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FACT)'는 힘이 세다(IMPACT). 요즘은 팩트가 존중받는 시대다. 팩트는 사실 중에서도 입증할 수 있는 사실을 가리킨다. 입증은 주로 물증을 가리키고, 그것은 수치를 담은 자료들로 이루어진다. 수치는 공식적인 경로로 공개된 것일 가능성이 크다.
역사적으로 수치를 생산할 수 있는 존재들은 권력층이었다. 권력을 잡은 자는 즉각적으로 수치를 통일했다. 다시 말해 무게, 길이, 부피를 동일하게 측정할 수 있게 했다. 역사 교과서에서 등장하는 도량형 통일은 수치를 장악하는 일이 권력을 장악하는 일과 밀접한 연관이 있었음을 보여주었다. 반드시 도량형이 아니더라도, 어떤 사실들을 수치화할 수 있다는 것은 그것을 기록하였다는 의미이고, 기록할 것을 선택했던 주체는 '권력의 다수'일 가능성이 크다.
이른바 '뉴라이트'가 대한민국 정치를 시끄럽게 만들고 있다(이때의 정치는 정당정치를 기반으로 한 현실정치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정의를 추구하는 과정 자체를 가리킨다). 뉴라이트의 가장 큰 특징은 팩트에 기반한 주장을 내세운다는 점이다.예컨대, 일제 강점기에 조선어 과목이 존재하고 있었다는 팩트(기록)는 일본이 조선어 말살 정책을 펼쳤다는 주장을 허구로 몰아세우는 근거가 되고, '강제징용' 피해자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받았다고 기록된 몇 푼이 순식간에 그들을 자발적 노동자로 둔갑시키는 증거가 되고는 한다.
이들이 수집하여 인용하는 팩트들은 수치화(기록)된 것이고, 그 수치화(기록)된 자료들은 어떻든 특정 시대의 권력기관의 승인을 받아 출판된 것이다. 그러나 기록된 자료들에 반드시 당대의 실제 삶이 반영된 것은 아니다. 그것은 '질적인 증거'가 아니라 '양적인 증거'일 뿐이다.
물론, 팩트들은 입증 가능하다는 사실 때문에 공정해 보이기도 하지만, 보이지 않는 진실은 철저히 감추는 힘을 지닌다는 점에서 위험하다. 숫자로 표기된 세상에서 개인의 얼굴(표정)은 드러나지 않는다. 숫자로 표기된 세상에서 개인의 끔찍한 경험과 그것이 남긴 기억은 표현되지 않는다. 기록은 행위의 흔적을 증명할 뿐, 그 행위가 어떤 맥락에서 이루어졌는지를 증명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팩트풀니스(FACTFULNESS)'라고 불리는 세상에서 풀리쉬니스(foolishness)가 되고 만다. 팩트는 그 자체로 목적이 되지는 않는다. 팩트는 진실을 향해 나아가기 위한 발판일 뿐이다. 팩트 너머에 있는 진실이 중요하다. 진실은 기록되지 않는다. 진실은 계산되지 않는 것이고, 측정되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진심으로 누군가를 사랑할 때 어떤 보상도 원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이해할 수 있을까. 팩트(FACT)만이 강렬한 인상(IMPACT)을 남기는 시대. 이 시대에 우리는 팩트 너머의 진실을 헤아리려고 애써야 하는지도 모른다.
*팩트를 이야기한다고 모두가 진실인 것은 아니다. 아래는 제국주의 일본이 한반도에서 저지른 행위들이 실제로는 강압적이지도 않았고, 범죄도 아니었음을 주장하는 대표적인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