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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yaMya Sep 08. 2021

EUFA EURO 2020 그리고 두 사랑

2020년에 열리기로 했던 유럽 축구 선수권 대회가 코로나로 인해 연기되었다가 올 여름 7월에 개최되었다. 2013년 유럽축구연맹에서는 2020 유럽 축구 선수권 대회를 기존과 같이 한 국가 혹은 인접한 두 국가에서 개최하지 않고 유럽 전역의 13개 도시에서 나누어 치르는 것으로 결정을 했다고 한다. 무리한 경기장 신설로 인한 환경 문제와 인프라구축에 따르는 개최국의 재정적 부담을 이유로 계획된 분산 개최는 오히려 대형 경기장을 소유한 국가에서만 경기를 치르는 불평등을 초래했고, 경기를 앞두고 매번 비행기를 타야 했던 선수들의 경기력을 저하시키는 운영 방식이었다는 비판이 있다. 하지만 팬데믹 상황에 단일 개최국이 가졌을 부담을 생각한다면 결과적으로 최선의 선택이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축구 애호가도 아니고, 유럽 축구에 대해 아는 것도 없는 내가 유로 2020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두 사랑을 품고 고통 하는 11살 딸 때문이었다. 

딸은 우리 부부가 이태리 교민이던 시절 밀라노 한 변방 마을에서 태어나 8년을 자라다 3년전 더 나은 삶을 찾아 나선 엄마 아빠를 따라 덴마크로 이사를 왔다. 딸 아이는 나고 자란 이태리를 잊지 못해 좀처럼 덴마크에 마음을 주지 못했다. 길을 걷다 멈추어 하늘을 보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고, 자다가 친구 이름을 부르며 울기도 하며 무척이나 힘들게 덴마크 생활을 시작했다. 8살이 이별하면서 그렇게 많은 눈물을 흘릴 것이라고는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이별도, 적응도 어른에게 힘들지만, 아이는 아이니까, 아이 특유의 생기로 자연스럽게 눈물을 흠치고 새로운 세상을 받아들이겠지 했던 막연한 기대는 아이의 시절을 까맣게 잊어버린 어리석은 어른의 착각이었다. 우리 부부가 택한 더 나은 삶이란 다름아닌 우리 가정의 경제적 상황이었다. 예술가인 남편이 덴마크에서 안정적인 직장을 가질 수 있게 되었기에, 어른인 우리 부부는 15년 치열했던 청춘을 보낸 이태리에 두 번 고민도 않고 이별을 고했지만, 아이에게는 정다운 친구, 사랑하는 이웃을 떠나고 얻을 수 있는 더 나은 삶이란 아무 의미도 없는 것이었다. 아이가 겪게 될 상실의 무게를 미리 알았더라면, 우리는 다른 결정을 했을까? 나이만큼 철은 못 들었지만 그래도 어른인 우리는 미래의 불안을 덜기 위해 역시 덴마크 행을 결정했을 것이다. 다만, 아이의 마음을 헤아렸다면 아이의 마음에 여전히 원망으로 남아있는 덴마크 직장 합격 소식에 환하게 웃었던 엄마 아빠의 얼굴 정도는 아이의 마음을 위해 숨겨 둘 수 있지 않았을까, 이사 준비하느라 신경이 곤두서 차근 차근 이별 중이었던 아이를 재촉하는 말들은 삼킬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를 한다. 호되게 이별을 앓았고, 아직도 이태리를 그리워하지만 이태리를 두고 온지 3년이 지난 지금 딸아이의 곁에는 키가 제 머리 하나 만큼씩 큰 덴마크 친구들도 생겼고, 딸아이는 시끄럽고 경쾌한 이태리 말 대신, 온 구강신경을 초 집중해야만 겨우 흉내를 낼 수 있는 덴마크 말을 자연스럽게 재잘거리게 되었다. 이별하고 새로운 만남에 마음을 여는 아이를 지켜보며 시간이 약이 아니라 시간을 견뎌내는 사람 스스로가 약이 아닐까 생각을 한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덴마크에 마음을 내어주기 시작한 딸 아이가 잔인하고 비정한 선택의 순간에 놓이는 사건이 벌어지고 말았다. 다름아닌 2021년에 열린 EUFA EURO 2020이다.

한해 늦게 열리는 유로컵 소식에 덴마크는 이미 봄부터 들떠 있었지만, 우리는 애초 특별히 응원하는 팀 없이 남의 일 대하는 마음으로 유로컵을 대했다. 그런데 코펜하겐에서 개최된 조별리그 1차전에서 덴마크 대표팀의 크리스티안 에릭슨이 심정지로 경기중에 쓰러지는 안타까운 일이 있은 후에 온 덴마크의 간절한 마음에 우리 마음도 자연스럽게 함께하며 에릭슨 선수의 완쾌와 덴마크 대표팀의 선전을 간절하게 응원하게 되었다. 에릭슨 선수가 없는 덴마크 대표팀은 극적으로 8강에 진출했고, 마음을 다해 응원했던 딸아이도 친구들과 기쁨을 나누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태리 대표팀 역시 우수한 성적으로 8강에 진출했다는 것이다. 그 때부터 딸아이의 말 못한 가슴앓이가 시작되었다. 덴마크를 응원하는 마음도 진심이지만, 이태리를 응원하는 마음도 진심인 딸은 이태리와 덴마크 두 팀이 만나 싸우는 걸 보게 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노심초사했다. 무엇보다 그런 상황이 온다면 양자 택일을 해야 한다는 부담으로 힘들어했다. 두 팀이 모두 4강에 오르자 딸아이의 고민은 더해져, 선수들의 전력을 분석하고 예측 가능한 여러 상황을 머릿속에 그리기에 이르렀고, 한번은 이태리로, 한번은 덴마크로 기우는 스스로의 갈대 같은 마음을 원망했다. 덴마크와 영국의 준결승이 있던 날, 딸 아이는 한편으로는 덴마크가 또 한번의 기적을 보여주길 응원하면서도, 영국이 이긴다면 이태리와 덴마크의 숙명적인 만남은 막을 수 있으리라 기대하는 마음도 숨기지 못했다. 조마 조마 했던 덴마크, 영국 전은 결국 영국의 승리로 끝났고, 딸아이는 아쉬워했지만, 홀가분해 하기도 했고, 홀가분한 자신의 마음으로 인해 다소의 죄책감을 느끼며 슬퍼하기도 했다. 하지만 더 이상 갈등의 요소가 없어진 준결승 전, 결승전 때는 종일 이태리 말만 쓰고, 수다스럽고 번잡스러웠던 이태리의 딸아이로 완전히 회귀하여 미련 없이 이태리 스타일로 과장된 응원을 펼쳤다. 승부차기 끝에 이태리가 유로컵의 최종 승자가 되던 순간에 딸 아이는 감격의 눈물을 보였고, 이내 메신저 프로필 사진을 이태리 대표팀 사진으로 변경했고, 자정이 넘은 시간이었지만 이태리 친구들과 축하와 환호의 메시지를 주고 받았고, 덴마크 친구들로부터 축하 인사를 받았다. 

그렇게 유럽의 축구 잔치는 끝났고, 딸 아이의 갈등은 일단락 되었다. 나도 이태리가 좋고, 덴마크도 좋지만 아이가 두 나라에 느끼는 감정과는 거리가 있다. 태어난 나라, 막 시작된 사춘기를 보내는 나라는 살기 좋은 남의 나라 일 수가 없을 것이다. 대한민국은 출전도 않는 유로컵을 보면서 나에게 조국은 언제나 대한민국이겠지만, 나를 닮은 딸아이에게 조국은 꼭 대한민국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내 마음대로 이태리에서 낳아 덴마크로 데리고 왔지만, 성인이 되어 저의 조국을 선택하겠다고 하면 막을 수도 없을 것이고 막을 생각도 없다. 아이의 선택이 어떠하든 그건, 나 좋자고 나라를 떠난 내가 감내해야 할 몫이리라. 이태리와 덴마크를 진심을 다해 응원하는 아이를 보며 행여 아이가 나와 다른 색의 여권을 가지게 되더라도 의연할 것을 나에게 주문했다. 우리 사는 동안 2002년 월드컵에서처럼 이태리와 한국이 치열할 일은 없으면 좋으련만, 그런 일이 또 일어난다면, 집안 단속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 그래도 한국이 이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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