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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똥가리 Nov 06. 2021

캠핑장 '심야 관람'

사파리 캠핑장에 동물의 왕국 '워터홀'이 있다.

한국에선 산수가 만드는 절경을 캠핑에서의 일상으로 누리는 편이다. 첩첩으로 이어지는 산 능선의 그림 같은 풍경과 운무, 호수 혹은 저수지와 물안개, 사계절 달라지는 나무와 숲과 꽃 천지를 보는 즐거움이 있다. 우리가 사는 곳에서 조금만 나가면 어디서나 가능하다. 

'사파리 캠핑장'은 아프리카에서만 즐길 수 있는 유니크한 경험을 제공한다. 동물의 왕국을 내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는 '워터 홀'의 심야 관람이 매일 상영(?)된다.



아프리카의 생명수, 워터홀

 나미비아 사막 사파리는 지평선과 하늘 외에 따로 눈에 들어오는 것이 없다. 마른나무가 전부다. 한낮이면 사람도 동물도 태양을 피하기 위해 나무 그늘에 숨는다. 도로를 달리다 보면 나무 밑에 항상 사람이 있거나 동물이 있거나, 혹은 사람과 동물이 같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가혹할 정도로 뜨거운 태양과 건조한 바람을 피하는 일에 동물과 사람의 구분이 없다. 그리고 밤이 되면 마르지 않는 워터홀을 향해서 동물들이 목을 축이기 위해 움직인다.


한낮의 사파리. 나무 그늘에 피신 중인 코끼리. 나무 위의 검은 덩어리가 사자인 줄 알았다. 새둥지였다. 


 워터홀은 아프리카의 야생동물들에게 생명수를 제공한다. 

깊은 산속 옹달샘은 새벽에 토끼가 와서 물을 먹고 가고, 아프리카 워터홀은 심야에 아프리카 야생 동물이 와서 물을 먹는 곳이다. 

 여기서 사람이 할 일은 가만히 앉아서 지켜보는 것이다. 사파리 내부의 모든 캠핑장이 워터홀을 하나씩 낀 자리에 위치하고 있다. 담장을 둘러치고 동물이 사람을 해치거나 사람이 동물을 해치는 일이 생기지 않게 대비하고 있다. 밤이 되면 캠핑장과 가까운 워터홀에 딱 하나의 불을 켠다. 영화관과 다를 게 없다.


일몰이 끝나갈 무렵, 워터홀에 단 하나의 가로등이 켜진다.


 자연 속 영화관 '워터홀'의 심야관람


 밤이 되면 워터홀이 다큐멘터리 상영 영화관이 된다. 연극 무대라고 하는 게 더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그 무대에 대체로 제일 먼저 등장하는 것은 작은 동물이다. 작고 마르고 쓰레기통 주변을 배회하던 자칼과 더 작은 동물들이 바위 사이로 숨바꼭질하듯 달려와서 물을 마신 후 달아난다. 작은 동물, 초식 동물, 천적 관계가 아닌 큰 동물 순서로 물을 마신 후 떠난다. 

 그날도 그랬다. 작고 마른 자칼과 기린 무리가 물을 마시고 떠난 후, 저 멀리서 코끼리가 먼저 나타났다. 지평선에 큰 코끼리의 실루엣이 먼저 보이더니 조금씩 거리가 가까워지자 아기 코끼리 두 마리가 나란히 옆에서 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아기 코끼리다." 누구랄 것 없이 들뜬 목소리로 흥분한다. 

 한 발 한 발 아기들을 앞세우고 오던 엄마 코끼리의 실루엣에 가려 보이지 않았던 아가들이 워터홀이 가까워지자 껑충껑충 달린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어린 아가들은 좋은 것이 보이면 달리고 보는 것이 똑같다. 

 그런데 오른쪽에서 코뿔소 한 놈이 나타나더니 성큼성큼 치고 들어와서는 어느새 워터홀을 장악했다. 뒤이어 나타난 기린까지 줄줄이 기다리게 한다. 포악하기로 유명한 코뿔소의 위력을 실감했다.


코뿔소 때문에 코끼리 가족과 기린이 대기 중이다. 코뿔소는 포악하기로 유명하다. 건드리지 않는 게 상책.


 그리고 늦은 밤, 상위 계층에 속하는 포식자들이 찾아온다. 그때쯤이면 상영 중인 영화의 클라이맥스를 보는 듯한 긴장감을 느낄 수 있다. 혹여 천적들이 만나면 어마어마한 긴장감이 현장에 흐르기 시작한다. 

 아기 코뿔소 한 마리를 데리고 온 엄마 코뿔소가 사자와 대면했을 때가 그랬다. 

 아기 코뿔소가 물을 마시는 동안 엄마 코뿔소는 한 모금도 마시지 않고 사자를 향해 똑바로 선 자세로 동상처럼 서 있었다. 워터홀에서 심야 관람을 하던 사람들은 모두가 절로 숨을 죽이고 지켜봤다. 사자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바위 뒤를 어슬렁어슬렁 걸어 다니며 그르렁대는 소리로 위협했다. 그 소리는 한 밤의 사막에 서라운드로 울렸다. 

 '사자후'. 사자후가 이런 것이구나.  


주변을 끝없이 배회하는 두 동물 사이의 긴장감이 피부에 그대로 느껴진다. 몇 십분 동안 꼼짝하지 않고 상대를 바라보면서 대치하는데, 먼저 덤비지도 않고 워터홀을 떠나지도 않는다. 오늘 밤 이곳에서 한 모금의 물을 마셔야만 내일을 버틸 수 있는 것처럼 버티고 있다. 워터홀이 몇 군데씩 위치하고 있지만 거리가 꽤 멀어서 떠날 수가 없는 것이다.


망원경이 필요해


 캠핑장에서 마련한 담장 뒤편 어두운 자리에 앉아서 숨을 죽이고 지켜봤다. 불어로 속닥속닥 흥분을 감추지 못하던 프랑스 캠퍼들은 망원경을 가지고 사자를 쳐다보고 있었다. 준비된 그들의 검고 작은 망원경이 정말로 탐이 났다. 우리에겐 실눈뿐이었는데. 우리에겐 사자가 강낭콩으로 보였는데.

 아프리카 캠핑 여행에서 유일하게 후회했던 것이 '망원경'을 준비하지 못한 점이다. 살 곳도 없고 아프리카에서 사기엔 만만찮은 가격일 것 같았다.


'워터홀'의 심야관람은 정말 흥미진진했다. 중독적이다. 사파리 캠퍼들에겐 일종의 게임과 같았다. 오늘은 무엇을 볼까? 내일은 무슨 일이 일어날까? 기다림과 인내심을 발휘하며 몇 시간이고 앉아 있게 만든다. 어둠 속에서 꿈틀 움직이는 것을 발견한 순간 누군가 손가락을 들어 올리고, 근처에 있던 모든 사람들의 눈이 쏠린다. 경외감과 순수한 호기심이 사방에 가득이다. 그래서 담장을 따라 자리 잡고 있는 롯지(프라이빗 하우스 형태)의 테라스에서 매일을 보내는 사람들이 그렇게 부러웠다. 명품 가방을 봐도 꿈틀대지 않는 감정이 원두막으로 지어진 아프리카 롯지 앞에서 뿜 뿜 샘솟았다.

 이곳에서 캠핑을 하는 동안, 낮에는 사파리를 투어를 하고 캠핑장에 돌아온 후엔 저녁을 먹었다. 그 후엔 곧장 워터홀에서 죽치고 기다리는 일의 반복. 중독되는 즐거움을 마음껏 누렸다. 

 마치 자연 속 영화관에 앉아 있는 기분을 만끽하며 캄캄한 하늘 아래 조명이 켜진 워터홀을 지켜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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