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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sa Oct 22. 2024

쉬면 번아웃이 오는 이상한 회사원

갓생 호소인: 잘 쉬는 법도 배워야 한다.



그 이름도 아름다운 갓생


늘 같은 시간에 지하철을 타고, 

늘 비슷하게 야근하면서 퇴근 후에는 스터디까지 해내고야 마는 나는 이른바 갓생 호소인이다.


시작은 늘 완벽한 갓생 호소인


제이미 배런의 <과부하 인간: 노력하고 성장해서 성공해도 불행한>는 “너도나도 자기 계발에 몰두한다. 그런데 그 몰입이 좀 과한 듯싶다. 동기를 부여하려다 삶에 의욕을 잃고, 완벽해지려 애쓰다 자기혐오에 빠지는 일상. 이게 맞는가”라는 의문을 던진다.

https://www.khan.co.kr/life/life-general/article/202401190700001





쉬는 날이 너무 많아도 문제라고?


머리도 잘 안 돌아가고 두통만 있는 그저 멍한 시기를 나는 번아웃이 왔다고 표현한다.

말 그대로 내게 번아웃, 멍의 시기가 찾아와 버렸다.


문제는 그저 일 안 하고 쉬는 빨간 날이 너무나도 많았다는 별 것 아닌 이유일 뿐이었다.

쉬는 게 오히려 문제라니, 이런 기가 막히고 배 부른 소리가 있나..


쌓여있는 할 일 목록에 "해야 되는데"만 염불처럼 외치며 업보를 점차 키워가고, 

그 과정에서 더 시작하기 싫어져 습관적으로 쇼츠를 내리는 그저 그런 사람이 된 것이다.

(마치 여름방학에 숙제 안 하다 개학 직전에 아뿔싸 하는 어린 시절)


게으른 완벽주의자라는 포장 (출처: 대학일기)



루틴이라는 건 참 이상하다.

매일 아무렇지 않게, 즐기기까지 했던 일과 공부들 그 치열한 바쁨이

이번 10월의 빨간 날 동안 다 스러져 갔다.


도대체 내 한 달은 무슨 일이 있었길래 

이렇게 눈 감았다 뜨니 10월 말을 바라보는 걸까?




프로 번아웃러의 변(辨)


내게 10월은 유달리 달콤한 달이었다.

변명하자면 10월의 빨간 날만 바라보고 달려왔던 내게 일종의 보상심리였달까?


첫째 주엔 국군의 날(화), 개천절(목) 공휴일에 딱 알맞게 수요일 연차를 질렀다.

월요일 밤부터 회사 분들과 퇴근 후 배드민턴을 치고 난 뒤 치맥으로 불금 같은 월요일을 보냈고,

화요일과 수요일엔 글램핑을, 목요일엔 브런치 팝업 스토어를 방문하며 쉬지 않고 돌아다녔다. 

이미 5일 중 약 4.5일을 이렇게 보냈으니 나머지 금요일에 제대로 일이 될 리가 없다.


둘째 주엔 그나마 사정이 나았지만 일요일에 결혼식을 다녀와 주말을 알차게 돌아다닌 여파가 남아있었다.

또 크리스마스 전 마지막 빨간 날이라는 한글날이 주간의 중심인 수요일에 있으니 

다들 기존 일상보다는 조금 들뜬 주간이었다. 

약속도 평소대비 해서 많이 잡았던 것 같다.


셋째 주엔 대망의 워케이션이었다.

회사에서는 연 1회 개인 혹은 팀단위로 지역에서 원격근무를 할 수 있는 제도를 지원해 주고 있다.

우리 팀은 개인 단위로 각각 원하는 지역을 떠나기로 했고, 나는 이번에 혼자서 여수를 떠나기로 했다.

거기서 갓생 호소인답게 미라클모닝-아침러닝-조식루틴으로 살았지만 역시나 일상의 루틴과는 달랐다.

https://blog.naver.com/lisletter/223624610932


갓생은 갓생인데, 비일상적인 갓생




게으른 완벽주의자


분명 10월의 빨간 날도 많았고, 

그만큼 나는 내 시간을 더 들여서 이것저것 도전하고 배워가는 시간을 가지려고 했었다. 


10월을 맞이하는 나의 자세(였던 것) -> 장렬히 실패  (출처: 대학일기)



하지만 약 10일이 남은 이 시점에서 

내가 계획했던 것들을 다했는가? 혹은 잘했는가?를 돌이켜보면

그렇지는 않았다고, 너무 아쉽다고 말하고 싶다.


계획이 너무 많았고, 100% 다 지키기에는 어려웠다.

또 계획을 하고서도 너무 힐링을 찾았기 때문에 '해야 되는데'하고 죄책감만 남은 것이 문제였던 것이다.

그렇게 계속 미루며 '그냥 하는' 감각을 떨어뜨리게 되어 

오히려 업무를 다시 익히고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해 나가는데 또 한 번의 에너지와 시간을 써야 했다.


워라밸은 일과 삶의 밸런스를 의미하고, 잘 쉬는 것 또한 잘 일하는 것만큼 중요하다는 데 공감한다.


그렇지만 일하다가 쉬고 나서 다시 일하려고 할 때 그 아쉬움과 공허함, 그리고 다시 일에 몰입하기 위해 장작에 불을 지피는 과정이 영 개운하지가 않다.


이번 한 달 동안 나는 오히려 일과 속에서 동일하게 루틴을 지키되, 잘 쉬는 법과 쉬고 나서 다시 걸어보는 회복 탄력성이 아직 부족하구나를 느꼈다.


다 하려는 욕심과 쉬고 싶음 가운데에서 늘 선택과 집중을 외치지만 결국 조금씩 아쉬움을 남기는 나이기에,

쉬면 번아웃이 와서 다시 일을 하기까지 어려움을 겪는 나이기에,

천천히 걷는 법과 걸으면서 쉬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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