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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yaMya Mar 08. 2024

딸, 엄마, 나

에필로그 2

엄마한테 연락이 오면 우선 불편하다. 멀리 사는 딸 심기 살피느라 그나마 조금씩 하던 걱정 섞인 잔소리도 이제는 전혀 안 하는데 그래도 엄마 연락이 불편하다. 엄마는 애잔하고, 미안하고, 짠하고, 고맙고, 사랑하고, 아프고, 그리운데 왜 엄마의 연락이 불편한지 모르겠다. 엄마가 불편하다는 마음이 더 미안하고, 불편하고 미안한 마음을 안 들키려고 애를 쓰다 보니 더 불편하다. 늘 그리운 엄마의 연락이 불편하다니, 못돼 먹은 내 속을 알 재간이 없다. 




학교에서 돌아온 딸에게 딸기 꼭지를 떼어 내어 주려 하는데, 딸이 그런다.

"엄마, 그렇게까지 안 해도 돼. 그냥 주면 내가 꼭지 떼어서 먹을게."

딸은 분명 나를 생각해 주는 것 같은 푸근함까지 담은 표정을 하고 있었는데, 나는 잠시 가슴이 콕 쑤셨다.



Hun ville så gerne hjælpe mig med at gøre mig klar, men der var ikke noget at hjælpe med. Jeg havde styr på det meste. 

Det var længe siden, hun hvade været så snakkesalig. Det føltes næsten omklamrende, men jeg ville ikke gøre hende ked af det og lode hende blive siddende.


Hvis der skulle komme et menneske forbi

Thomas Korsgaards


엄마는 내가 준비하는 동안 나를 돕고 싶어 했지만, 막상 도울일은 전혀 없었다. 대부분 혼자서도 해 낼 수 있는 것들이었다.

엄마는 정말 오랜만에 수다스러웠고, 마치 엄마의 품에 꽉 안겨있는 기분마저 들었지만, 엄마를 서운하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엄마가 곁에 앉아있는 것을 막지 않았다.  


거북이 같은 속도로 읽고 있는 덴마크 소설의 한 부분이다. 덴마크 시골 마을에서 자라는 어느 소년의 성장을 느리게 다룬 소설로 덴마크어를 느리게 읽는 나와 딱 맞는다는 생각으로 읽고 있다. 교회의 입교식에 참석하기 위해 치장을 하던 십 대 소년은 엄마가 필요하지 않을 뿐 아니라, 도우려는 엄마 때문에 갑갑한 심정마저 느끼지만 엄마를 서운하게 하지 않으려고 잠시 어린아이처럼 엄마에게 제 머리를 맡기는 장면이다. 숙제하는 심정으로 단어 하나하나를 짚어가며 읽다가 이 대목에서 엄마가 불편한 나와, 딸기 꼭지 떼어주는 엄마에게 미안함과 부담을 느꼈을 딸을 떠올렸다. 

나도 어느새 애잔하고 고맙고 미안하고, 불편한 엄마가 되었구나.

부모가 되고 자식이 된다는 것은 아무리 내가, 내 아이가, 내 부모가 특별하게 느껴져도 어쩔 수 없이 뻔할 수밖에 없는 고맙고 미안한 그런 사이가 되는 것이구나. 내가 그렇듯이 너는 이유 없이 나를 불편해하고 그래서 미안하겠지. 나는 네게 불편한 사람이 되지 않으려고 애쓰겠지만, 참지 못하고 구애하겠지. 

나도 머지않아 불편한 엄마가 될 터이니, 엄마를 향한 나의 불편함에도 조금은 편해져야겠다. 그리고 언젠가 내 연락을 불편해 할 딸을 향할 서운함도 미리 덜어내야겠다. 나만큼 못돼 먹은 딸이라면 담담히 받아들여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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