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너」, 존 윌리엄스
K에게.
네가 이 책을 펼쳐 들고, 이 이야기가 시작되는 첫 문단의 끝을 다 읽어내려가기도 전에 나는 네가 이 소설을 사랑하고 말 거라고 확신해. 이것은 개인적인 희망을 품은 발언도, 먼저 이 책을 읽었음에서 얻게 된 시간적 배열이 가져다주는 열정적인 지지에서 나오는 찬사의 감정도, 주관적인 취향의 전적인 반영에 온통 마음을 빼앗겨버린 결과로서 얻게 된 애정어린 편애와도 거리가 멀다는 것을, 지난 날의 나를 기억하고 있는 너라면 무엇보다도 잘 알거라 생각해. 나에게 있어서 '사랑'이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지를 그 누구보다도 명확하게 알고 있는 너라면, 너는 다시금 이 글의 첫 문장으로 시선을 옮겨서 '네가 이 소설을 사랑하고 말 거라고 확신해'라는 문장에 쓰인 단어 '사랑'을 바라보고 있을 거야. 그래. 너도 이미 느꼈겠지만, 나는 이 이야기를 사랑할 수밖에 없었어.
언젠가 내가 했던 이야기를 기억해? 마지막 순간에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이불을 덮고 누운 채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단 한 권의 책을 읽으면서, 아니 어쩌면 혹시나 모를 불의의 사고로 읽기라는 행동 자체가 거의 불가능할 수 있으니까, 그저 그 한 권의 책에 손을 가져다 대고 그 촉감을 느끼며 눈을 감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한 나의 말을. 너와 내가 서로의 존재를 앞으로 지속될 각자의 삶 속에서 마치 당연한 것처럼 확신하던 그 시간 속에서, 나의 희망사항과도 같은 소망을 엿듣던 네가 소리 없이 웃던 것을 이제는 흐릿하게 기억해.
그때 그런 책이 생기면 서로 말해주자고 했지만, 결국 그런 책을 정하기도 전에, 이제 더 이상, 너와 나는 그런 내밀하고 한없이 개인적인 꿈, 희망, 절망, 그리고 염원을 주고 받을 수 있는 자리에서 벗어나버렸지. 그때의 나는 내가 그 약속을 지킬 수 있다는 확신이나 다짐 따위는 커녕 마치 시간이 흐르고 계절이 가듯, 그리고 다시 오늘이 오고 어제가 되어 내일을 기다리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거치게 될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기에, 막상 그 말이 결국 지키지 못할 약속으로 남았다는 것을 알게 된 지금에 와서야 그것이 단지 영원을 믿었던 그 찰나에는 결코 지각할 수 없었던 '약속'이라는 개념이었음을 깨달았어. 이건 마치 그때 웃던 네 얼굴을 결코 잊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과도 비슷해. 살면서 수없이 아름다운 장면을 보면서, 조금씩 마모되고 말았던 걸까. 살갗에 태초부터 새겨져 있던 주름과도 같이 분명하게 인식한, 내 삶에 다시는 없을 거라 생각했던 아름다운 장면 중 하나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더 이상 네 얼굴이 뚜렷이 기억나지 않아.
하지만, 정말로 정체불명의 묵직한 통증과도 같은 위협으로 느껴지는 것은, 그렇게 네 얼굴을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하는 나 자신과 직면했을 때 내가 느끼는 감정이 절망과 비애, 슬픔이 아니라, 그저 더 이상 내가 그런 것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받아 들이고 있다는 것 그 자체야.
아무래도 시간이 흐르고 있다는 것은 이런 식으로도 지각될 수 있는 법인가봐. 지금에 와서야 겨우 나는, 이 책을 내가 마지막 순간에도 읽을, 아니 읽고 싶은 책으로 정했어. 이제는 더 이상 아무 의미도 없는 말을 실현하고자 하는 의지 때문에 너에게 이 이야기의 존재를 알려주는 것이 아니야. 단지, 어쩌면 네가 이 이야기를 읽고 나와 같은 한 순간을 경험할 수도 있을 그 가능성을 조금이나마 생각해봤어. 네가 거쳐온 시간은 이 이야기와 함께 어떤 식으로든 겹쳐질 것이고, 바로 그 과정에서 이 책을 읽어내려갈 너의 시간과 희망과 삶이 어떤 식으로 그 형태를 네 자신에게 보여줄지가 그나마 지금의 내가 가장 관심다운 관심을 보낼 수 있는 부분이라 여겨져.
나는 한때 내가 그 무엇이 되었든, 확실한 정체를 감히 규정할 수 없지만, 분명히 무언가가 될 거라는 기대를 갖고 있었어. 돌이켜보면,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순간은 모두 그 기대, 내가 무언가가 될 거라는 그 기대만이 있었을 뿐이었어. 그렇게 살아왔어. 하지만, 이 책의 마지막 문장을 읽었을 때, 내가 깨달은 거라곤, 결국 그 기대와 함께 나와, 나의 살아 있음이 끝난다는 거였어. 내가 나의 살아 있음에서 기대하고 있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마지막 순간에서야 던지게 될 이 질문이 곧 그 모든 기대의 종식을 알리는 표지이자, 이제는 나의 살아 있음을 마치게 되는 순간임을, 단지 그것뿐임을 깨달았어.
네가 이 책을 읽고, 만약에 그때도 내가 여전히 살아 있다면, 나에게 네가 본 스토너의 삶은 어떤 것이었는지를, 그리고 네가 살아온 시간, 분명히 내가 보지 못했을 그 시간들은 어떤 것인지를 들려줄 수 있다면 좋겠어.
무익한 긴 글, 이제 그만 마칠게. 혹시라도 다 읽어주었다면 고마워. 여전히, 그때도 지금도 가능하다면 앞으로도, 나의 바람은 예전과 같아. 네가 읽는 순간에서 얻게 되는 자유로움으로 삶의 무게를 견뎌낼 수 있기를.
J로부터.
해당 글은, 'texit'에게, '아도르노 모하드노'로부터. 기고 받아 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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