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branding이 아닌 Unbranding
올해 미국 주식 시장을 엔비디아만큼이나 뜨겁게 달군 브랜드가 있다. 2000년대 초에는 hot한 10대들의 상징이자 인종차별로 몰락했던 브랜드, Abercrombie&fitch다. 23년 초, 이 브랜드의 주가는 지난해에 비해 무려 285% 상승하며, 6월에는 192.34달러까지 치솟았다 (1). 현재 주가는 약간 주춤하고 있지만, 1분기 매출은 10억 2천만 달러로, 예상치인 9억 6천330만 달러를 뛰어넘으며 전년 대비 22% 증가했다 (2). 오프라인 매장은 23년도 기준 255개로 3년 간 매해 10개씩 매장을 열고 있다. 몰락했던 브랜드가 어떻게 살아날 수 있을까? 이번에는 Abercrombie&Fitch를 분해해볼까 한다.
아베크롬비는 1892년 뉴욕 맨해튼에서 데이비드 아베크롬비에 의해 설립된 아웃도어 용품 브랜드. 낚시, 등산, 캠핑 용품을 판매하며 브랜드 인지도를 높여갔다. 유명 작가 어니스트 헤밍웨이와 같은 단골손님들도 있는 당시 유명 브랜드였다. 1904년에는 에즈라 피치에 의해 인수되면서 아베크롬비의 이름 뒤에 'Fitch'가 더해졌고, 1900년대 중반까지는 장년층을 위한 아웃도어 브랜드로 자리매김하였다. 하지만 1966년 미국 정부가 동물복지법을 제정하자, 사냥용 의류를 구매하던 고객들이 점차 떠나기 시작했으며 1975년에는 100만 달러의 적자를 기록하며 이듬해 파산하게 되면서 여러 회사에 인수되었다. 그러다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다시 부활의 기회를 맞이했다.
1990년대 중반, 마이클 제프리스가 CEO로 취임하면서 브랜드는 과감한 변화를 시도했다. 그는 젊고 매력적인 모델들을 기용하여 성적이며 부유한 이미지를 만들어갔고, 브루스 웨버를 수석 사진작가로 영입해 성적인 매력을 한껏 강조한 광고 캠페인을 펼쳤다. 이러한 과감함은 10대와 성적 소수자들까지 사로잡았고, 아베크롬비는 다시 한번 ‘핫’한 브랜드로 우뚝 서게 된다. 1994년, 1억 6,500만 달러의 매출이 1999년에는 10억 달러에 달하는 놀라운 성과로 이어졌다 (3). 이와 함께 하위 브랜드인 홀리스터도 론칭하며 더 많은 젊은 고객층을 타깃으로 하게 된다.
2000년대 들어서면서 아베크롬비는 흔들리기 시작했다. 2002년에는 아시아인을 조롱하는 티셔츠 사건부터 아동용 비키니 제작, 직원들에게 팔 굽혀 펴기를 강요하는 등의 논란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4). 2002년에는 아시아인을 조롱하는 티셔츠 사건부터 아동용 비키니 제작, 직원들에게 팔 굽혀 펴기를 강요하는 등의 논란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4). 특히, '쿨한' 이미지를 고수하기 위해 XL 이상의 사이즈를 판매하지 않겠다고 밝힌 것이 큰 논란을 일으켰고, 아프리카와 아시아에는 매장을 열지 않겠다고 인터뷰하기도 했다.
인종차별과 외모지상주의, 윤리적 문제들로 인해 아베크롬비는 신뢰를 잃었고, 2013년에는 45억 달러의 매출을 자랑했지만 이듬해 41억 달러로, 2017년에는 33억 달러로 감소했다 (3). 2016년에는 미국 고객 만족도 조사에서 가장 싫어하는 소매업체로 선정됐으며 이후 인종차별, 성추행 등 여러 이슈로 2014년 마이클 제프리스는 사퇴한다. 이후 2017년 프랜 호로비츠가 CEO로 취임하면서 아베크롬비는 다시 새로운 변화를 준비하게 되었다.
브랜드를 심폐소생하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규모 인재 채용, 영업 전략 재구성, 생산 구조 변화, 브랜드 플랫폼 재정립 등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프랜 호로비츠는 타깃층의 변화를 주목했다. 2018년 당시 아베크롬비의 고객층은 브랜드의 오랜 역사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10대와 과거의 향수를 간직한 30대, 40대가 뒤섞여 있는 상황이었다 (5). Brand Revitalization의 일반적인 방법은 기존 고객층에 새로운 고객을 추가하여 브랜드를 발전시키는 것이지만, 아베크롬비는 과감히 새로운 타깃을 설정하고 변화를 시도했다.
아베크롬비는 시장의 흐름에 맞춰 대학을 갓 졸업한 25세 여성을 주 타깃으로 삼았다. 당시 기존의 미국 패션 브랜드 J Crew와 Banana Republic은 쇠퇴하고 있었고 자라는 너무 저렴하며 유니클로는 트렌디하지 않다는 인식이 있었다. 실제 미국에서 학교 생활을 했던 사람들과 이야기하면 20대 후반이 구매할 수 있는 브랜드가 많지 않다고 한다. 정장 등처럼 너무 formal 하거나 streat wear 등처럼 너무 informal 하다는 것이다. 결국 fast fashion과 luxury fashion 사이의 틈은 점점 커지고 있었지만 그 자리를 차지하는 브랜드는 없었다 (5). 아베크롬비는 바로 이 틈새의 가능성에 모든 것을 걸기 시작했다.
이십 대를 겨냥한 브랜드는 의외로 많지 않습니다. Everlane이나 Banana Republic은 보통 예산이 넉넉한 직장인을 위해 디자인하며, American Eagle이나 Brandy Melville처럼 청소년들에게 인기 있는 캐주얼하고 저렴한 브랜드도 많습니다. Abercrombie는 이러한 브랜드들 사이에서 균형을 이루며, 합리적인 가격에 세련된 스타일의 옷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청바지는 $90부터, 블레이저는 $120, 코트는 $220부터 시작해 다양한 취향과 니즈를 충족시키고 있죠. 이렇게 Abercrombie는 넓은 소비자층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가고 있습니다.
How Abercrombie went from America’s most hated retailer to a Gen Z favorite, fastcompany
아베크롬비의 마케팅팀은 2035 여성을 겨냥한 브랜드를 구상하기 위해 먼저 세부적인 페르소나를 그려갔다. 유튜브와 인스타그램을 통해 젊은 세대가 어떤 순간에 어떤 옷을 필요로 하는지, 약혼식에서 콘서트, 브라이덜 샤워와 결혼식까지 다양한 상황에서 맞춤형 제품을 디자인하는 것에 집중했다. 고객의 특별한 시간들을 마음에 담은 접근법이 아베크롬비의 브랜드 방향성을 결정지었다.
특히 아베크롬비는 청바지의 품질과 핏 개선에 심혈을 기울였다. 어디서든 누구나 편안하게 착용 가능한 디자인을 목표로 모든 체형에 어울릴 수 있는 다양한 형태의 청바지를 제작하기 위해 노력했다. 인플루언서들의 청바지 리뷰를 통해 발견한 문제점을 분석하며, 허리와 엉덩이에 맞지 않는 핏을 개선하고, 신축성을 높이는 데 주력했다. 이를 통해 허리와 엉덩이를 강조하면서도 자연스러운 실루엣을 유지하는 청바지를 완성했다. 또한 다양한 스타일과 XXXL까지 확장된 사이즈 옵션을 제공해 누구나 쉽게 선택할 수 있는 청바지를 선보였다.
아베크롬비의 과거 브랜딩은 대담하고 공격적이었으며 세련미가 다소 부족한 느낌을 주었다. 디자인에서는 여백이 부족해 답답함이 느껴졌고 과도한 대문자 사용은 강한 남성적 인상을 남겼다. 부드러움을 더하기 위해 디자이너들은 타이포그래피의 구조를 변경했다.
이전의 강렬하고 강한 인상을 주었던 Trade Gothic을 본문 타이포그래피로 사용하면서 브랜드의 상징인 아베크롬비 & 피치 로고에는 Garamond를 헤드라인으로 배치해 부드러움을 담아냈다 (6). 웹사이트는 화사한 색상과 가벼운 폰트를 사용하여 시각적 부담을 줄였으며 브랜드 이미지 또한 바꿨다. 기존 남성적이고 성적인 이미지 대신 다양한 체형과 인종의 모델들이 흰 배경에서 꽃무늬 드레스와 찢어진 청바지를 입고 촬영된 자연스러운 이미지를 사용했다.
오프라인 매장 역시 변화를 맞이했다. 어둡고 진한 향수로 가득 찬 공간 대신 밝고 넓은 공간을 활용하여 쾌적한 환경을 조성하고 깨끗하고 자연스러운 이미지를 전달할 수 있도록 디자인되었다.
이제 아베크롬비는 젊은 밀레니얼 세대를 타깃으로 재편성되어 더 이상 화이트 셔츠의 남성 모델들, 어두운 매장, 성적화된 마케팅을 고수하지 않는다. 브랜드는 과거의 이미지를 벗어나, 현대적인 감각을 갖춘 새로운 아이덴티티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많은 기업이 소비자의 니즈를 이해하고 이를 토대로 아이디어를 얻어 업무를 진행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큰 기업일수록 이를 실제로 실행에 옮기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Kearney의 Greg Portell은 "소비자를 이해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중요하지만, 그것을 빠르게 실현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큰 도전"이라고 말했다.
아베크롬비는 고객의 니즈에 맞춰 맞춤형 아이템과 기본 아이템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기본적인 티셔츠와 버튼다운 셔츠 같은 제품들을 계절에 상관없이 언제든지 구매할 수 있도록 준비했으며, 슈트는 재킷과 바지를 따로 개발해 고객이 원하는 방식으로 선택할 수 있게 했다. 이는 무신사 스탠다드와 유사한 형태로 시즌별로 할인되는 상품에 의존하지 않고도 지속 가능한 판매를 유지하는 전략이다.
팬데믹 기간 동안 아베크롬비는 매장 일시 폐쇄로 인해 재고 관리에 더욱 신중을 기했다. 기존에는 9개월 단위로 생산 주문을 했지만, 팬데믹 이후에는 판매가 잘 되는 스타일을 신속하게 파악해 몇 주 또는 몇 달 전에 필요한 수량을 주문하는 방식으로 전환했다. 이렇게 유연한 전략이 가능했던 것은 아베크롬비가 20년간 같은 공장에서 옷과 청바지를 생산해 오면서 쌓아온 신뢰 덕분이다 (7). 아베크롬비의 생산과 판매 전략은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도 재고 관리가 얼마나 민첩하고 유연해야 하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아베크롬비는 TV에 대대적으로 광고를 태우지 않고 조용하고 은밀하게 마케팅을 시작했다. 일단 일반인들이 나오는 틱톡에서부터 광고를 시작했는데 일반 고객들에게 자연스럽게 다가가기 위해 일반인 모델 및 인플루언서 고객을 이용해 고객들과 소통을 시작했다. 아베크롬비의 착용 영상은 틱톡에서 크게 바이럴 됐으며 탈브랜드를 선언한 고객들을 다시 돌아보게 만들었다.
아베크롬비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고객들과 소통하는 브랜드의 이미지를 구축했다. 예전과 같이 sexual 하고 fantasy의 느낌을 전달하는 게 아닌 실용적이고 현실적으로 접근하였다 (5). 모든 옷이 익숙하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신선한 느낌을 준다. 미니멀리즘의 경계에서 살짝 트렌디한 터치를 더한 이 옷들은 어떤 특별한 미학에 묶이지 않는다. 이는 리브랜딩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언브랜딩’이다.
전달하는 메시지도 확실히 달라졌다. 헐벗은 쿼터백의 모델이 아닌 옷 그 자체에 집중하였다. "우리가 달라졌습니다"라고 거듭 말하는 대신, 옷 한 벌 한 벌을 통해 자연스럽게 변화된 브랜드의 이미지를 전달하고자 했다. 쉽고 편안한 옷이라는 것을 전달하기 위해 밀레니얼들이 겪는 다양한 일상 속에서 아베크롬비의 옷이 자연스럽게 어울리도록 디자인과 마케팅을 구상했다. 다양한 스케줄에 맞춰 입을 수 있는 옷, 데이트에 어울리는 옷, 임신했을 때 입을 수 있는 옷, 브라이덜 샤워에 입을 수 있는 옷 등 이 모든 순간에 아베크롬비의 옷들은 편안하면서 손쉽게 선택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5).
이제 아베크롬비는 더 이상 화려한 환상에 머물지 않는다. 대신, 그들은 현실에 발을 딛고 진정성 있는 소통을 선택했다. 고객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제공하며, 특별한 순간들을 함께할 수 있는 옷을 만들어간다. 과거의 실수를 인정하고 그 속에서 배운 것이 그들의 가장 큰 자산이었을지도 모른다.
이후 아베크롬비의 목표는 ‘고객과 함께 늙어가기’이다. 다만 수많은 브랜드가 그랬던 것처럼 브랜드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계속 계속 새로운 모습과 젊은 타깃층을 유지해야 한다. 아베크롬비는 익숙한 브랜드를 딛고 다른 브랜드와 달리 몰락 없이 어떻게 고객들과 함께 늙어갈까. 아베크롬비의 추후 행보가 기대된다.
출처
(1) How Abercrombie went from America’s most hated retailer to a Gen Z favorite, fastcompany
(2) 아베크롬비, 역대 최고의 1분기 기록.., 연합인포맥스
(3) '망했다'던 아베크롬비, 어떻게 '월스트리트 애정템' 됐나[케이스스터디], 매거진한경
(4) “시킨 대로 속옷 입어라” 아베크롬비 CEO ‘괴벽’, 한겨레
(5) The Unbranding of Abercrombie The problematic mall brand pulled off the most exciting makeover in American retail. How?, The Cut
(6) Abercrombie & Fitch Brand Revitalization, http://karasmar.sh/abercrombie/
(7) How Abercrombie & Fitch turned from teen castoff to market trend, US reta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