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울하니까, 쓰자.

읽히지 않을 글을 쓰는 이유

by 수호
뭐라도 써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왜? 도대체 왜 써야 하지?


일상을 보내다 보면 문득문득, "글을 써야 하지 않을까?"하는 강한 압박을 받습니다. 그러나 글을 써야 하는 이유가 명확하진 않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갖가지 이유를 대며 글을 써야 한다고 말하지만, 그 이야기들 때문에 의무감을 느낀 것은 아닙니다. 그저, 써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끊임없이 찾아올 뿐이었습니다.


양재역 부근의 책방 '셰입오브타임'에서 책을 한 권 만났습니다. 제목은 <일놀놀일>. 김규림 작가가 만화를 그리고, 이승희 작가가 글을 쓴 책입니다. 일과 놀이를 넘나드는, 아니 그 둘의 경계 자체를 흐리는 삶을 제시하는 책이었죠. 워낙 경쾌한 톤으로 쓰인 책이라 가벼운 마음으로 책장을 넘기다가, 시선이 꽂히는 페이지를 만났습니다.


"왜 그렇게 쓰는 거에요?"
"어.. 억울해서요!"
...
누군가의 삶은 기록했다는 이유로 영원히 남지만, 기록하지 않은 삶은 기억 저편으로 사라져버리기 마련이다. 그러니 내가 집착하듯 기록을 하는 이유는 단 하나. 휘발되어버리는 것이 '두렵고 억울해서'다.
- 김규림, 이승희 <일놀놀일> pp.144-145


김규림 작가가 자신이 기록하는 이유에 대해 쓴 부분이었습니다. '억울해서'.

어째서 자꾸만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을까. 곰곰이 생각해보면 저 역시 억울해서였던 것 같습니다. 나의 고민과 시행착오가 내 안에서만 머물다가 휘발되는 것이, 그래서 세상과 연결되지 못하는 것이, 무엇보다 나 스스로조차 그 시간들을 기억하지 못하게 된다는 사실이, 억울하게 느껴졌습니다.

unnamed.jpg 이우환, <선으로부터>

그래서 쓰기 시작했습니다. 나의 하루하루를, 고민과 도전을, 성공과 실패를, 우울과 좌절을, 추억과 희망을 그저 흘려보내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것들을 문자로 붙잡아두어 삶의 궤적을 남기고 싶었습니다. 그 기록을 보며 내가 걸어온 길을 확인하고, 다음 걸음을 내딛고 싶었습니다. 제 글이 타인에게 읽히지 않더라도 상관없습니다. 결국 그 글은 제게 읽힐 것이고, 제 삶의 나침반이 되어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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