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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러블리 Sep 14. 2019

추석

나의 '고향'을 생각하며

   퇴근을 하기에는 아직 이른 시간인데 사람들이 한두 명씩 사무실을 떠난다. 그 어느 때보다 밝은 미소로 속삭이듯 ‘연휴 잘 보내세요~’라는 말과 함께 서둘러 떠나는 그들의 등 뒤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아차 싶었다. 아침부터 어수선한 느낌이 들더라니... 오늘이 추석 연휴의 시작을 하루 앞둔 수요일이라는 걸 그때서야 깨달았다. 서둘러 회사 밖으로 향하는 사람들처럼 '떠나서 도착할 곳'이 없는 나에게 그들의 설렘은 늘 궁금한 감정이었다. 똑같은 연휴라고 해도 명절 연휴는 그들에게 조금은 다른 색깔일까? 그렇다면 떠나지 않는 나는 그 색깔을 영원히 알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면 쓸쓸한 감정이 마음에 내려앉는다.


   물론, 명절이면 고속도로 정체의 지옥문이 열리고 오랜만에 만나는 친척들이 모두 내 편은 아니겠지만  명절이면 ‘떠난다’는 그 기분이 늘 부럽다. 서울에 가족들이 다 모여있는 나는 어릴 때마다 모두가 고향으로 떠난 서울에 혼자 남는 기분이 든다.


   사람은 자신의 경험만큼 단어를 이해하게 된다. 같은 단어도 사람마다 느끼는 감정은 다르다. 그런 면에서 '고향'이란 단어는 내게 무색무취의 느낌이다. 우리 집은 흔히 말하는 큰집인데 서울에 자리 잡고 있고 앞서 말했듯이 친척들 대부분이 서울에 몰려있다. 조금 멀다고 해도 경기도를 벗어나지 않기 때문에 명절 민족 대이동은 늘 남의 이야기였다. 친척들은 명절 한산해진 서울 도심을 통과해 우리 집에 모였다. 그들에게도 '고향'이라는 단어가 주는 느낌이 나처럼 무색무취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명절이면 어딘가로 '돌아가야 한다'는 회귀성을 느끼지 못하는 건 마찬가지 이리라.



   큰집이다 보니 명절 전날, 당일, 다음날까지 친척들이 모이는데 은근 대가족이다 보니 넓지 않은 우리 집은 늘 사람들로 가득했다. 태생부터 요즘 말로 '인싸'와는 거리가 멀었던 나는 명절이면 '잘 지냈니?'라며 인사를 건네는 수많은 어르신들이 낯설고 힘겨웠다. 그럼에도 명절이 기다려졌던 이유는 어르신들의 손을 잡고 함께 오는 친척 형, 누나들이 나를 너무나도 잘 챙겨주고 예뻐해 줬기 때문일 것이다. 생각해보면 그때나 지금이나 명절 때나 겨우 보는 사이였다. 차이가 있다면 그때는 언제 봐도 마치 어제 만났던 것처럼 살가웠지만 지금은 가끔은 서먹한 느낌이 들 때도 있다는 것이다. 그런 걸 보면 어른이 될수록 우리가 잃는 것도 분명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어린 나는 관계에서 지금보다 더 솔직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형, 누나들이 나를 예뻐해 주고 여기저기 데려가 줬던 것은 아닐까?  


   그렇게 신나게 놀고 있다 보면 슬슬 어르신들이 집으로 돌아갈 준비를 했다. 서울에 사는 친척들은 같은 서울인 우리 집에서 굳이 자고 갈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자연스럽게 형, 누나들과 신나게 노는 것도 다음 명절을 기약해야 하는 시간이 찾아왔다. 어릴 때 일기장을 보면 명절 당일에 60명가량의 친척들이 들이닥쳤다고 되어 있는데 지금 생각해봐도 큰 과장은 아닐 정도로 그만큼 많은 사람이 찾아왔다가 반나절 정도 지나면 한꺼번에 사라졌다. 함께 뛰어놀던 형, 누나들도 마치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그때 느꼈던 이상하고 마음 어딘가에 턱턱 걸리는듯한 감정을 고독, 쓸쓸함 등으로 표현한다는 걸 학년이 높아지며 알게 되었다. 어린 내가 느꼈던 그 감정들이 아직도 그대로 기억날 정도니 그 이별들은 지금까지도 꽤나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있는 셈이다. 썰물처럼 친척들이 빠져나가면 어린 내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쓸쓸한 감정이 감정이 파도처럼 밀려들어왔다. 정확히 그걸 어떤 단어로 표현해야 할지 고르기 쉽지 않은데 어린 내 마음을 무언가가 하얗게 태워버린 느낌도 있었고 기대했던 일(학교를 쉬고 형, 누나들을 만나는)이 지나간 후의 공허함도 있었고 북적대다 갑자기 텅 비어버린 집을 보며 느끼는 낯섦도 있었다. 어학 사전을 보면 이 모든 감정을 '쓸쓸함'으로 정리하는 거 같은데 그걸로 설명하기 힘들 만큼 여러 색깔이 있었다.  


   돌아보면 그때 이미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도 반드시 있다.'는 것을 배우고 있었던 셈이다. 만남과 헤어짐 중에서 어떤 순간을 더 크게 느낄지는 개인의 타고난 기질일 수도 있고 선택일 수도 있겠지만 난 후자를 더 크게 인지했던 것 같다. 그렇기에 지금 어린 시절을 돌아보면 오랜만에 만나는 친척들을 볼 때의 환희보다 얼마 못 보고 다시 헤어질 때의 아쉬움이 더 진하게 남아있는 것 아닐까? 


   다른 사람들처럼 돌아갈 고향이 없다는 사실은 그들이 고향으로 떠나버린 자리에 늘 혼자 남아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 외로움을 오랜만에 보는 친척들이 잠시나마 채워줬지만 이내 다시 혼자 남는 경험을 반복하며 지금의 내가 되었다. 차라리 나도 이 도시를 떠나 잠시나마 들를 고향이 있었다면, 그래서 남겨진 사람이 아닌 떠나는 사람이 될 수 있었다면 외롭지 않았을까


   많은 글에서 '고향'은 그리움의 대상으로 설명되고 그 존재 자체로 외로움을 달랠 수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런 면에서 고향이라는 단어가 무미건조한 도시 '서울'에 얽매여 있는 나는 늘 심리적 고향을 찾곤 했다. 이런저런 여행 끝에 내가 찾아낸 나의 심리적 고향은 '바다'였다. 내가 나고 자란 서울은 주위가 온통 산이라 바다와는 연관이 없지만 그래서 생경한 그 파란 색깔의 풍경에 마음을 빼앗겼는지도 모른다. 언제 내가 처음 바다를 찾았는지 기억에 남아있지 않지만 어릴 적 내가 아는 세상은 동네에 국한됐었다. 누가 데려다주지 않으면 바다는 내 발로 갈 수 없는 머나먼 미지의 세계였다. 어른이 되어 운전을 하게 되고 열차 시간, 버스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마음먹으면 언제든 훌쩍 푸른 바다를 볼 수 있게 되었을 때부터 난 자주 바다를 그리워했다. 어쩌다 보니 작년 설에는 제주도, 올해 설에는 강릉으로 가족 여행을 갔었는데 남들이 고향으로 떠나는 시기에 내가 그리워하는 고향 '바다'로 떠나는 것이 좋았던 기억이 있다.


   이 글의 첫 문장은 연휴가 시작되며 썼는데 지금은 어느덧 추석 당일도 지나간 새벽 시간이다. 열어놓은 창문으로 들어오는 선선한 바람을 느끼다 보니 불과 얼마 전 찜통 같았던 여름이 있었다는 걸 잊어버리게 된다. 내가 그리워하는 바다는 여름이라는 계절만 되면 그 도시들이 담을 수 없을 만큼 많은 사람이 몰린다. 어떤 면에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여름의 고향은 바다인셈이다. 그때 찾는 바다는 오히려 많은 것을 보여주지 않는다. 모든 적정선이 있듯이 그 선을 넘어가면 가려지는 게 더 많은 법이다. 내가 여름을 피해 바다는 찾는 이유다.


   이제 조금만 더 지나면 바다를 찾기 좋은 계절이 된다. 늦여름과 초가을의 번잡함이 모두 지나가면 다시 바다를 찾을 생각이다. 원 없이 푸르른 바다를 보고 잠깐 시간을 내어 그 도시에 있는, 좋아하는 서점을 찾을 생각이다. 따뜻한 목소리를 가진, 넉넉한 인심의 사장님이 앉아있는 그곳에서 책을 몇 권 구입할 것이다.


그 생각을 하면 외로움도 쓸쓸함도 공허함도 없다. 그저 설레는 마음만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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