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조금 다른 도시여행 수원 편의 네 가지 이야기를 쓰고, 마지막 다섯 번째 이야기를 어디로 할까 고민하다 고른 곳이 팔달문 근처에 있는 부국원이다.
부모님 세대의 일제강점기 이야기를 몇 번 듣기만 했었는데, 그 당시의 모습을 일부나마 눈으로 직접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푸른지대창작샘터, 복합문화공간 111CM, 고색뉴지엄, 열린 문화공간 후소, 부국원 이 다섯 개의 장소는 오래되었고, 애초에 지었던 목적에서 진화해 복합문화공간으로 변신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다른 점은 앞에서 언급했던 네 개의 공간은 시대적으로 현대에 속한다면, 부국원은 조선과 대한민국 사이의 근대에 지어졌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행궁과 화성을 지나 최근에 지어진 현대식 건물이 있는 고대와 현대 사이, 근. 현대를 관통하는 대한민국 역사의 징검다리 부국원을 만나러 갔다.
부국원은 일제강점기 종자. 종묘를 판매하던 일본인 회사로 농업 수탈의 역사를 간직한 곳이다. 해방 이후 각종 관공서, 병원 등으로 사용되며 100여 년의 역사를 품은 건축물로 일제강점기의 아픈 역사와 해방 이후 수원 시민의 기억을 동시에 간직하고 있어 2017년에 대한민국 근대 문화유산으로 인정받았다.
부모님은 소학교 시절에 일제강점기로 한국 이름을 두고도 일본식 이름으로 불려야 했다. 군수물자 지원을 위해 집에 있던 숟가락이며 놋그릇까지 학교에 가져가야 했다고 가끔 말씀하셨다. 부국원 문 앞에 다다르니 부모님의 얼굴 위로 두려움과 불안감에 떨던 어린 소년과 소녀의 얼굴이 겹쳐졌다.
부국원 건물은 주변에 할인마트, 세탁소, 미용실 등 정감 어린 구 도심의 점포들과 마주하고 있었다. 붉은 벽돌과 대비되는 민트색 페인트로 칠한 창문과 한국에서 흔하지 않은 캐노피가 있는 목제문으로 주변 건물들 사이에서 도드라져 보인다. 자세히 살펴보니 두 짝의 창문을 서로 오르내려서 열고 닫는 오르내리창과 주로 일제강점기 건물에서만 볼 수 있는 ㄱ자로 마감된 코너 타일도 이국적으로 보인다.
민트색 목제문을 슬며시 밀고 들어가자 일제강점기에 쌓아 올린 벽돌이며 당시의 흔적들이 분주하게 정렬한다. 타임머신을 타고 바깥 세계와 다른 풍경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에폭시 마감재의 바닥에는 십자형 타일로 마감된 옛 부국원의 원형 바닥이 움푹 파인 곳에 투명한 유리로 덮인 채 일부 보전되어 있다. 부근 도로가 포장되면서 현재의 부국원 바닥이 30cm나 높아졌다니 시간의 부피가 화석층으로 쌓여 내게 말을 건넨다. 곳곳에 일제강점기부터 부국원의 변천과 복원의 기록을 글과 사진으로 보여주고 있다. 측면의 굴뚝이나 뒤편의 승강기 흔적을 맞히는 퀴즈 용지를 비치해서 건물에 대한 관심과 방문객의 참여도를 높인 점이 눈길을 끌었다.
2층에도 ‘퍼즐과 함께하는 근. 현대 수원 이야기’ 코너가 마련되어 1960년대의 팔달문과 부국원의 사진을 보며 나무로 된 퍼즐을 완성할 수 있다. 부국원을 찾는 어린이나 젊은 세대들이 체험을 통해 흥미를 느끼고, 근대에 일어났던 일들에 대한 역사의식을 높이는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부국원 1층 바닥에는 수원의 근. 현대 건축물 정보를 한눈에 볼 수 있는 ‘향교로 근. 현대 건축물 지도’가 그려져 있다. 아픈 역사도 버릴 수 없는 과거이며 현재를 살아온 흔적이 되기도 한다. 일제강점기의 시간들을 견디고 건너와 오늘에 이르렀으니 부모님의 생도 아픔으로만 채워진 것은 아니라고 느꼈다.
팔달문에서 시작해 한국 기독교 장로회 수원교회, 대한 성공회 수원교회, 수원향교, 수원 구 부국원, 구 수원시청사, 구 수원 문화원, 구 수원 극장 등을 지나 수원역과 급수탑까지 ‘향교로 근. 현대 건축물 지도'를 따라 걸어보자. 우리가 외면하고 싶거나 돌아가고 싶지 않은 시절을 돌이켜보며 이 빠진 듯 알고 있는 내 나라의 역사 지식을 촘촘하게 채워보면 어떨까. 그 첫발을 부국원에서 시작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