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직서는 3일 만에 수리되었다. 어디로 가면 좋을까.
지구의 에너지가 나를 바닥으로 끌어내리는 저녁이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노트북과 핸드폰을 챙겨 집 앞 카페로 나왔다. 달달한 것을 먹으면 기운이 생길까. 이곳의 아쌈 밀크티는 참 맛있다. 거기에 바닐라 아이스크림 한 스푼을 더해 달라고 요청했다. 카페 사장님은 아쌈 밀크티 위에 올려진 동그란 바닐라 아이스크림에 초콜릿 조각으로 눈코입을 만들어주셨다. 귀여웠다.
사람을 음계에 비유하자면 늘 낮은 도에 머무르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나는 그런 사람이었다. 잠시 인연이 있었던 음악을 만들던 남자는 나보고 음침한 구석이 있다고 했다. 그래도 웃으면 귀여우니까 많이 웃어,라고 말했다. 나는 남들이 있을 때 많이 웃는다. 그래도 혼자 있을 때 많이 울었고, 이제는 혼자가 아니더라도 눈물이 줄줄 흐르는 지경이 되어서 내 소중한 사람들, 그리고 사회와 잠시 거리를 두고 있는 상황이다.
올해 3월 일을 그만두었다. 사무실에서 일을 하는데 눈물이 흘렀다. 옆에 놓인 티슈곽에서 휴지를 꺼내 조용히 눈물을 닦고 다시 일을 했다. 처음에는 숨길 수 있었지만, 점점 빈도가 많아지니 옆팀에서 업무 협조를 요청하러 온 인턴이 미처 마르지 않은 내 축축한 눈을 마주해야 했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서 팀장님에게 일을 그만두겠다 말씀드렸다. 확정이 나고 며칠 만에 사직서가 수리되었다. 회사 포털에서 메일이 지워졌다.
퇴사 처리가 너무 빠르게 이뤄져서 미처 데이터를 옮기지 못했고, 회사 클라우드와 연결된 파일들은 더 이상 열 수 없게 되었다. 이전에 하던 모든 일들과 강제로 거리를 두게 된 것이다. 그동안의 흔적이 모두 지워졌다. 이직을 준비할 때에는 다소 불리할 수 있겠지만, 이렇게 일과 거리를 두는 것이 내게 도움이 되었을지 모르겠다. 노력한다면 어떤 상황에서도 긍정적인 요소를 찾을 수 있다. 물론 그것을 진심으로 믿는지는 다른 영역의 일일지라도 말이다.
급작스럽게 일을 그만두게 되었으니 인수인계가 더 필요하거나, 협력업체에서 전화가 오는 일이 있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더불어 직전까지 운영하던 캠페인의 결과보고를 작성해야 하는데 담당자가 나 혼자라 그 일은 집에서 마무리를 하겠다고 말씀드렸다. 그렇게 열흘 정도 무료로 일을 더 해주니, 더 이상 일터에서는 연락이 오지 않았다. 쉴 새 없이 울리던 카카오톡, 문자, 전화는 잠잠해졌다.
어디로 떠나야겠다. 누군가는 즐거운 일을 찾기 위해 여행을 가겠지만, 나는 모든 것을 잊어버리기 위해 여행을 떠났다. 나를 이유 없이 울게 만드는 모든 것들로부터 도망가고 싶었다. 내가 왜 우는지 몰랐고, 우는 게 두려웠다. 내가 울면 사람들도 우는 얼굴이 되니까, 그 모습을 보는 게 무서웠다. 한국에서 가장 먼 곳은 어디일까, 내가 가지 않을 곳이 어디일까 생각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유럽이었기 때문에 나는 스페인 마드리드행 왕복 항공권을 끊었다. 가격은 왕복 60만 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