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이 새로운 단체(활동)를 시작할 때의 마음가짐(feat. 오디션)
프로젝트가 끝나는 행사 당일, 이대로 끝나는 게 아쉬워 이다음을 고민하게 되었다.
내게는 크게 두 가지, 더 깊게 들어가면 세 가지 선택지가 존재했다.
먼저, 두 가지로 나눴을 때 [계속 합창활동을 한다]와 [추억으로 남기고 계속하지 않는다]였다.
앞서 계속 말했던 것처럼 합창은 행복해, 나는 계속 노래하고 싶어라는 좋은 감정으로 계속한다라는 결론이 쉽게 도달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아니다.
이번 공연은 프로젝트성 모임으로 끝이 명확히 정해져 있다.
힘들고 피곤해도 공연까지 얼마 남지 않았으니 좀만 더 힘내자라며 다른 일은 잠시 미뤄두거나 짬짬이 해나가면 됐던 것이다. 또 매주 특정 요일과 시간을 고정적으로 빼는 것도 쉽지 않다.
회의도 많고 문서 작업도 많은 기획자 특성상 야근을 숙명처럼 받아들이고 있는 일상 속에서 어느 요일, 어느 시기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칼퇴를 해야 하는 것이다.
그 칼퇴를 하기 위해 다른 날은 더 몰아치듯 일하거나 못다 한 일을 마치기 위해 주말에 추가 작업을 해야 할 수도 있다.(지금도 가끔은 그렇게 하고 있기도 하다)
또 이번 공연은 서울문화재단에서 운영하므로, 식사가 지원되며 기타 여러 부분에서 신경 쓸 필요 없이 노래에만 집중하면 되었다. 사람들과의 교류나 기타 활동비 등에 있어서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렇지만 어떤 단체에 들어간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단체 속의 사람들과 교류해야 한다는 것이고, 시간 외 다른 비용도 추가적으로 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단체는 어떤 목표(공연, 대회 등)를 성공적으로 달성하기 위해 각자 자신의 시간을 할애한다. 그렇기 때문에 충분한 책임감이 필요하다. 나 자신에게 어떤 문제가 있고, 어려움이 있더라도 한두 번은 같이 안타까워할 수 있지만 이게 반복되면 단체에 피해를 주는 불청객 1로 느껴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연습 참석이 끝이 아니다. 공연이 있고 대회가 있다면 그 일정의 전에는 더욱 연습량을 확보해야 하며, 공연/대회 일정 또한 시간을 쏟아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단체에 고정적으로 시간을 할애할 수 있으며, 비용이 발생할 때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가?
공동체 생활에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책임을 다할 수 있는가?
너무 과한 생각 아닌가, 굳이 그렇게까지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해?
누군가는 나의 이 걱정이 과한 생각이라고 할 수 있다.
한 번 해보고 안되면 말지라는 생각으로 가볍게 접근하라고 할 수도 있다.
아마 20대 초 대학 동아리에 들어가는 거였으면 그렇게 생각하고, 하고 싶은 건 일단 다 해보자 마인드였을 수 있다. (실제로 그렇게 들어갔다 나온 게 많다)
그렇지만 가볍게 접근하는 건 어릴 때 이미 다 저질러봤던 일이고
지금은 나의 선택에 누구보다 책임을 다하고, 적어도 내가 선택한 일에 있어 주변에 죄송할 일은 만들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혹자는 과하게 진지하다고 웃어버릴 수도 있겠으나, 이 또한 나의 성향인 것을..
이미 연습하는 과정에서 잡념이 사라지고 스트레스가 풀리는 몰입의 경험을 했기 때문에,
이 활동이 내게는 일상을 보내는 큰 힘이 되어줄 것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이대로 프로젝트 공연이 끝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나 옛날에 이런 무대도 서봤었지 하며 그땐 그랬지, 참 좋았다 하기에는 아쉬웠다.
자 그렇다면 다음으로 앞서 나는 '내게는 크게 두 가지, 더 깊게 들어가면 세 가지 선택지가 존재했다.'라고 서두에 밝혔다.
어떤 선택지길래 세 가지인가라고 보면,
할까 와 말까에서 '할까'를 선택한다고 했을 때 그럼 어디에서 계속할 것인가라는 고민으로 넘어갈 수 있다.
원래 이번 공연의 지휘자를 맡아주신 '우주호 지휘자님'께서 창단하신 합창단도 관심 있게 보았다.
올해 창단 공연도 예정되어 있고, 아무래도 프로젝트 공연 끝나고 이어 하는 모임이기 때문에 바로 들어갈 수 있다는 장점도 있었다.
이번 공연 연습을 하며 좋았던 부분이 많았기에 또 한 번 비슷한 감각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싶고,
아마 지휘자님의 명성만큼 더 많은 공연을 초대받고, 기타 여러 기회가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번 합창단 활동을 되돌아봤을 때 앞서 고민했던 항목 중에 '사람들과의 교류'(혹은 친밀감) 부분에서 단체에 쉽게 녹아들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모든 분을 아는 것은 아니지만 연령대나 여러 가지 측면에서 쉽게 녹아들긴 어렵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코로나가 끝날 즈음 합창활동을 하려고 우연히 들어갔던 단체가 있었는데, 연령대가 많이 차이가 났고 챙겨주려고는 하셨지만 스스로도 정을 못 붙이게 되어 몇 번 활동하지 못하고 그만둔 경험이 있기에 이번에는 더욱 신중했던 것 같다. 노래만 보고 활동하기에는 단체 활동은 꽤나 장기적으로 꾸준히 참여해야 하므로.
그러던 중 함께 동아리를 했던 친구의 SNS에서 합창단 신규 회원 모집 소식을 볼 수 있었다.
연습 사진이나 공연 내용들을 친구가 계속 올려준 덕분에 단체의 연령대나 활동 내용들도 그동안 간접적으로 볼 수 있었고, 그렇기에 내가 망설이던 한 가지 지점인 "공동체 적응 문제"를 충족시켜 주는 곳이기도 했다.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이어지는 고민들 속에서 운이 좋게도 프로젝트 공연 종료 후까지 모집 공고가 열려 있었고, 중복 활동이나 급한 것 없이 차분히 고민하고 결심할 수 있었다.
결국 여러 갈래의 고민 속에서 계속 합창활동을 한다는 최종 결정까지 가장 큰 도움을 준 공고였다. 아마 이 공고가 아니었다면 안 한다로 결론이 나지 않았을까?
내 고민은 [한다]로 결론이 났고, 야심 차게 단원모집에 지원서까지 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 돌아온 연락에는
생각보다 험난한 오디션 과정이 남아있었다....
이전에 모든 합창단 지원에는 준비한 노래라거나 음역테스트 정도만 봤어서(어느 파트를 맡을 것인지, 음치는 아닌지.. 뭐 그런) "초견시창"이라는 부분에 순간 멈칫했다.
나 잘한 걸까, 친구에게 나 단체 지원했어~하고 주변에도 말해두었는데 오디션에 똑떨어지면 어쩌지.. 하고 또 하나의 높은 산을 마주하게 되었다.
그래도 뭐, 해야지 어쩌겠어하는 마음으로 부랴부랴 악보도 준비하고(이거만 준비하고 나머지는 준비하는 것도 어려웠다) 마음의 준비까지만 했다.
안되면 너무 아쉽겠지만 어쩔 수 없지라고 생각하고 오디션을 봤다.
그렇게 마음을 먹어도 여전히 떨리는 건 사실이고, 단체 신청에 중간에서 연락해 준 친구에게 민망한 것도 남아있을 것이지만.
오디션 당일,
그 와중에 강남 2호선 사당 방면 지하철을 우습게 보고 열차를 놓치는 이슈까지 겪고
서울대입구라고 지도맵으로 주소 검색까지 다 해놨으면서 지하철은 사당역으로 검색해서 실제 사당역에서 내려버리기까지 하는(열차 출발 전에 헉하고 다시 올라타긴 했다) 실수까지 했다.
친구가 오디션 연습 전에 본다고 해서 일찍 와줬는데, 결국 늦게 도착해서 미안했던 건에 대하여..
* 이 사연을 들은 친구가 하는 T적인 한 마디: 운도 없었는데 멍청했네? (할말하않...)
결국 원래 총연습 전 보려고 했던 오디션을 1부 참관하고, 1부 연습과 2부 연습 사이 쉬는 시간에 보기로 했다. 오디션 사전에 봐도 참관했을 1부 연습이었지만, 또 기다리며 보는 참관은 색달랐다.
결과적으로 몸 풀고 목 푸는 연습 시작 단계에 슬쩍슬쩍 몸짓과 허밍을 따라 하며 내 몸도 풀 수 있었고, 연습 과정에서 악보 오랜만에 보고 듣고 하면서 약간씩 풀어둔 게 도움이 되었다. 노래 부르시는 분들 정말 수준이 남달라서 기는 좀(많이) 죽었지만, 또 함께 할 수 있다면 영광이겠다 생각해서 단체에 더 들어가고 싶은 마음도 커졌다.
그렇게 1부가 끝나고, 죄송하게도 모든 분들이 쉬는 시간 동안 오디션을 위해 모두 자리를 비워주셨다.
(밖에 날씨가 추웠을 텐데, 죄송했다..)
오디션 준비해 간 노래는 무슨 염소처럼 목소리가 덜덜 떨렸고, 시간이 없는 관계로 음역 테스트는 패스(노래가 저음과 고음이 다 있어서 확인됐다고 하셨다) 초견시창은 와우 이게 뭐냐 할 정도로 허둥지둥...
간단한 면접은
연습 참여에 대하여,
단체의 성격(부르는 곡의 성격 등),
단체 생활에 어려웠던 점 등 상식적으로 물어볼 법한 것들을 물어봤다.
내가 고민했던 것들이 당연하게도 저분들이 내게 우려스러웠던 것이겠지(모임에는 참여율이 최고니까)
짧지만 (나 혼자) 강렬했던 오디션이 끝나고, 결과는 오늘 연습 마치고 알려 주겠다고 해서 저녁도 안 먹고 너무 배고픈 김에 뒤에 일이 있다고 하고 나왔다.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모두 끝났고, 계속 인연이 있다면 또 볼 수 있겠지라는 마음(그냥 배고팠음)
집에 돌아와 정리를 하고, 잘 준비도 마친 늦은 시간
오디션 합격
어쩌면 이 글을 쓰고 있으니 예상되는 결과였겠지만,
나는 솔직히 오디션 준비한 노래도 첫 음 들어가는 저음에서 갈라지고, 고음에서는 떨리고.. 시창은 당연하게도 못했기 때문에 2/3 정도는 떨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만약에 붙는다면, 그동안 활동한 이력을 믿어 주셔서 긴장해서 그런가 보다 하고 발전 가능성에 투자해 주신 것 정도?
첫 연습은 11월 중순이고, 이제 또 새로운 일상 루틴을 만들어 가게 됐다.
직장인으로 주 5일을 출근하고 주말에도 부업하는 갓생호소인으로서, 무언가 책임을 다해야 하는 새로운 활동을 시작한다는 건 큰 결심이다.
그리고 무언가를 시작해서 시간을 투자하기로 결심했다는 건,
그 시간에 누렸던 모든 것들(공부, 모임, 기타 활동 일체)을 포기한다는 것과 같다.
여전히 하고 싶은 것도 많고, 한 번에 왜 여러 가지를 못하는가에 대해 괴로워하는 미숙한 사람이지만
그 과정에서 함께 하는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내 선택에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을 안다.
그래서 이번 나의 [합창 활동을 계속한다]라는 선택지는
꽤 많은 용기가 필요했다.
그런 만큼 더 잘 해낼 수 있기를 바란다.
취향 찾아 삼만리라는 시리즈를 계속 써 나가며, 아마 꽤 많은 지분을 '합창'이라는 활동이 차지하겠지
그 글들 속에서 '힘들다'는 것보다 '행복하다'라는 내용으로 채워나가고 싶다.
파이팅!
* 단체명은 혹시나 가렸습니다. 계속해나가다 보면 우연히라도 밝힐 기회가 있겠지.
인간이 불행해지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선택한 것과 포기한 것 간의 차이를 과대평가’ 하기 때문이다. 즉 ‘비교’라는 심리적인 과정을 잘못 사용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 애덤스미스
출처: 선택한 것과 포기한 것의 차이
목표를 정하는 것은 덜 중요한 것을 포기하는 것과 같다.
목표를 선택하는 것은 당신이 원하거나, 훨씬 더 필요한 것들을 얻기 위해 다른 것들을 거절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더 좋은 것을 위해 좋은 선택을 거절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은 동시에 너무 많은 목표를 추구하려고 노력한다. 이들은 아무것도 이루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모든 것을 선택함으로써 당신 자신을 무기력하게 만들어선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