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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똥가리 Nov 26. 2021

잘 곳이 없네

나미비아에서 보츠와나까지 1,000km 이동.

 아프리카 여행의 세 번째 여행지 '보츠와나'


한때 FIFA 랭킹 53위까지 올랐고 아프리카 대륙 국가 중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잘 시행하는 나라. 세 번째 방문 국가인 보츠와나는 역사가 놀라운 국가다. 츠와나족의 세 추장이 영국으로 건너가 식민지로 만들려는 계획을 무산시켰고, 민주주의와 법치주의가 통하는 독립 국가를 만들어 지금까지도 유지하고 있다. 다이아몬드 채굴 지역에 살던 산족(부시맨)을 강제로 이주시키려고 하자 국가를 상대로 제소를 했고 승소 판결을 받았다고 할 정도. 민주적인 것으로 아프리카 대륙에 있는 국가 중 으뜸이다. 

 보츠와나는 다이아몬드가 국가 경제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데, 채굴한 다이아몬드는 누군가의 사익을 채우는 데 이용되지 않고 무료 교육과 의료 혜택에 사용됐다. 아프리카에 그런 나라가 있었나 싶은 생각을 하면서 조금 반성을 했다. 조금 아는 것을 전부로 여기는 흔한 오류에 대한 반성.


 그 오류는 나에게도 그들에게도 있었다. 평화로움과 습지와 초목과 가축을 보면서 나는 여기가 아프리카가 맞나 싶어 놀랐고, 그들은 김정은이 트럼프와 맞짱을 뜨고 있는 위험한 시국에 여행 온 우리를 놀라워했다. 쌤쌤이다. 사람이 그렇지, 뭐. 


나미비아에서 보츠와나 '마운'까지 무려 1,000km

사파리 투어의 매력에 흠뻑 빠지게 했던 나미비아 에토샤 국립공원에서 보츠와나로 출발했다. 보츠와나에서 우리가 방문하기로 한 곳은 삼각주 오카방고와 초베 국립공원, 이렇게 두 곳. 

 먼저 삼각주 오카방고에 들르기 위해 마운이라는 곳으로 향했다. 너어어무 먼 거리다. 무려 1,000km. 

안전 문제로 심야 운전은 불가능하다. 해서, 중간 어느 지점의 어느 숙소에서 캠핑 아닌 '숙박'을 하고 이틀에 걸쳐 움직이기로 했다. 

 개인 짐과 캠핑 장비와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물건들을 트렁크에 꽉꽉 블록 쌓듯 채워 넣고 달리기 시작. 차는 요람이 되고 우리는 아기가 되어 잔다. 실신의 시간이다. 달리고, 달리고, 또 달리고, 달리고. 중간중간 휴게소 같은 패스트푸드 식당에서 햄버거류의 음식을 먹으면서 계속 이동을 했다. 달리고, 달리고, 또 달리고, 달리고. 그렇게 중간 어디쯤 방이 있는 곳에서 하루를 잤다. 꿀잠. 나미비아 스바코프문트에 이어 두 번째로 침대가 있는 곳에서 잤다. 꾸울잠!! 

보츠와나에는 덩키가 산다

잠도 잘 잤고, 숙소에서 제공한 조식까지 든든히 챙겨 먹어서 이제 곧장 목적지까지 달리기로 하고 2일 차 다시 이동을 시작했다. 조금씩 달라지는 풍경을 보니 보츠와나에 점점 가까워지고 있는 것 같다. 

사막과 사파리의 나라, 나미비아와는 분명 달랐다. 아프리카 남부 내륙에 자리 잡은 보츠와나는 나무가 많았고 가축을 키우고 살았다. 심지어 마차를 타고 달리는 풍경이 곧잘 보였는데, 그 마차의 주인공은 바로 덩키였다. 슈렉에 나오는 것과 같은 덩키를 몰고 마부가 유유히 사라지는 것이 아닌가. 


보츠와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교통수단, 당나귀


보츠와나 경제는 다이아몬드에 거의 대부분을 의존하고 있지만 20%가량은 목축업과 농업이라고 했다. 나미비아와는 달라도 너무 다른 환경이다. 마치를 보고는 눈이 휘둥그레 해졌는데 덩키를 보고는 눈이 반짝하고 떠진다. 이렇게 귀여울 수 있나? 얼굴에 "나, 순둥이"하고 써진 표정으로 타박타박 농부를 태우고 걸어간다. 

어쩔 수 없이 다시 하게 되는 생각은 "여기 아프리카 맞아?".


보츠와나 '마운' 도착. 그런데 잘 곳이 없네 

우리는 우선 삼각주에 자리 잡은 캠핑장으로 직진했다. 작은 읍내 분위기의 마운에 도착해 보니 강을 끼고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강가를 따라 쭉 달려서 목적지에 도착했다. 길을 잘못 들어선 것인지 강 건너편 막다른 오솔길에 놓인 가림막 앞에서 멈췄다. 두 명은 차를 지키기로 하고, 나머지는 캠핑장 숙박이 가능한 지를 알아보기로 했다. 가림막 건너편으로 운치 있게 놓인 나무다리를 건너 다니는 사람들이 보인다. 산책로 같다. 그 나무 건너편에 캠핑장이 있다고 GPS가 알려준다. 불행하게도 그날은 캠핑장이 가득 찼다. 이제 곧 깜깜해지는데. 어느 추리 소설에 보츠와나가 언급이 된 이후 관광객들이 많아졌다고 하더니, 캠핑장에 자리가 없다. 


당황하지 않고, 우리는 근처에서 가격이 적당한 텐트형 숙소를 찾았다. 한국의 글램핑처럼 호화로운 건 아니지만 텐트와 야전 침대가 있는 캠핑장이다. 수영장도 있고, 원두막으로 된 부엌에서 마음껏 음식도 해 먹을 수 있다. 


숙소 앞, 오카방고로 흐르는 강
음식을 해먹을 수 있는 식당 겸 휴게실                                                                       숙소 내 수영장


이곳에서 우리는 2박을 하기로 했다. 첫날은 늦은 시간이니 저녁을 먹고 잠을 청하기로 했다. 다음 날은 오카방고 투어를 예약하고 환전과 장보기 등 일상적인 일들을 처리하면서 1,000km 이동의 여독을 풀기로 했다. 


 보츠와나에서 만난 사람들은 전형적인 농가 주민들의 모습이었다. 느긋했고 목가적인 분위기가 마음에 위안이 되었다. 단지, 물과 나무가 많은 곳이라 모기에 대한 주의가 필요하다. 그 외엔 아프리카 대륙에서 숲과 오아시스를 만난 기분이랄까. 농사를 지어서인지 짚으로 된 초가집과 오두막이 많아서 옛날 우리 시골 마을 같은 분위기도 난다. 


식당과 휴게실을 겸하는 곳에서 한식을 마음껏 해 먹었다. 주방과 청소를 담당하는 건강한 할머님이 계셨는데 내 수건일 줄 알고 공용 행주를 가져갔다가 돌려주러 갔을 때 함박 웃어주시던 얼굴이 아주 정겨웠던 기억이 난다. 덤벙대고 허술한 나를 보고 경계심을 푸셨던 것 같다. 떠나던 날은 샘터에서 빨래를 하시다가 손을 흔들며 한껏 배웅을 해주셨다. 돌아가신 할머니가 생각나서 참 좋았던 분이다. 


나미비아와는 또 다른 아프리카. 잘 곳이 없어 고생스럽긴 했지만 긴 여정 끝에 찾아간 보츠와나는 신선했다. 

나미비아는 관광객을 잘 맞이할 준비가 된 캠핑장이 많았는데, 보츠와나는 마을 속에 리조트형 캠핑장을 이루고 있다. 뜻밖에 찾아간 우리 숙소는 천막이 쳐져 있었지만 그것도 어찌 보면 야영인 셈. 

이곳에서 잘 쉰 후, 우리는 퇴짜 맞았던 캠핑장으로 다시 숙소를 옮겼다. 텐트를 치고 자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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