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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유 Nov 05. 2024

과정에 놓여 있는 사람

길에서 마주친 사람들

하늘이 투명하게 빛나던 지난 토요일, 가까운 수원전통문화관에 다녀왔어요.


수원시가 주관하는 화성 전국규방공예공모전을 13년째 이끌어가는 수원시 규방공예연구회의 회장 서은영작가와 이사를 맡고 있는 구희정작가.

이 두 사람의 전시회가 수원전통문화관 진수원에서 열리고 있었습니다.



수원전통문화관은 수원시와 수원문화재단에서 운영하는 전통문화공간입니다.

2015년 3월에 개관하여, 전통식생활체험관과 예절교육관, 전시공간 진수원 등이 있답니다.


수원의 전통과 정조대왕의 역사를 바탕으로 한 스토리가 있는 국내 최고의 전통문화 체험 명소로, 전통 먹거리 교육과 예절 교육, 세시풍속 행사 등 다양한 전통문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 복합문화공간이에요.


제가 방문한 날은 한옥의 정취가 좋아 그냥 툇마루에 앉아 쉬는 방문객도 많았습니다.



'잇고 펼치다'라는 제목의 조각보와 보따리 공예 전시는 수원전통문화관의 기획전시실 진수원에서 마련한 올해 열 번째 초대전입니다. 한옥 정취에  잘 어울리는 전시였습니다.


마침 전시장에 서은영, 구희정 두 작가님이 다 계셔서 작품 설명과 작가의 세계관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제게는 너무나 알차고 값진 시간이었어요.


공간의 제약으로 소량의 작품만 전시됐지만,

작품을 완성하는데 일 년도 넘게 걸린다고 하더군요.

비단, 삼베, 모시 등 서로 다른 소재를 한 땀 한 땀 깁고, 꿰매고, 잇고, 수를 놓는 과정을 거쳐 완성된 소중한 작품들을 보여주었습니다.



작품의 배경이 되는 갈색 액자조차도 작가가 나무에 삼베를 감싸고 옻칠을 해서 직접 만들었답니다.

옛날 옷이나 이불을 만들고 남은 자투리 천으로

만들었던 밥상보나 가리개 등 생활용품이 작품의 세계로 넘어온 거죠.

그래선지 작품이 더 돋보이고 특별하게 느껴졌습니다.


전통 원단시장이 축소되고 전시 공간이나 전시회를 열 기회가 많지 않은 현실이 녹녹지 않다고 하더군요.

힘들게 완성된 작품들을 서랍 속에 고이 접어 넣어둔 채, 전시회가 열릴 때나 펼쳐볼 수 있다고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규방공예 작가들은 전통을 지키려는 마음과 예술가 정신으로 작업을 이어가고 있답니다.

담담하고 조용하게 설명하는 두 작가님의 열정이 존경스러웠습니다.


이번 전시 작품에는 서로 다른 질감의 원단 외에도 고가구에 사용되는 경칩, 장석. 자개 등을 덧붙여 다른 물성과의 콜라보를 시도했습니다.

이런 실험적인 작업을 통해 빈티지와 모던함을 동시에 추구하면서, 작품 세계를 확장해가고 있더군요.



이 작품들은 서은영작가가 늦은 나이에 홍익대학교 산업미술대학원에서 미술학 석사를 공부하면서 깨달은 작품관이 녹아 있습니다.

그녀는 아들딸 같은 젊은 학생들의 한계를 벗어나 무한세계를 보여주는 과감작품활동에서 자극을 받았답니다. 그와 동시에 작가 자신의 세계관이 확장되면서 다양한 실험적인 작업에 자신감을 얻었다고 하더군요.


구희정작가도 훈민정음이 새겨진 삼베나 모시와 한지비단, 버려진 가죽 등의 콜라보를 통해 입체적인 작품 세계를 펼치고 있습니다.




지난 10월에는 수원에 있는 팔달문화센터에서 일본작가 10명과 수원시와 일본 아사히카와시의 자매결연 35주년 기념으로 공동 전시를 열었대요.

이때 일본작가 100여 명이 방문했었다고 하더군요.

또 국제회의가 열리는 컨벤션센터 로비에 가리개 등 작품이 장식되기도 했습니다.

우리의 전통 공예를 작품화해서 지역을 넘어 세계로 널리 알리는 두 작가대단해 보였습니다.


우리 것을 아끼고 생활 속에서 가까이하는 것이 작품과 작가들에 대한 나의 예의아닐까 생각했습니다.


고작 두세 권의 공저 외에는 단독 저서가 없는 나를 작가라  말할 수 있을까 고민한 적이 있어요.

심수봉은  힘 하나 안 들이고 노래를 저리 잘 부르는데, 음치인 나는 아무리 정성껏 불러도 안 되는 '사랑 밖에 난 몰라'처럼.

읽다가 코끝이 찡해지는 고수리작가의  따뜻한 글을 나는 어찌하여 쓰지 못하는가 한탄한 적도 있고요.


서은영작가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  깨달은 게 있습니다.

작품 속에 무언가를 새롭게 시도하는 그녀도, 다른 작가의 글을 읽고 고민하며 매일 는 나 자신도 '과정에 놓여  있는 사람'이라는 공통점입다.

분야는 달라도 제가 글을 쓰는 일과 힘들게 공예 작품을 만드는 일, 이 모든 '과정'이 바로 작가 활동이겠지요.


인문주의는 '학'에서 발아해서 '습'에서 결실하는 것이라는 소설가 김훈의 말을 굳게 믿습니다.  

배우고 익히며 더 열심히 써야겠습니다. 언젠가 저의 글도 꽃피우고 열매를 맺게 되겠지요.

당신의 마음에 닿는 글을 쓰겠지요.

'잇고 펼치다' 전시를 통해 작품과 사람, 이 두 개의  아름다움을 가까이서 볼 수 있어 기뻤어요. 마음에 불이 환하게 켜진 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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