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일상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leis May 12. 2024

다시 쓰다 - 3

한국에 다녀와서

그러는 동안 나는 이방인처럼, 마치 외국인이 된 심정으로 한국을 바라보고 있었다.

근 시일 안에는 한국으로 돌아올 생각이 없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런데 아직 근본적인 이유는 알아내지 못했다.

한국을 제대로 보고 마음에 담아 갈 모처럼의 기회였기 때문인가.


이모는 나에게 그동안 한국에 이상한 사람들이 많아졌다고 했다. 살기 좋은 나라가 아니라고 했다. 나는 이모가 괜한 걱정을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영향인지 몰라도


지하철에서 특이한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뜻모를 말을 중얼거리는 사람, 보이지 않는 누군가와 싸우는 사람등.. 이것은 지하철 이용 빈도가 높아져서 생긴 일일 뿐인지 의문이 일었다.


한편 다정하고 행복한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혹은 너무 아름다운 것을 보고 눈물을 흘렸다.


지하철 맞은편에 앉은 어떤 부녀의 모습을 보고 그들의 다정함에, 중년의 여자분이 아버지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며 내는 어린아이 같은 말투에, 그녀가 나이 지긋한 아버지를 가진 것에 대해 부러워서도 울었다. 병원에서 티비를 멍하니 보다가 어떤 할머니의 행복한 미소에 갑자기 눈물이 났다. 그녀는 소원하던 몇십 년 만의 고국 방문이 이뤄진 것에 기뻐하고 있었다. 그 웃는 얼굴에 아무런 여한도 원망도 없어서 슬펐다. 서점에서 무위당 장일순의 책을 읽다가 ‘나는 찌꺼기이고 그렇기에 물처럼 맑다’는 구절에 울컥해 버린다. 그럴 땐 주위 사람들 눈치를 보며 티슈로 몰래몰래 눈물을 찍어낼 뿐이다. 너무 눈물이 자주 나서 나는 내가 우물에 빠진 건 아닌지 의심했다. 그렇지 않고서는 이렇게 자주 눈물이 날 수가 없다.


그리고 한국이 뉴질랜드보다 대화를 엿듣기에 낫다는 걸 발견했다. 뉴질랜드에서 들려오는 영어나 중국어 그 외 다른 언어와 동물의 언어들은 엿듣기에 적합치 않다. 한국말은 멀리서도 잘 알아듣는지라 나는 들려오는 소음들에서 편안히 이야기를 분리해 내어 소중히 간직했다. 설사 그것이 욕설이라 할지라도. 정다운 새해인사도. 어떤 에피소드라도 말이다. 딱히 그걸 가지고 뭘 하겠다는 건 아닌데, 그냥 듣고 싶었다. 예전엔 그런 것에 관심두지 않았다.


일초라고 부르기도 어려운 그런 순간순간들이 지나가고 있었다. 나는 매일 잠시라도 나가서 사람들을 관찰했고 순간순간을 붙잡으려 노력했다. 가족과 친구들을 새로운 눈길로 바라보았다. 나처럼 나이 들고 바뀌어가는 사람들, 그들과의 관계도 새로운 모습으로 변화하고  있었다. 내가 느끼기에는 더욱 큰 사랑을 품은 형태로.


그리고 또다시 12시간 걸리는 비행기를 타고 뉴질랜드로 돌아왔다. 한동안은 집안 대청소에 심혈을 기울였다. 집은 구석구석 때와 먼지가 앉아 있었고 물건들이 방황하고 있었다. 아끼던 화분들은 갯수가 확연히 줄어 있었으나 언뜻 무슨 식물이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세심하게 어디론가 사라졌다. 남편이 내가 오기 전에 손을 쓴 게 분명하다. 여긴 여름이었고 내가 한국에서 혹독한 겨울을 보내는 동안 그들은 남반구의 뜨거운 여름 햇볕 아래서 하나둘 목말라 쓰러졌을 것이다. 갑자기 더러운 오븐이 눈에 거슬려 이틀에 걸쳐 빛이 나게 박박 닦았고, 그러다보니 주위의 다른 것들이 눈에 거슬려 하나하나 닦고 정리하고.. 정작 여행짐은 정리도 하지 못한 채 집안일에 매달렸다. 대학생이 된 딸과 알바에 정신없는 아들의 뒷바라지는 그들이 고등학생이었을 때보다 더 빡셌다. 그들은 이전보다 훨씬 더 바쁘고 제 몸하나 씻고 나가는 것 외에는 다른 일에 도통 쓸 정신이 없다. 이 모든 걸 두 달 동안 혼자 감당한 남편은 홀쭉해져 있었다. 이제 내가 나설 차례다. 이제 걱정마. 내가 다 할께 하며 오랜만에 아주 열성적으로 살림에 매달렸더니 팔과 손이 욱신거려 감히 글을 쓸 엄두도 내지 못했다. 가끔 브런치를 기웃거리며 써야지 써야지 했던 게 전부다.


어젯밤 트위터에 그동안 두 달여간이나 일기도 못썼다고, 쓰던 습관을 한 번 내려놓으니 다시 돌아오기가 쉽지 않더라고 하소연을 하고 나서야 이렇게 글을 쓸 수 있었다. 어제의 트윗이 마중물이 되다니. 이래서 트위터를 끊을 수가 없어. 그리고 브런치도.


바쁜 와중에도 공항까지 배웅 나와준 친구들에게 심심한 감사를 전하며.. 덕분에 너무 행복하게, 편하게 한국을 즐기다 올 수 있었다고 말하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다시 쓰다 - 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