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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똥가리 Nov 13. 2021

사파리 투어 '게임 드라이브'

길을 양보하세요 

사파리 투어 '게임 드라이브'


사파리 캠핑장은 나미비아 에토샤 국립공원 내부에 자리하고 있다. 숙식은 캠핑장에서 해결하고 낮엔 차를 몰아 사파리 투어를 즐긴다. 캠핑과 사파리 투어라니 이보다 더 좋을 수 있을까. 텐트에서 자고 일어나서 이빨 닦고 세수하고. 아침을 먹고 나면 차를 타고 사파리로 산책을 나서는 셈이다. 아프리카에서 캠핑을 하는 사람이 아니고선 누릴 수 없는 스페셜 타임이다.


사파리 캠핑장에서 둘째 날 아침이 밝았다. 전날 저녁밥을 지은 후 남겨둔 누룽지로 숭늉을 끓여 먹고 잠시 휴식을 취했다. 심야 관람을 즐겼던 워터홀이 있는 곳으로 이동해 모닝커피를 마시며 나만의 시간을 누렸다. 사막의 작은 웅덩이를 보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그 시간이 얼마나 자유로운지. 그렇게 한 시간을 보내고 해가 뜨거워지기 전, 일행과 같이 사파리 투어에 나섰다.


사파리 드라이브 투어를 위해 국립공원 안내 책자를 챙겨 들고 출발. 안내 책자에 국립공원 내 사파리에서 운전이 가능한 길과 그 길에서 주로 서식하는 동물이 표시되어 있다. 이 책자를 가지고 길을 확인하면서 정해진 루트로 다니면 된다. 우리는 사파리 투어를 하면서 눈으로 본 수많은 새들과 동물들을 그림에 체크하며 다녔다. 나름의 동물 찾기 게임을 즐겼다. 우리처럼 동물을 확인하고 다니는 사람이 많아서 사파리 투어를 '게임 드라이브'라고 한다.


1. 국립공원에서 제공하는 지도                2. 에토샤 사파리에서 볼 수 있는 동물 사진             3. 사파리 내부 도로가 표시된 지도

 


게임 드라이브의 규칙

사파리는 동물을 위한 길이다. 사람이 잠시 허락받고 지나다니는 곳으로 이해하는 것이 맞다. 모든 길에서 동물 우선주의를 적용해 양보해야 한다. 동물이 길을 건널 땐 미리 멈춰야 하고 경적을 울려서도 안 된다. 

길 구간구간 세워진 비석을 표식 삼아 정해진 길로만 다녀야 한다. 출입금지가 표시된 곳이나 애매한 구간으로 진입하는 것을 엄격히 금하고 있다. 잘못 들어서도 벌금을 세게(!) 내야 한다. 동물 보호 구역이 존재하기 때문에 눈을 똑바로 뜨고 다녀야 한다. 정신도 똑바로 차리고 다녀야 한다. 대충대충은 봐주는 게 없다.


빨리 달릴 수도 없다. 저 멀리 가시나무 사이에 혹여 숨어있는 사자를 놓칠까 봐 아주 더디게 움직인다. 

사막의 노란 먼지바람과 뜨거운 태양빛 때문에 실눈을 뜨고 관찰하느라 거북이 운전을 한다. 추월해서 급하게 가는 차량도 없고, 길에서 차를 만났다고 놀라는 동물도 없다. 딱히 무서워하지도 않는다. 

만약 앞쪽에 차가 서 있다면 그곳에서 뭔가를 발견한 것이다. 그래서 추월하는 게 아니라 꼬리에 달라붙는다. 


코끼리를 따라 걷는 임팔라 무리
코끼리를 따라 걷는 임팔라 무리


트럭 몇 대가 저 멀리 멈춰 서있는 걸 보고 곧장 그곳으로 갔다. 코끼리를 선두로 해서 사막을 가로질러가는 한 무리의 임팔라를 구경하고 있었다. 코끼리가 자기들의 우두머리라도 되는 냥 임팔라가 뒤를 따른다. 공생의 법칙이 작용한 게 아닐까 싶다. 코끼리 뒤에 임팔라, 임팔라 뒤에 새떼가 뒤를 이어가는 장면은 정말이지 장관이다. 어디로 가는 건가 궁금해 시선을 움직여봤다. 저 앞으로 그늘을 드리운 나무 한 그루와 작은 물 웅덩이가 보인다. 점점 뜨거워지는 태양을 피해서 무리 지어 이동하던 중이었나 보다.


국립공원 내부 도로를 한 바퀴 돌아서 캠핑장에 복귀하는 코스를 도는데 꼬박 반나절이 걸렸다. 초반 코스에선 코끼리를 많이 봤다. 때마침 대가족인 코끼리 무리가 길을 건너는 것을 보고 차를 세웠다. 우리를 피해 떠나버릴까 봐 노심초사했는데. 괜한 기우였다. 

 

아무 일 없다는 듯, 갈길 가는 코끼리 가족에게 포위를 당한 채 우리는 숨을 죽여야 했다. 창문으로 다가올 때는 차를 뒤집는 게 아닐까 싶어 겁이 났다. 소리도 지르지 못하고 눈만 부릅뜨고 있었다.


제일 큰 어른으로 보이는 코끼리들이 차량에 가까이 와서 확인하듯 눈을 마주치고 간다.



코끼리 아저씨는 발이 도구래요.

제일 뒤에서 길을 건너던 코끼리 한 마리가 멈춰 섰다. 맛있어(?) 보였는지 가시덩굴 앞에 우뚝 섰다. 

코끼리 아저씨는 코가 손이라고 했다. 그런데 발도 쓰더라. 

발로 주변을 휘휘 정리하더니 코로 풀을 딱 휘어잡았다. 그리고는 발로 밑동을 툭! 차는 게 아닌가. 

풀이 툭 끊어지자 입에 몽땅 집어넣고 오물오물 씹어먹는다. 빵 터졌다. 

코만 쓰는 줄 알았는데 발도 쓰고 머리도 쓰더라.

한 손으로 벼를 잡고 다른 손에 낫을 들고 벼를 베는 농부나 다름없다. 

코끼리는 모르겠지. 무심한 듯 시크하게 발로 툭툭 차고 다니는 모습이 얼마나 귀여운지. 


코끼를 본 후 캠핑장으로 방향을 잡고 길을 가다 보니 얼룩말과 기린이 무리 열심히 밥을 먹고 있다. 

임팔라는 확실히 코끼리와 더 친한 듯하다. 뚝 떨어진 한 마리의 임팔라가 위태로워 보인다. 

기린과 얼룩말은 얼굴이 정말 닮았다. 정확하게는 눈이 똑같다. 긴 속눈썹으로 지그시 바라볼 때 눈이 마주치면 절로 호들갑스러운 반응이 나온다. 한참 눈싸움을 끝내고 돌아오던 길, 캠핑장 가까운 곳에 먹이를 찾으러 다가오고 있던 자칼을 만났다. 비쩍 마른 모양새에 체격이 꽤나 작았다. 하지만 눈빛은 역시 기린과 다르다. 


얼룩말과 기린이 생활하는 구간을 지나는 중
1. 자칼 한 마리가 차를 향해 어슬렁어슬렁 걸어오더니 길 가에 배를 깔고 누웠다.    2. 혼자 떨어진 임팔라


사자는 역시나 만나기가 어려웠다. 사파리 캠핑장에서 2박 3일을 지냈지만 앞뒤로 이동하는 날을 빼면 딱 하루의 여유뿐이어서 몹시도 아쉬웠다. 


게임 드라이브의 최상위 동물 '빅 5'


에토샤 국립공원에서는 이렇게 캠퍼들이 자유롭게 혹은 투어 트럭을 이용해 게임 드라이브를 즐긴다. 순위를 매기거나 그런 경쟁이 아니다. 설렘을 즐기는 게임이다. 어떤 동물을 보게 될지를 기대하는 마음으로 차를 타고 다니며 각자 게임을 즐기는 것이다. 


게임 드라이브의 최고 승자는 '빅 5'를 모두 찾아낸 사람이다. 사파리의 왕이라고 할 수 있는 사자와 표범, 코뿔소, 코끼리, 버펄로를 모두 보는 사람은 부러움의 대상이 된다. 빅 5를 만나려면 최소한 일주일을 머물러야 가능할 듯하다. 우리는 코끼리와 코뿔소와 사자(워터홀의 심야관람으로 아주 흐릿하게나마 봤으니까) 이렇게 빅 3을 본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습지가 아름다운 '보츠와나'로 

캠핑장으로 돌아온 후엔 수영장으로 갔다. 시원한 음료를 마시며 해가 떨어질 때까지 열을 식혔다. 텐트는 뜨거운 태양에 찜질방 같았다. 게임 드라이브를 즐긴 낮 시간에 사자와 표범을 보지 못한 아쉬움도 식혔다. 


사파리를 온전히 즐기기엔 2박 3일의 시간이 너무 짧다. 무려 한 달가량의 아프리카 여행인데. 장거리 이동에 많은 시간이 걸려서 방문하는 곳마다 아쉬움이 크게 남는다. 할 수 없다. 이동도 여행의 일부가 아닌가. 어쩌면 길 위에서의 시간이 특정 목적지에서의 기억보다 더 의미 있게 여겨질 때도 있으니까. 


사막의 나라 - 나미비아의 여정을 마칠 때가 됐다. 에토샤 국립공원의 워터홀에서 마지막 심야 관람을 끝으로 우리는 아프리카 여행의 세 번째 국가 '보츠와나'로 떠날 준비를 했다. 아프리카가 아니라 중세 유럽인가 싶던 '보츠와나'에는 영화 '슈렉'의 넘사벽 캐릭터 '덩키'가 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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