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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백칠호 Jan 12. 2022

신년 목표는 '오픈 마인드'

 메타버스를 책으로 배우더라도

마침 오늘 아침 새로운 프로젝트 계약을 하러 다녀왔다. 그런데 상대 회사가 너무 자연스럽게 전자계약서 이야기를 꺼냈다. 응? 전자계약서? 계약서면 계약서지, 전자는 뭐지? 거기에 도장은 어떻게 찍는 거지? 한참 고민하고 있는데 계약서를 메일로 보내겠다고 했다. 어도비로 어쩌고저쩌고. 아 머리 아파. 


일단 알겠습니다만, 가방에 도장 넣어 왔다고는 절대로 말 못 해요. 


내가 아이 똥기저귀 갈고 있는 동안 세상이 참 많이 변했다. 1년도 안 되는  사이 어쩜 나만 쏙 빼놓고 세상 사람 전부 신문물에 완벽 적응해 앞서 나간 것처럼 보인다. 특히 디지털 기술 분야는 코로나 사태를 거치며 이미 저 멀리 가 있다. 


그 가운데서도 귀가 따갑도록 들은 것이 ‘메타버스’였다. 올 한 해를 관통한 IT 트렌드란다. 트렌드에 민감한 기업들은 이미 메타버스를 활용해 마케팅 매출도 올리고 관련 주식은 하루아침에 폭등하기도 했다. 전 세계 기업과 경제를 주무르는 아주 대단한 녀석인데, 나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실체가 없는 듯 느껴졌달까. 메타버스를 알아야 돈도 벌고 세상 돌아가는 것도 안다고 해서 제페토에도 가입했건만. 나의 제페토 피드는 친정엄마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 사이버판이다. 자꾸만 꽃 나무 옆에서 사진만 찍게 되는 걸 어떡해.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어 도서관에서 메타버스 관련 책을 빌려왔다. 책을 본 남편이 킥킥댔다. 


“메타버스 책 빌려왔어? 아니, 싸이월드를 글로 배우는 거랑 뭐가 달라?”


메타버스는 이미 어떤 이들에겐 자연스럽게 생활하는 공간일 것이다. 일상적으로 경험하며 몸으로 체득하는 것이 가장 빠르게 문화와 기술을 받아들이는 방법이란 걸 잊고 있었다. 메타버스 책을 넘기는 나에게서 싸이월드에 사진 업로드하는 법을 물어보던 이모, 컴퓨터 켜고 끄는 법을 주민센터 컴퓨터교실에서 배우던 엄마가 겹쳐 보인다. 아무렴 어때, 당시 나는 이모와 엄마가 귀엽고 기특했었다. 조금 답답하긴 했지만. 


기계치에 아날로그러버인 나는 10년 넘도록 미술관 박물관 기업 등의 홍보 인쇄매체를 만드는 일을 해왔다. 동기들과 모일 때마다 이쪽 일은 사양산업이니 산 입에 거미줄을 치지 않으려면 다른 일을 찾아야 한다고, 마르고 닳도록 말해왔지. 강산이 바뀌는 사이 다들 정말로 업계를 떠나 뿔뿔이 흩어졌다. 부동산중개인, 개발자, 웹기획자, 유튜버… 


그들이 떠난 자리에 덩그러니 남았다. 

드는 품에 비해 남는 게 없고 시장 자체가 작아져 일할 기회도 많이 줄어버린 이곳에. 늘 투덜거리지만 아예 놓진 못 하는 나의 일. 작정하고 한 우물을 팔 생각은 전혀 없었는데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되었다. 


첫 입사했던 잡지사가 웹진과 종이매거진으로 나뉘어 분사할 때 지조 있는 사람인냥 매거진만 하겠다고 선언했었다. 그 매거진회사는 1년 만에 휴간을 고했다. 플랫폼도 중요하지만 내용이 우선인 걸 그땐 몰랐다. 

아니, 모르고 싶었다. 다른 영역으로 발을 들이기가 겁이 났던 걸까. 

경험이 없는 영역에서의 실패가 두려워서. 원래 해오던 것이 익숙하고 편해서. 

그래서  가만히 있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조금 더 용기를 냈어도, 조심스러운 마음을 덜어냈어도 괜찮았을 텐데. 그랬다면 내 세계가 지금보다 더 넓어졌을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 이유로 이번 프로젝트에 합류하기로 결정했다. 경험해보지 않은 클라이언트 부류와 새로운 플랫폼의 콘텐츠 제작도 함께할 수 있어서. 과연 잘 해낼 수 있을까. 옛날의 나 같으면 ‘잘 모른다’, ‘경험이 없어서 백퍼센트 실력을 발휘할 수 없다’는 이유로 거절했을 것이다. 

그래 어쩌면 진짜 망할지도 모른다. 망해서 이 새로운 영역에 다시는 발을 들이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뭐 어때. 거절했다면 애초에 발 들일 일도 없었을걸. 뺄 때 빼더라도 발가락은 담그고 빼자. 

아무쪼록 2022년엔 새로운 영역 그리고 새로운 사람에 열려 있고 싶다. 

메타버스를 책으로 배우더라도 말이다. 




빠르게 변하는 세상 속에서 

혼자만 너무 느린 건 아닌지 전전긍긍하는 엄마 사람입니다.
신년 목표는 일단 빠른 것들한테도 오픈마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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