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차 때 썼던 글. 3년차가 돼서도 똑같네
한 달쯤 됐을까. 야근이 끝나고 캡이랑 술을 마신 적이 있다. 캡은 내 카톡 프사 중 하나였던 위의 짤방을 문제 삼았다. '영웅은 공부를 하지 않지만 너는 공부를 해야 한다'라고 했다. 나는 세 가지 포인트에서 놀랐다. 하나, 우리 캡이 1년도 더 전에 아무 생각 없이 올려놓았던 내 카톡 프사를 봤다는 것(대학 졸업을 앞두고 있던 나는 시험공부를 하기 싫어 괴로워하다 충동적으로 저 짤방을 올려놨었다). 또 하나, 캡이 꼰대스럽다는 건 익히 알았지만 카톡 프사를 가지고 잔소리를 할 정도의 꼰대였다는 것. 마지막 하나, 정확한 지적이라는 것.
작년 6월 인턴 면접에서 면접관 한 명이 나한테 이런 말을 했더랬다. "공부나 더 하면 되겠구먼 굳이…" 나는 면접 준비를 전혀 안 하고 갔기 때문에 질문들에 썩 답을 잘 하진 못했다. 그래도 그 말을 듣는 순간 위기감을 느낄 정도의 눈치는 있었다. 여기서 아무 말도 못 하면 나가리다, 죽을 때 죽더라도 '찍' 소리는 내야겠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말했다. "대학원은 공부를 다른 어떤 것보다 더 재미있어하는 사람이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런 사람은 아닌 것 같습니다." 면접관의 반응은 신통찮았지만, 나는 그럭저럭 괜찮게 대답했다고 생각했다. 어쨌든 나는 인턴에 뽑혔고, 인턴을 마친 후엔 최종면접을 거쳐 기자가 됐으니까.
문제는 기자도 공부를 해야 한다는 거다. 기자의 공부는 대학원생의 그것과는 당연히 다르지만 꾸준함을 요한다는 점에서는 비슷하다. 신문을 항상 챙겨보고, 다른 신문들은 돌아가는 이슈를 어떻게 다루는지 따져본다. 어떻게 차별화할 수 있을지(이 바닥에선 '각을 세운다'라고 한다) 머리를 굴리고, 더 크게 키울 만한 부분이 없는지도 알아본다.
동시에 사람을 만나야 한다. 기삿거리가 되는 작은 힌트들은 보통 사람의 입에서 나온다. 그 사람이 누가 될지는 알 수 없다. 경찰, 소방관, 병원, 구청 직원, 대학 교수, 택시 기사, 술집 사장... 물론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만나봐야 기삿거리가 나오지는 않는다. 돌아가는 이슈들을 머릿속에 최대한 욱여넣고 어떤 포인트에서 새로운 '뉴스'를 뽑아낼 수 있을지 생각해 본다. 그리고 나의 관점이 타당한지 아닌지를 설명해줄 수 있을 만한 사람한테 물어본다. 자연스럽게 질문은 구체적으로 구성된다. 답변도 구체적으로 돌아온다. 이런 과정 없이 '요즘 기사 쓸만한 게 뭐 없을까요?'라고 물어본다면 '우리 딸이 이번에 수능을 봤는데...' 따위의 답밖에 돌아오는 게 없다.
사실 나는 저것들 중 아무것도 안 했다. 신문도 잘 안 챙겨봤고 마와리도 잘 안 돌았다. 그러니까, 공부를 안 하는 거다. 물론 모 선배는 저런 '공부'를 안 해도(본인피셜이다) 기삿거리 잘만 찾으시고 취재도 거침없이 하시고 단독도 이것저것 물어오신다. 사실 기동팀의 현 상황은 '난세'라고 칭해도 부족함이 없을 지경인데 그야말로 '난세의 영웅'이다. 하지만 나는 영웅이 아니다. 삼국지 게임으로 치면 능력치 하나 정도만 간신히 50을 넘기는 미방이나 부사인쯤 되겠다. 캡의 지적이 아프게 다가올 수밖에.
공부를 안 하면 티가 난다. 기동팀 동기들이 다들 사회면 톱 기사를 1~2개쯤 썼지만 나는 아직까지 톱 기사를 못 썼다. 동기나 가까운 선배들은 내가 이런 고민을 토로할 때마다 비교할 필요 없다, 다 똑같다, 캡이 지나치게 쪼는 거다,라고 얘기해 준다. 한 가지 다행인 것은 내가 그런 말에 안심할 정도로까지 바보는 아니라는 거다. 만약 그랬다면 애초에 취직조차 못했을 거다. 캡에 대해 기동팀원들 입에서 불만이 나오는 데는 다 이유가 있지만 저 지적만큼은 정확하다.
나는 그날 술을 마시고 나서 이틀쯤 있다가, 카톡 프사들 중에서 저 짤방을 지웠다. 여전히 제 몫은 못 하고 있지만, 그래도 공부는 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