치고 있다. 지붕이 있어도 더운 여름의 시조 거리를 걷는 일은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럴 때면 ‘얼음 빙’자가 써져 있는 가게를 찾으라. 환상의 빙수로 몸과 마음을 모두 식힐 수 있을테니. 다만 여느 여행 중심지와 같이 가격은 다소 나쁜 편이란 점은 유의해야 한다.

기온이라 하면 교토의 상징과도 같다. 현대식 건물 하나 없이 일본 중세 때의 전통가옥이 그렇게나 많이 늘어서 있는 모습은 교토가 아니라면 어디서도 보기 힘든 광경이다. 거기에 맞춰 관광객들은 어디서들 빌렸는지, 유카타와 기모노로 한껏 뽐내며 여행지를 만끽한다. 아직은 여전히 뜨거운 태양을 가리기 위해 한 손에는 양산을, 한 손에는 아기자기한 핸드백을 들고 나막신 소리 딸각-딸각-내며 왁자지껄 다니는 그들의 모습은 또한 교토의 풍경 중 하나다.

기온시조에서 저녁을 간단하게 해결하고 도망치듯 기온을 떠났다. 오늘 하루 뜨겁게 작열하던 태양은 어느새 건물 너머로 사라진 지 오래. 그저 뜨겁게 타오르던 여운만이 하늘에 남아 내일을 다시 기약할 뿐이다. 붉게 물든 하늘을 등지고 조금 더 동남쪽으로, 얕은 오르막길을 올랐다.


평소 같으면 역시 여행자로 넘쳤을 거리는 답지 않게 한적했다. 고다이지, 니넨자카, 산넨자카 등이 있는 기요미즈마치는 기온시조와 함께 교토에서 일본의 중세 거리를 제일 잘 느낄 수 있는 관광지다. 그 중에서도 기요미즈데라의 풍경은 교토를 상징하는 풍경 중 하나로 손꼽히는 절경. 언덕이지만 경사가 가파르지 않아 오르는 리듬감이 썩 상쾌한 길이다. 하지만 해도 이미 서쪽 산맥 너머로 넘어갔고, 서서히 가로등도 켜질 무렵의 시간. 게다가 오늘은 월요일이었다. 문을 연 가게도 없었고, 그에 따라 보기 드물게 사람이 없었다. 하지만 사람이 없는 니넨자카와 산넨자카라니. 이보다 좋을수가.

기요미즈데라의 무대가 그려내는 절경은 아쉽게도 장기 보수공사로 볼 수 없게 됐다. 그럼에도 지친 몸을 이끌고 이 늦은 시간에 기요미즈마치까지 온 것은 호칸지의 야사카 탑이 그리는 멋진 하늘선은 두 눈에, 그리고 사진으로 남기기 위함이었다. 뜨거웠던 하루를 마감하고 뜨거운 흔적만 남은 붉은 하늘을 배경으로 역광의 그림자에 갇혀 그리는 고색창연한 하늘선은 기요미즈데라와 금각사 못지 않은 장관이다. “일본 최초의 보탑”이라는 빛바랜 간판처럼, 천년 가까이 자리를 지켜온 야사카의 탑은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감동적인 장소다.

당분간은 볼 수 없지만 그 모습 참 아름답다. 5년 전 겨울의 사진이지만 그 모습이 어디 다르랴. 단지 푸른 녹음 위의 무대를 보지 못한 것이 아쉽다면 아쉽다.

주홍빛 하늘색도 어느새 밤의 짙은 보랏빛으로 물들었다. 밤이 내려앉은 교토는 고요했다. 그렇게 우리의 첫째 날 여행도 마무리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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