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썹과 두 개의 마스크와 핸드크림.
팬데믹이란 커다란 파도를 맞은지도 1년.
그간 인류의 생활양식에 큰 변화들이 많이 있었지만,
큰 변화에 묻혀 별로 주목하지 못했던 내 작은 변화를 기록해 보았다.
여러 사람들을 마주하며 본 것은 깊은 눈동자 외에도
깔끔하고 지저분한 여러 종류의 눈썹들이다.
업무 관련 미팅을 주로 외부로 나가는 편이다. 나가기 전 머리는 빗어 깔끔히 정돈하고, 화장은 수분크림으로 마무리한다. 화장을 즐겨했었는데, 이렇게 외출 준비를 마무리한 지도 벌써 1년이 지났다. 어차피 눈 아래의 면적은 안 보일 것이기 때문에 이 정도로 충분! 미팅 준비라고 해서 평소와 크게 다르지는 않지만, 마스크를 쓰는 일상이 지속되면서 전보다 신경 쓰는 것들이 있다.
마스크를 쓰면서 입꼬리와 광대의 근육으로 감정을 전달하지 못하기 때문에, 누굴 만나도 시선은 눈과 눈 주위 근육 움직임에 더 집중하게 된다. 나만 그런 것인지 모르겠지만 눈을 더 마주치고 들여다보게 된다. 여러 사람들의 눈을 마주치며 본 것은 깊은 눈동자 외에도 깔끔하고 지저분한 여러 종류의 눈썹들이다.
다양한 사람의 생김만큼 다양한 눈썹을 대면했기에, 마주 앉은 이에게만큼은 깔끔해 보이고 싶다. 다른 노력 대신, 눈썹 정리에 조금 시간을 쓴다. 앞머리가 내려와 있다면 안보일 눈썹이지만, 나는 깐 머리라 잘 보인다. 잔털을 제거하고 칼로 다듬어 손질하고 펜슬로 모양을 잡아 양쪽이 대칭이 되도록 슥슥 그려준다. 다른 색조 화장품들은 줄어들질 않는데, 눈썹 펜슬은 유독 짧아져 간다.
미팅 시에도 커피나 다과를 먹을 때를 제외하고는 입과 볼을 보일 일이 없기 때문에 여러 감정들을 눈 근육을 이용해 표현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원래 웃을 때 입으로 ‘푸하하’ 하며 웃지만, 마스크 밖에 있는 눈 주변 근육을 움직여 인위적이지 않은 초승달 모양이 되도록 웃는 게 감정 전달이 된다는 것을 터득했다. 특히 1:1이나 1:2 미팅에서는 더욱.
계속 이런 식으로 살다 간 눈가 주름이 자글자글해질 상상에 우울하기도 하지만, 화장하는 수고로움 대신이라 생각하면 괜찮은 대가인 것도 같다.
집 밖에서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는
두 종류의 마스크를 챙겨 나간다.
가끔 만나는 예쁘고 슬림한 친구와 함께 티타임을 가지고 있다가, 마스크 때문에 아픈 귀를 만지작거렸다. 내 모습을 보곤, 친구는 ‘마스크 때문에 귀가 아픈 적이 한 번도 없다’는 고백을 했다. 친구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마스크가 약간 헐거워 보이기까지 하니, 모델같이 작은 얼굴을 가진 그 친구라면 가능한 얘기였다.
외부에서의 약속이 잡히면, 밖에 나가 대중교통과 공공장소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다. 집 밖에서의 시간이 길어질 것 같으면 두 종류의 마스크를 챙겨 나간다. KF94와 수술용 덴탈 마스크. 일명 수술실 의료진들이 쓴다는 ‘귀가 안 아픈’ 마스크다. 유동인구가 조금 적은 곳에서는 덴탈 마스크로 바꿔 쓰고 귓등의 피로를 줄여준다. 귓등의 피로뿐 아니라 숨쉬기도 조금 낫다. 신체가 조금 편안해지면, 다시 KF94로 착용한다.
마스크 시대가 수십 년 이상 지속된다면 인류의 귀 위치가 바뀔 거라 확신한다. 조금은 얼굴과 가까워질 것이고, 콧 등위에 생긴 안경 받침 자국처럼 귓 등에도 고무줄 자국이 진하게 남아있을지도 모른다.
모델 같은 작은 얼굴이라면 귀가 아플 일도 없고, 고무줄 자국을 걱정할 일도, 귀 모양 변형에 대한 고민도, 굳이 두 가지 마스크를 챙기는 귀찮은 일도 필요 없겠지만.
누군가의 손등에 핸드크림 한 덩이
짜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친구가 새로운 사업을 준비 중이라 내가 도움을 주게 되었다. 친구의 동네에 있는 카페에서 만나 시원한 음료를 주문하고, 자리에 앉아 비치된 소독제로 손을 비볐다. 소독제가 증발되며 건조한 손등이 느껴지는 찰나, 친구는 내 손등에 핸드크림을 짜주었다.
노트하나, 펜슬 하나도 좋은 브랜드의 아름다운 제품을 고집하는 이 친구는, 신생 브랜드의 핫한 핸드크림을 가방에 넣어 다니는 남자 사람이었다. 위생을 우위에 두고 살았던 일 년 동안, 나의 ‘핸드크림’은 현관 밖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사실이 문득 떠올랐다. 마스크랑 알콜스왑, 소독제는 늘 함께 외출했지만, 봄과 여름을 지나 다시 겨울이 왔을 때, 나는 왜 핸드크림을 생각하지 못했을까.
사실, 소독제는 공공장소 어디를 가도 비치되어 있기 때문에 나에게 더 필요한 건 핸드크림이었을 텐데 말이다. 코로나바이러스가 내 가방 속 아이템에는 영향을 끼쳤지만, 그래도 내 친구의 ‘센스’에는 침투하지 못한 거 같아 기뻤다.
겨울이 시작되면 향기 좋은 신상품을 하나씩 골랐었고, 생일선물이나 기념품으로 주고받기 좋은 아이템도 핸드크림이었다. 더듬어보면 가을 끝자락이자 겨울의 시작 즈음인 내 생일엔 매년 핸드크림 선물이 순위권에 있었다. 2020년 생일 받은 ‘아이 깨끗해’ 3종 세트와 펭귄 캐릭터 핸드워시는 핸드크림이 올 자리를 대신해 채워진 것 같다.
센스 있는 남사친 덕분에 잊고 있던 핸드크림을 외출용 가방에 다시 넣어두었다. 내가 받은 것처럼, 소독제로 손을 비빈 누군가의 건조한 손등에 한 덩어리 짜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