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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유 Sep 02. 2024

조금 다른 도시여행. 푸른지대창작샘터

추억의 딸기농장이 창작의 장소가 되다.


​ 수원특례시가 오래되고 낡은 주요 건축물을 문화공간으로 재활용한 곳이 네 군데 있다. 이들은 훌륭한 관광 자원임에도 아직 찾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고 느꼈다. 각각의 건물에 얽힌 스토리를 통해 그곳을 널리 알리고 색다른 여행을 꿈꾸는 다양한 세대의 수원 여행자가 늘어나길 희망한다. ​


80년대 초반 대학 신문사에서 학생 기자 활동을 할 때였다. 한 달에 한 번이면 구로역에서 전철을 타고 수원역에 오는 날이 있었다. 수원에 있는 경인일보에서 동판공 아저씨들이 고른 활자를 들여다보며 각자가 쓴 원고의 오타를 교정한 후, 신문 인쇄를 부탁하고 서울로 돌아오는 일정이었다. 그날은 하루 종일 오타를 고르느라 온통 신경이 곤두서는 날이지만 저녁이면 갈비를 먹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로 신이 나는 날이기도 했다.


날씨가 좋아서 실내에만 있기에는 억울했던 오월 어느 날, 경인일보에서의 일정이 빨리 끝났다. 소풍 가듯 학보사 식구들과 서둘러 버스를 타고 가까운 딸기농장으로 나갔다.


초록 잎 사이로 새빨간 딸기가 가득 펼쳐진 딸기밭의 풍경은 서울에서 자란 내게 신기하고 싱그럽게 보였다. 평상에 둘러앉아 바구니에 담긴 잘 익은 딸기를 단물을 뚝뚝 흘려가며 먹었다. 딸기향의 웃음소리를 햇살처럼 흩뿌리며 다시 갈빗집에 들러 수원갈비까지 야무지게 먹었다. 결국 양념갈비 냄새를 전철 안에 가득 퍼뜨리며 늦은 밤이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갔었다. 그때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멀고 아쉬워서 축지법이라도 쓰고 싶다며 투덜댔었다.



수원으로 이사 와서 젊은 시절 딸기밭의 추억이 담긴 공간이 이렇게 가까이 있었다는 걸 비로소 알게 되었다. 그곳이 바로 ‘푸른지대창작샘터’다. 예전 딸기밭의 비옥한 토지는 시민을 위한 텃밭으로 꾸며진 덕분에 배추나 방울토마토 등 여전히 파릇파릇한 채소들이 자라고 있다. 젊은 날의 푸른 풍경이 오늘까지 이어지는 게 반갑고 정겨웠다. 우리가 갔던 딸기밭이 그 근처였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푸른지대창작샘터가 지닌 딸기밭의 역사가 나비처럼 젊은 날의 오월로 나를 데려다주었다.


수원탑동시민농장 옆 마치 오래된 폐교처럼 거뭇거뭇 페인트칠이 벗겨진 단층 건물이 나온다. 주 출입문 윗편에 초록색 나무 이미지로 꾸민 ‘푸른지대창작샘터' 간판이 보인다. 이곳은 과거 구 서울농생대 실험 축사를 리모델링한 곳이다. 지금은 수원 내 지역 문화 예술 역량을 강화하고자, 시각예술 분야에서 왕성하게 활동하는 현역 작가들의 작업 공간으로 제공한다. 내부에 작업 스튜디오와 전시공간, 휴게공간 등이 마련돼 있다. 지역 예술인의 작품 활동을 지원하는 레지던스 공간으로 활용된다.



건물 주변에 ‘숲 속의 등대’라는 작품으로 변신하여 보존된 파란색 사료통과 ‘실험공간 G’라는 작품의 주황색 사료통이 보인다. 낡은 건물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나의 시선도 따라서 반짝거린다. 외부에는 젖소 사육공간이던 유우사를 전시공간으로 활용했다. 모던해 보이는 철골 구조물 위로 보이는 파란 하늘이 도시 생활의 갑갑함을 시원하게 날려 보낸다.


붉은색에 녹색 지붕을 한 탑형 사일로는 유럽의 목가적인 목장 풍경이 떠오른다. 멀리 여행을 떠나온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옛 사료 저장소인 트렌치 사일로는 알록달록한 색채로 이국적인 분위기를 한껏 보여준다. 분위기에 끌려 이곳저곳 사진 찍기 바쁘다.  주변 사람들에게 인스타 사진 명소로 추천하고 싶다.



이전에 무엇을 하는 공간이었든, 문화를 입히면  매우 특별한 장소가 된다.  그곳을 채우거나 찾는 이들이 장소를 더욱 빛나게 만들기도 한다. 싱그럽던 딸기밭에 동물을 기르던 축사가 지어졌고, 수원시에서 축사 건물을 멋지게 손봐 현재의 예술공간으로 변신했다. 이로써 푸른지대창작샘터는 예술가들의 진지하고 원대한 꿈이 무럭무럭 자라는 복합문화공간이 된 것이다.


아이들과 수원탑동시민농장의 다양한 텃밭을 구경하며 자연 학습을 하면 어떨까.'통통통'이라는 이름의 어린이 상상공간으로 변신한 트렌치 사일로도 있다. 그곳에서 사방치기나 오징어 게임 등 전통놀이를 해도 신날것 같다.


 낯선 곳을 찾아 나서기 좋아한다. 도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이국적인 공간이 있다는 건 반가운 일이다. 연인, 친구, 가족 누구라도 좋다. 푸른지대창작샘터를 찾아 텃밭과 나무들, 넓게 펼쳐진 잔디밭 사이로 산책하며 른 추억을 차곡차곡 쌓아보길 바라본다. ​


★ 이 글은 수원시 수원문화재단의 조금 다른 도시여행 책자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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