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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러블리 Dec 16. 2019

달리기

   숨이 턱까지 차오른다는 말이 참 좋았다. 그만큼 몸을 써서 뭔가에 열중하고 있다는 의미일 테니까. 올해 대부분의 시간 속에서 삶 자체에 좀처럼 집중하지 못했던(못하는 혹은 못할) 나에게 열중할 수 있는 대상과 시간은 참 소중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오늘은 꽉 차게 좋았던 달리기였다. 무슨 날씨가 다혈질 사람처럼 중간이 없는지 서늘해지는 시기 없이 바로 한겨울이 시작되었다. 뭐가 이리 추운지 잠시 달리기를 멈추면 찬바람이 온몸을 감쌌다. 추위를 타지 않는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마음을 찌르는듯한 그 한기는 불쾌했다. 마치 텅 비어버린 요즘 나의 마음을 들키는 것 같아서 그 마음을 떨쳐내려 몸에 열을 내며 참 열심히 뛰었다.


   오늘 뛰기로 마음먹은 거리의 중간 정도까지 뛰었어도 몸의 열기는 찬바람에 바로 식어버렸고 오늘은 날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슬그머니 하며 이제 그만 들어갈까 고민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왠지 여기서 멈추면 다른 많은 것들도 멈추게 될 것 같아 다시 이를 악물고 전력질주를 하면서 조금씩 원래 페이스를 찾아갈 수 있었고 결국 끝까지 뛸 수 있었다. 다른 날보다 유독 힘들었지만 포기하지 않았다는 뿌듯함으로 달리기를 마칠 수 있었다. 기록은 중요하지 않았고 그 뿌듯함이 중요했다. 만약 그 전력질주를 감당하지 못했다면 내 페이스는 찾는 것은 고사하고 뛰지도 않고 바로 들어왔겠지. 그럼 뿌듯함 역시 없었을 것이고 중간에 포기했다는 마음만 남았을 것이다.


   뭐든 그 전력질주의 시간을 견디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몸에 열이 나고 관절과 근육이 풀릴 때까지 터져 나오는 숨을 삼키며 견뎌야 하는 고독하고 불편한 시간, 더 뛰면 크게 실수하는 거라고 허벅지가 엄살을 부리고 협박을 해도 죽을 것 같이 근육이 비명을 질러도 견뎌야 하는 시간이 그 전력질주의 시간이다. 그것만 넘기면 관절과 근육이 풀리며 체육시간에 배운 ‘러너스 하이’의 경지를 경험할 수 있다.


   내가 뛰고 있다는 것, 그 자체에만 몰입할 수 있는 시간이다. 뛰고 있다는 것 말고 다른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은 그 순간을 위해 고통스러운 전력 질주를 견뎌야 한다. 생각해보면 매일매일 마주하는 삶도  그렇고 사람 관계도 그렇다. 삶, 관계 그 자체에 몰입할 수 있는 순간을 위해 견뎌야 하는 시간이 어떤 형태로든 존재한다. 크게 심호흡을 하며 달빛 아래 언덕길을 달리며  그 시간을 얼마나 견뎌왔는지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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