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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yaMya Oct 20. 2021

참 오랜만에 학부모 모임

아이가 다니는 학교를 비롯한 덴마크 학교에는 1년에 두 번씩 학부모 회의가 있다. 과목별 선생님이 학습 목표와 수업 진행 방법을 소개하고, 학부모 모임을 이끌 리더를 뽑거나, 학급의 특별한 사안들을 논의한다. 또한 아이들 생일 선물, 생일 파티 방법, 친구네 집에 놀러 가는 경우의 규칙 같은 사소하지만 중요한 안건들도 모두 이 자리에서 논의된다. 

코로나는 더 이상 위험한 전염병이 아니라고 선언한 덴마크는 모든 사회 활동을 재개했고, 학부모 모임도 시작되었다. 지난해부터 아이의 반에 여러 가지 변화가 있었다. 선생님들이 이사를 가시면서 전근을 가시거나, 출산 휴가에 들어가셨고, 한 분 선생님이 교통 사교를 당하셔서 치료 중이시고, 임시 교사를 구했으나 결근을 밥 먹듯이 해 해고당하는 사건들이 연이어 일어났다. 뿐 만 아니라 두 명의 아이들이 전학을 갔고, 한 명의 아이는 부모와 함께 세계 일주를 떠나느라 1년 휴학을 했고, 신입생이 4명 들어왔다. 덴마크는 9-10년 동안 ‘FOLKESKOLE’ (폴 케스 콜, 우리말로는 민중 학교, 혹은 국민학교 정도가 되겠다)에서 초 중등 교육과정을 이수하는데, 그 긴 세월을 한 반에서 같은 아이들과 같은 선생님과 함께 보낸다. 때문에 지난 1년 반 동안 아이의 반에서 벌어진 사건은 무척이나 예외적이었다. 이러한 상황들로 인해 학습 능률도 떨어졌고, 아이들 사이에 크고 작은 분란도 있었다. 특별히 최근 전학 온 3명의 아이들의 집단적인 거친 행동으로 인해 피해를 입은 아이들이 많아 여러 부모들이 개별적으로 학교와 선생님들에게 항의를 하는 일도 있었다. 평소 학교에 대해 불만이 없는 우리 아이도 최근에 몇 번 다른 반으로 옮기고 싶다, 반 아이들 중에 같이 놀기 싫은 아이들이 있다는 얘기를 했던 터라 반드시 해결책을 찾아야겠다는 비장한 마음으로 이번 회의에 참석했다. 상황의 특수성을 고려해 우리 반 회의에는 학교의 교장선생님이 직접 참석해 문제를 함께 논의했다. 교장선생님과 새로 온 3명의 선생님은 그간의 문제들을 솔직하게 얘기했고, 문제 해결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을 약속했다. 이어 부모들은 다른 반에 비해 우리 반 아이들의 학업능력이 떨어지는 게 아닌지 걱정의 목소리를 냈다. 매주 학습 목표를 정해 아이들이 책임을 가지고 집에서도 공부를 할 수 있도록 하자는 의견도 나왔다. 학급 분위기 개선을 위해 좀 더 강한 규칙을 만들어야 하는 게 아닌지, 아이들 사이의 문제 해결하기 위해 부모들에게 학급 내 상황을 보다 구체적으로 공유해 달라는 등의 의견도 나왔다. 회의과정에서 선생님들과 학부모들은 논쟁을 하기도 하고, 서로의 의견에 반론을 재기하기도 했다. 여러 논의 끝에 역사 과목을 맡은 젊은 여 선생님이 의견을 냈다.

“수업 시간에 배우는 것 만으로 모든 아이들이 충분히 교육받을 수 있도록 가르치는 것이 우리의 목표입니다. 어떤 아이들은 더 늦게, 어떤 아이들은 더 빨리 습득하겠지만, 모두 이해할 때까지 같은 내용을 무수히 반복하여 학습할 것이고, 아이들 모두는 분명히 학습의 기본 목표에 도달할 것입니다. 부모님들이 원한다면 학습 내용과 개요를 학급 네트워크에 공개하겠습니다. 필요하다고 여기시는 분들은 학교에서 배운 내용에 대해 아이들과 대화를 나누어 주셔도 좋겠습니다. 학습에 큰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는 아이가 있다면 부모님과 별도의 상담을 요청하겠지만, 우리 반에 그런 아이는 한 명도 없습니다. 요즘의 아이들은 새로운 방법으로 학습하고, 세상을 배웁니다. 아이들이 서로 모여 관심 있는 일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모습을 보면 놀랄 때가 많습니다. 어른들이 기대하는 지식이 아닐지는 모르겠지만 아이들은 빠르게 자신들에게 필요한 것들을 배우고 있습니다. 때로는 아이들이 어른들보다 많은 것을 알고 있어 놀라기도 하는데, 그건 저만 그런 건 아니죠? 또한 아이들의 올바른 사회생활은 아이들의 학업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반 친구들과 올바른 관계가 이루어질 때 학습은 더 큰 효과를 나타냅니다. 때문에 우리는 아이들이 서로에 대한 공감능력을 가지는 것이 많은 것을 배우는 것만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과목에 대한 지식과 사회적 요소는 별 개의 것이 아니라, 함께 배워가야 하는 요소입니다. 부모님들은 아이들에게 학교에서 선생님들이 제시하는 규칙을 따르고, 친구들과 문제가 있을 때 상대의 마음을 더 생각해 보도록 지도해 주세요. 다른 친구의 문제를 지적할 때는, 구체적인 사건에 대해 질문해 주시고, 특정 사건에 대해 친구를 비난할 때는 자녀들을 위로해주시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사건이 벌어졌을 때 여러분의 자녀들은 어떤 행동을 했는지 듣고, 객관적인 입장을 취해주세요.” 

안 그래도 공부라는 것을 안 하는 덴마크의 초등학교 중에서도 아이가 다니는 학교는 ‘숙제 없는 학교’다. 아이는 숙제 없는 학교에 다니게 된 것을 기뻐했지만, 나는 그런 걸 규칙으로 정해두는 학교가 있다는 사실에 적잖이 놀랐다. 숙제만 없는 게 아니라 시험도 안 본다. 덴마크 전국 초등학생들의 교육 수준을 가늠하기 위해 1년에 한 번 국가에서 시행하는 시험이 있지만, 아이들에게는 결과를 공개하지 않는다. 부모에게 공개되는 성적표도 절대 평가여서 우리 아이가 상대적으로 어느 정도의 수준인지 가늠할 수는 없다. 숙제 안 하는 학교가 아무렇지도 않았던 학부모들이지만, 최근 어수선한 반 분위기로 수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아이들의 재보에 걱정이 되는지 ‘공부 좀 시키자’는 의견이 나왔던 것이고, 그런 학부모들의 요구에 젊은 여 선생은 길게 소신을 얘기했다. 

교장 선생님은 선생님의 이야기를 받아 아이들 사이의 문제는 선생님이 여러분 바뀌면서 신뢰할 만한 어른이 없어서 야기된 문제로 이제 고정적으로 계실 새로운 선생님들이 계시니 아이들은 다시 질서를 찾을 것이라고 부모들을 안심시켜주셨다. 학부모들은 동의하기도 했고, 그렇지 않기도 했지만, 우선은 선생님들을 믿어보기로 한 눈치였고, 이내 학부모 대표에 기꺼이 자원들을 했고, 부모들이 솔선해서 서로 자주 만나 아이들 사이의 문제를 해결하자는 신박한 해결책을 내어놓았다. 한 엄마는 학급 모임과 파티는 자신에게 맡겨달라고 자원하기도 했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SNS 그룹을 새로 만들고, 더 추운 겨울이 오기 전에 모임을 같기로 약속을 했다. 아이들 생일 선물은 이제 아이들도 십 대가 되었으니 기존 20kr (우리 돈 4천 원)에서 50kr (우리 돈 만원)으로 올리는 것으로 합의했고, 생일 파티는 예년처럼 반 아이들 전체를 초대하거나, 여자 아이의 경우 여자아이들 모두, 남자아이의 경우 남자아이들 모두를 초대할 수 있지만, 몇 명만 모여서 하는 것은 금하는 것으로 다시 규칙을 확인했다.  

해답을 찾기는커녕 회의하기 전이랑, 하나도 달라진 게 없는 상태이지만, 어쩐지 다 잘될 것처럼 홀가분하다. 회의가 진행되는 동안 수도 없이 반복했던 같이 풀어가자는 말에, Ja([야] 응)!라고 대답하고 나니, 내 아이만 가득했던 머릿속에 우리 반 아이들이 다 같이 들어왔고, 다 그저 아이들일 뿐이라고 생각하니, 모두의 내일이 밝을 것만 같았다. 말뿐일지 모르는 선생님들의 각오를 믿고 싶어 졌고, 우리 아이들은 모두 문제없이 잘 해낼 것이라고 희망하고 싶어 졌고, 자주 만나 사귀자는 학부모들의 말에도 적극적으로 호응하고 싶어졌다. 

꿈꾸는 이상에 이르지는 못하겠지만, 우리는 분명히 좋아질 것이고 나아질 것이다. 



덴마크에 왔던 첫 해에 학부모 회의에는 학교에서 통역사님을 모셔주었다. 외국인이 많이 거주하는 코펜하겐의 신흥 개발 구역이라 이런 혜택이 있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국공립 학교에 아이를 보내는 모든 외국인 부모는 학교 공식 행사나 개인 면담 시간에 통역을 요청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한다.  모든 것이 낯설 뿐 아니라 언어에는 일도 적응하지 못했던 나는 덴마크 정부의 그러한 배려에 감동하고 감사했다. 무료 통역 지원을 통해 이민자들이 사회에 잘 흡수되도록 지원해 필요한 노동력을 얻어내고 분열 없는 사회를 만들려는 의도라고 한다. 의도야 어찌 되었던 나만을 위한 통역사와 함께 초등학교 학부모 회의에 참석하는 것은 해가 짧은 덴마크라도 괜찮을 것 같은 희망의 시그널이었고, 내 아이가 다니는 학교도 믿을 만하다는 마음을 가지게 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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