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점으로 돌아가서
예전에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이런 아늑한 카페에서 맛있는 커피 한잔을 즐기며 일한다면, 돈을 좀 덜 벌더라도 평생 할 수 있을 것 같아"
그렇게 시작한 것이 카페 아르바이트. 졸업을 앞둔 대학교 4학년 2학기임에도 불구하고 흔한 취업과 학점에 매달리기보다는, 학교 끝나고 해야 할 저녁 아르바이트 업무를 완벽하게 수행해내기 위해 메뉴 레시피와 체크리스트를 외우며 하루하루를 보냈던 기억이 납니다.
그 당시 저는 단순히 커피 향기와 커피를 만들어 드리며 많은 분들이 나름의 만족스러운 얼굴로 각자의 시간을 보내는 게 저에게는 큰 행복이었나 봅니다. 앞으로의 먼 미래를 계산하기보다는 그저 그게 좋았습니다. 특히나 오전에 일하면서 커피 한잔을 내어드릴 때는 그 사람의 하루 시작을 내가 책임지는구나 하며 보람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여전히 그렇게 믿고 있기는 합니다. 많은 분들의 하루를 책임진다고.
그렇게 잡일로 시작했던 카페에서 언젠가 바리스타라는 직무를 맡게 되고, 프로페셔널한 바리스타가 되기 위해 나름의 노력과 공부와 많은 분들의 감사한 기회를 통해 다양한 곳에서 성장하고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어느새 나이가 한해 한해 쌓여가면서 다음 단계가 필요하다고 느끼는 시기가 왔습니다. 그리고 결정을 내렸죠. 분명 다양한 길과 선택권이 있었겠지만 가장 험난하고, 많은 인생 선배분들이 추천하지 않으셨던 자영업을 해보기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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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꽤 긴 시간 쉬면서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의 저로 돌아갔습니다.
왜 이 일을 시작했는지. 열심히 공부해 서울에서 4년제를 졸업하고 왜 카페에서 설거지와 화장실 청소를 했는지. 많은 분들의 조롱과 우려에도 담담하게 웃으며 제 선택에 대한 자신감을 내비쳤는지.
그저 카페라는 공간을 좋아해서, 대기업을 다니는 직장인 친구들보다 돈을 덜 벌더라도, 좋아하는 일을 하면 행복할 것 같아서였습니다. 그것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매장을 준비하려 하니 마음이 많이 왔다 갔다 하더군요.
"그래도 장사는 잘되어야 잘 먹고살지 않겠어?"
"그래도 이 고생해왔는데 이제 많이 벌어서 여유롭게 살아야지"
"적어도 대기업 5년 차 월급 정도는 벌어야겠지?"
"많이 팔리는 자리는 어딜까"
"어느 동네가 요즘 뜨지?"
"대박 낼 수 있는 아이디어가 있을까?"
...
...
이런 식으로 돈이라는 키워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질문들이 점점 많아지고 머릿속을 휘저어 놓더군요. 그때부터 저의 본질을 잃고 점점 더 생각은 산으로 가버리고, 방향키를 놓쳐버렸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허우적대며 이렇게 시간이 흘러버렸습니다.
지금 내가 뭐 하고 있는 거지? 한두 푼 더 벌기 위해 머리를 굴리고 있는 건가? 내가 처음에 돈을 위해 이 길을 선택했었나?
요즘 참 진정성 있는 카페들과 책들을 보며, 내가 방향을 완전히 잘못 잡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완전히 본질과 다른 방향으로요.
"지금 내가 장사해서 부자 되려고 이러는 건가?"
아니었습니다. 제가 원래 하려던 건 수익에 매달리며 커피 한잔 더 팔려고 하는 장사를 하려던 게 아니었습니다. 그저 제가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사색하고 책 읽는 걸 좋아했고, 좋아하는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는 게 행복해서였습니다. 좋아하는 것을 해서 나도 행복하고, 오시는 분들도 기분 좋고 그런 감정.
앞으로 저의 매장을 하게 되면 제가 좋아했던 카페에서의 감정들을 매장 자체에 최대한 녹여내어, 찾아오시는 모든 분들도 함께 느낄수있게 해드리고 싶네요.
생각하는 기간을 가지기 위해 속초에 잠시 머물고 있습니다. 머릿속이 이전보다 정리되는 거 같아 새벽에 두서없이 충동적으로 적어 내려간 글을 전부 읽어주신 분들이 있을까... 싶지만 혹시 있으시다면 감사합니다. 다음에 커피 한잔 내어드리는 날이 얼른 오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