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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질 Aug 05. 2023

게임과 1호선

어디로 가든지 마주하게 되는 지하철 풍경

오산역으로 내려가고 있다. 내려간다는 것은 지도에 위와 아래가 있으니 서울에서 경기도로 내려간다는 의미다. 납작하게 가로로 있는 지도인데도 위와 아래, 그렇게 읽힌다.


1호선은 북작북작하고, 다른 호선과 다르게 연세가 지긋한 분들이 많다. 파마 머리를 한 아주머니들이 도란도란 혹은 왁자지껄하게 이야기를 하면 눈길이 간다. 특이한 사람들이 돌발 행동을 할 때면 조르륵 앉아있던 사람들의 눈이 한 쪽으로 쏠린다. 뭐야, 눈들이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다.


1호선에는 늘 사람이 많다. 오늘은 폭염이라 에어컨을 켰는데도 열차 내부가 뜨끈하다. 서있는 사람들은 다들 무언가를 기다린다. 앉아있는 누군가가 지하철역 어디인지를 알리는 전광판을 쳐다보기를, 엇 하고 일어나 호다닥 스크린도어로 달려가기를. 자리에 앉기 게임을 하고 있다.


재밌는 이야기로, 1호선은 자리가 나도 섣불리 앉지 않는다. 자리에 앉기 위해서는 몇 가지 규칙을 지켜야 한다. 앉아도 괜찮을 정도로 충분한 나이가 있을 것, 충분한 피로가 있을 것, 충분한 짐과 그밖의 애로사항이 있을 것.


아마도 서로가 알기 때문이겠다. 언제나 인파로 꽉 차 있는, 가장 처음에 만들어진 나이 지긋한 서울의 지하철을 타기 위해서는 배려가 필요하다는 것을. 더 힘든 사람들을 위해 서서 가는 사람들. 의미부여일 수도 있겠지만, 창밖의 푸른 경치만큼 아름답다.


내 오른쪽 젊은 청년이 아주머니에게 "금정역, 다음역이 금정역이에요. 내리세요!" 한다. 아마도 아주머니가 금정역 가려면 어디로 가야해요, 하고 젊은 청년에게 물어본 것이 아닐까 싶다. "고마워요" 작은 목소리를 들었다.


the doors are on your left.

Please, watch your step.


내 왼쪽 아주머니들은 "금정역이래, 금정역" 하면서 자기들의 목적지가 얼마나 남았는지 확인해보고 있다. 서로들 모르는 사이인데 함께 지하철에 탄 일행인 것처럼 대화를 한다.


기장님이 다음 열차는 성균관대역이라고 방송을 한다. 왜 방송을 하는지는 모르지만 앉아있던 젊은이 둘이 후다닥 지하철을 나섰다. 1호선에는 오래 탄 사람들만이 아는 어떤 룰이 있는 것만 같다.


선캡을 쓴 아이와 분홍색 킥보드를 끄는 엄마. 핸드폰을 보는 사람들, 멍하니 사람 구경을 하는 어른들. 창밖에는 푸른 잎이 가득이다. 여름의 경치다.


지하철이 속도를 높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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