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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백칠호 Sep 29. 2022

피아노 소리가 들려오는 창

일상에 부는 새로운 바람 

첫 수업 시간, 그토록 갈구했던 그랜드 피아노를 마주하고 앉았다. 내가 감히 그랜드 피아노를…? 초보운전자가 벤츠로 운전을 시작한다면 이런 기분일까. 심장이 콩닥콩닥. 선생님의 피아노를 대하는 기본 가이드는 대강 이랬다. 손가락은 달걀 쥔 모양으로, 누르는 힘은 손목이 아니라 팔과 체중에서 끌어다 쓸 것. 연습곡 중 종소리를 묘사하는 곡은 국자로 국물을 퍼내는 기분으로 마지막 음에서 무게를 실었던 손목을 슬며시 떼서 느낌을 살려줄 것. 선생님 말씀을 잘 이해하고 실천하는 모범생처럼 해내고 싶었건만, 손가락은 자꾸만 납작한 부채모양이 되고 손목은 로봇처럼 꺾였다. 내 손가락 관절, 이대로 괜찮은 거니? 손은 분명 내 것인데 왜 남의 손처럼 움직이는가. 선생님은 긴장한 로봇처럼 움직이는 학생에게 각종 스킬을 세세히 알려주시며 기름칠을 해주셨다. 


“네네!” “알겠습니다!” “해보겠습니다!” 만을 1시간가량 외쳐댔던 첫 수업. 

정규 수업시간은 30분이었으나 학생이 얼마나 답답했던지 30분을 더 할애해주셨다. 누가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 따르는 내 모습이 웃기기도, 놀랍기도 했다. 나이를 먹을수록 기준과 취향이 확고해지면서 남의 말을 들을 여유도, 고분고분 따를 이유도 없었다. 그런데 시간이 흘렀어도 여전히 내게 선생님이란 존재는 컸나 보다. 이렇게 말을 잘 듣게 되는 걸 보면. 나보다 무언가를 더 잘하는 실력자 옆에 찰싹 달라붙어서 배우는 시간, 그것 또한 너무 그리웠다. 확실히 좋은 선생님을 통해 무언가를 제대로 배운다는 건 그립고도 설레는 일이었다. 


그날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슬며시 전자 키보드를 켰다. 좀 더 힘 있게 치고 싶다. 매끄럽게 치고 싶다. 리듬감을 살려 치고 싶다. 피아노 건반의 묵직함을 한 번 맛보고 오니 전자 키보드 건반이 가볍고 가짜처럼 느껴졌다. 벌써부터 피아노에 빠졌다. 어쨌든 1시간을 즐겁게 두들겨댔다. 


예상대로다. 피아노를 시작해서 다행이다. 덕분에 일상에 새로운 바람이 분다. 

어두컴컴하고 답답했던 내 마음에도 즐거운 피아노 소리가 들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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