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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yaMya Oct 17. 2022

전사 따니아



  

"한국은 어땠어?" 오랜만에 만나는 따니아가 두 팔을 벌리고 달려와 나를 꼭 안은 채 물었다.


"말도 못 하게 더웠지, 그것 말고는 다 좋았어. 좋았던 만큼 헤어지는 일이 힘드네." 한국 다녀오고 한참 향수에 시달리는 중인 내가 따니아의 따뜻한 품에 안겨 푸념을 했다.


"그렇지, 다시 만날 때마다 부모님들은 나이 드시고, 친구들은 애틋하고 그럴 테니... 그래도 너희 부모님은 잘 지내시잖아. 다음에 만날 때까지 별 일 없이 잘 지내실 거야." 따니아가 내 등을 쓸어가며 말했다.


슬며시 그녀의 품을 빠져나오며 조금 촉촉한 그녀의 눈을 보았다.  아마도 그녀는 별 일 없이 잘 지내는 일이 무엇보다 힘든 우크라이나 남부의 부모님을 떠올렸을 것이다. 언제나 나만 아픈 줄 아는 스스로의 가벼움이 한없이 부끄러웠다.


"너는, 여름 어떻게 보냈어?" 미안한 마음에 내가 얼른 질문을 했다.


"큰 아이는 슈퍼에 취직해서 물건 정리하고 있어. 아직 학생이라 종일 근무는 못하지만, 학교 끝나고 몇 시간은 일 할 수 있어. 작은 아이는 덴마크어를 배우고 있고, 막내는 수술 날짜가 잡혀서 병원에 검사하러 다니느라 바빴지. 그리고, 남편이 왔다 갔어." 따니아는 언제나처럼 씩씩하게 대답했다.


"정말? 얼마나? 언제? 어땠어?" 3월에 피난을 나오고 4개월 만에 남편을 만났다는 소식에 나도 흥분을 했다.


"오고 가는데 시간이 많이 걸려서, 딱 4일 같이 있다 갔어. 좁은 방에 다섯이 있느라고 우당탕 정신이 없었지 뭐."


"그래도 좋았지?" 눈가에 주름이 잡히며 환하게 웃는 그녀에게 내가 물었다.


"응, 그럼, 너무 좋았지. 곧 다시 만날 수 있을 테니, 이제 조금만 더 기다리면 돼. 다 괜찮을 거야. 나도 괜찮을 거고, 우리 아이들도 다 괜찮을 거야. 그이도 괜찮을 거야." 선언을 하듯 그녀가 답했다. 그녀는 함박웃음을 보였는데, 나는 눈물이 날 것 같아 매대의 흐트러진 상품들에 눈을 돌렸다.


따니아는 3월에 피난을 온 우크라이나 난민이다. 옆동네에 폭격이 시작되었을 때에도 피난 나올 생각은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곳저곳 길이 끊기면서 청각과 뇌신경 장애가 있는 막내아들이 자유롭게 치료를 받을 수 없게 되자 그녀는 하는 수 없이 피난을 나왔다.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는 국방의 의무가 있는 남자들의 피난을 허락하지 않지만, 아이가 셋이고, 그중 한 아이가 장애가 있는 따니아네 경우는 예외였다. 남편이 원했다면 같이 피난을 나올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남편은 가족들이 없는 동안 집과, 나라를 지키며 기다리겠다고 했고, 함께 가지 않으면 피난길에 나서지 않겠다는 따니아에게 남편은 무슨 일이 생기면 가족을 모두 지킬 수 없을 수도 있고, 그렇게 되면 자신은 더 살아나갈 수 없을 것이라고 그녀를 설득했다고 한다. 남편과 헤어져 아이 셋을 데리고 국경을 넘어 폴란드와 독일을 지나 덴마크까지 온 따니아의 그 여정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다. 전기 설비사로 일하는 따니아의 남편은 전시에 꼭 필요한 인력으로 지금도 폭격이 지난 자리에 전기를 복구하는 공사를 하느라 바쁘다. 그런한 남편이 휴가를 받아 육로로 가족을 만나러 덴마크에 다녀갔던 모양이다.


우크라이나 난민을 위한 무료 상점에서 봉사를 하면서 따니아를 처음 만났다. 시민들이 기부한 물건들을 우크라이나 난민들이 무료로 가져가는 식으로 운영하는 상점이다. 봉사라고 하지만 대단한 일은 아니고, 기부 받은 물건들을 정리하고, 우크라이나 고객들이 필요한 물건을 찾을 수 있도록 안내하는 정도이다. 처음에는 덴마크 사람들의 봉사로 상점이 운영되었지만, 하나 둘 우크라이나 난민들이 자발적으로 손을 보탰다. 자신들을 위해 시간을 내어주는 사람들에 대한 감사라고도 했고, 낯선 나라, 낯선 방에 가만히 앉아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게 힘들기 때문이라고도 했다. 어찌 되었던 그렇게 하나둘씩 모인 난민 출신 봉사자들은 새로 피난 나와 상점을 방문한 우크라이나 고객들에게 좋은 안내자가 되어 주기도 하고, 덴마크 봉사자들에게 우크라이나를 알려주는 선생이 되기도 한다. 우크라이나 봉사자들은 모두 여성이고 엄마이다. 그녀들의 남편들은 모두 우크라이나에 남아 참전을 하거나, 터전을 지키고 있다. 급하게 나오느라 아이들 여권도 챙기지 못해 아이들 서류 문제로 골치를 앓고, 덴마크 정부에서 약속한 주거지를 배정해 주지 않고 계속 임시숙소를 제공해 수시로 이사를 해야 하기도 하고, 부엌이 없는 호텔방에서 몇 달을 사느라 고향 음식 한번 만들어 먹어 보지 못해 힘들어하기도 하고, 몇 번씩 관공서에 다녀왔어도 언어 문제로 체류 문제에 답을 얻지 못하기도 하지만 그녀들은 절대 상점 봉사에 빠지는 일이 없다. 체류 문제가 해결되고 직장을 구해도 바쁜 시간을 쪼개 꼭 봉사를 하러 온다.


따니아도 그녀들 중 하나다. 그녀는 누구보다 밝고 씩씩하다. 한 번은 그녀가 헐떡거리며 상점에 도착해서는 버스에 서류가 모두 담긴 가방을  두고 내려, 작은 아이를 데리고 경찰서, 적십자 사무실, 버스회사 유실물 관리실을 찾아다녀 결국 가방을 찾아왔다는 얘기를 했었다. 짜증도 나고 서럽기도 했을 일과를 웃으면서 들려주는 그녀에게 감격하여 '대단하다, 너무 잘했다' 격려하니 어깨를 으쓱하며 자신은 원래 대단한 사람이라며 화통하게 웃어보이기도 했었다. 청각 장애와 뇌신경 장애가 있는 막내는 따니아를 따라 상점에 나온다. 엄마는 열심히 일하고 아이는 상점의 장난감들을 꺼내 논다. 이젯 5살이 된 아이는 장애와 언어 장벽으로 소통에 문제가 있지만, 엄마를 닮은 화통한 웃음으로 상점의 어른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고 있다.


덴마크 병원에서 따니아의 아들에게 수술을 먼저 제안했지만, 그녀는 전쟁이 끝나면 바로 돌아가야 하니 수술은 받지 않겠다고 했었다. 수술 후 회복 시간이 길어 전쟁이 끝나도 돌아가지 못하게 될까봐 걱정이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녀도 기약 없이 길어진 전쟁에 마음을 바꾸어 결국은 수술을 결정했다. 무상 의료이니 수술비 걱정은 없고, 회복할 때까지 모든 것이 무상으로 제공될 것이라고 몇 번 병원에서 얘기했어도 믿을 수가 없다고 여러 사람에게 확인을 하고서야 그녀는 아주 안심을 했다.


다른 난민 엄마들도 저마다 따니아 만큼의 사연이 있다. 살아 남아 또 새로운 삶을 살고 있는 그녀들을 볼 때면 인간에게 과연 한계라는 게 있을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전쟁으로 삶의 터전을 잃고, 가족을 떠나 평생 상상도 해보지 못한 나라에서 아이를 키우며 살게 된다면, 나에게서도 저런 강인함이 나올 수 있을까?


난민들을 위해 무언가 작은 일이라도 함께 하고 싶어서 시작한 봉사지만, 그녀들을 만나면 오히려 매번 내가 위로를 받는다. 매일 자신의 전선에서 힘차게 싸우고 있는 이들, 우크라이나 난민 여성들의 이야기에 더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연대하며, 또 위로받을 수 있길 바란다.


전쟁이 끝나고, 그녀들이 모두 집으로 돌아갔을 때, 우크라이나에서 그녀들을 만나고 싶다. 이를 악물고 힘을 내지 않아도 되는 곳에서 평온한 그녀들을 꼭 만나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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