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Tailor YURI Apr 22. 2018

수트의 시작,
이 남자 Beau Brummell

All about Dandyism

이 남자 Beau Brummell을 당신이 알아야 하는 이유
Beau Brummell과 London의 시대적 배경
Dandyism : Suits가 담고 있는 정신






이 남자 Beau Brummell을
당신이 알아야 하는 이유


슈트의 기원은 군복에서 유래하였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오늘은 이 오명? 에 대해 바로잡고자 

영국의 근사한 한 남자의 이야기를 소개하며,

제임스 본드의 옷장과 비즈니스를 시작하고자 한다.


슈트는 남자의 전투복이다? 갑옷이다?

물론 아주 근사한 문구이다.


뭔가 슈트를 입으면 비즈니스에서 전투 모드가 되어야 할 것 같고

아드레날린이 솟구치며, 대뇌의 전두엽이 풀가동되는 듯한 흥분을 일으킨다.

뭔가 아.. 남성미! 이것이 남자다 이런 느낌.


하지만 사실 당신이 오늘 입고 있는 슈트의 남성성이 의미하는 바는 그것이 아니다.

오히려 아주 부드럽고 따뜻하며 온화한 의미의 남성미를 의미한다.


나는 이 글을 통해

왠지 슈트 입고 나가면 막 이겨야 할 것 같은,

그런 싸움을 부추기는 듯한

부담스러운 표현을 좀 걷어내고 싶다.




Real Manly

Beau Brummell

슈트의 기원, 그 중심에 있는 브럼멜에게 Manly의 진정한 의미는 전투적인 Manly 보다

매우 지적이며 품격 있는 Manly

즉, 간단히 말해 18세기 런던, 당시 슈트를 통해 이 남자가 강조한 남성성은

지성, 품성, 감성 이었다.


이것은 하나의 신념이자 부흥한 사회적 분위기와 매우 지적이고 스타일리시한 남자의 사상이 만나 탄생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기존 상류층에 거센 저항과 선입견이 있었지만 이와 당당히 맞서 살아남은 역사적 가치를 지닌다고 생각한다. 또한 이것은  이후 하나의 문화적인 현상과도 결합되어 새로운 흐름을 만들기도 했다.


각설하고,


그렇다. 당신이 지금 입고 있는 슈트는 전쟁을 하고자 입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Gentle 한  Manly의 사상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당신의 wardrobe 안에 반드시 있는을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

Dark navy suit 가 존재할 수 있었던 것은 오늘 설명할 이 남자로 부터 시작한다.


오늘 이 글을 읽으며, 이 남자 Beau Brummell에 약 10초간 조용히 감사의 인사를 했으면 한다. 그가 없었다면 어떤 불상사가 일어났을지모를 일이다. 아래 조지4세를 보며 설명하도록 하겠다.


지금부터 슈트라는 복식의 사상이 되는 그의 Dandyism을 통해 우리가 누리는

'이 합리적이고, 근사한 복식'을 되짚어보도록 하겠다.






Beau Brummell과
London의 시대적 배경



Beau Brummell의 Dandyism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18세기 당시 런던의 시대 배경을 먼저 알 필요가 있다.


짧고 쉽게 설명하겠다.



18세기 산업혁명 (1760년~1820년)

정치적 성숙화

인구 성장률 최고

세계에서 가장 큰 도시(두 번째가 런던 절반의 프랑스 파리)


한마디로,

세계에서 제일 잘 먹고, 잘 사는데,

지적이기까지 한 그런 시대라고 볼 수 있다.






이번엔 Beau Brummell의 프로필을 간략히 읊어보겠다.

이번에도 짧고 쉽게 설명하겠다.



Beau Brummell

 1778 년에 태어나 1840 년에 숨을 거둠

사교계 셀럽

정치인 아버지를 둔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남

이튼스쿨을 나와 옥스퍼드대를 졸업, 엘리트코스의 정석을 거침

조지 4세 절친

사치가 좀 있어서 말로는 별로 안 좋음(프랑스에서 가난하게 쓸쓸히 운명하심)


한마디로

스타일리시하면서 지적인.

당시 좀 사는 남자들의 선망의 대상.

런던 사교계 최고의 셀럽.



자 그럼, 도대체  Beau Brummell은 왜 당시의 복식을 거부하고 자신만의 스타일을 만들게 된 것인가.

당시 상류층의 분위기에서 그의 복식은 반항을 넘어 혁신적이었다. 그만큼 귀족사회의 통념적 복식에 대한 가치관을 바꾸는 장벽은 높았다. 하지만 사회의 산업화에 따라, 자유시장경제에 대한 시대적 변화와 더불어 복식에 대한  브럼멜의 -합리적, 논리적, 실용주의적 접근-은 남성들에게 굉장히 설득력 있게 다가올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생각해본다.

Beau Brummell의 근대 슈트의 초기버전


그렇다면 도대체 뭐 어떻게 입고들 다녔길래 브럼멜의 슈츠 양식이 그렇게 대단했다는 것인가.

아래 브럼멜의 절친이자 당시 왕자 조지 4세의 복식과 분장을 보면서 조용히 고개를 끄덕여보자.


Beau Brummell 중 조지 4세

18세기 당시 조지 4세의 모습을 영화에서 재연한 것을 캡처해봤다.

가장 여성스러운 형태의 남성복식이 주류를 이루었던 시대였다.


이것이 싫어서 브럼멜이 자신만의 스타일을 창조하여 입고 다닌 것이 근대 슈트의 첫 시작이라고 보면 될 것이다. 굉장하지 않은가. 중산층의 엘리트 자제가 귀족들의 복식 스타일을 바꾸어놓았다는 것이.


물론 당시 이에 대한 반발도 있었다. 천박하고 없어 보인다는 표현은 물론 길가다가 얻어 맞기도 하고  갖가지 고충을 겪었다. 하지만 결국에 브럼멜은 자신의 라이프스타일과 패션을 런던의 주류로 만들었고 지금 당신의 옷장 안에 그 슈트가 있을 수 있게 되었다. -박수-


위에 조지 4세의 차림새가 마음에 들고 가발과 하얀 분칠, 화려한 색상의 옷감들. 이것이 별로 과하지 않다고 생각이 든다면 아래 사진 한 장을 더 첨부하겠다.

Beau Brummell 중 당시 귀족

그렇다 과하다. 인정하자.

당시 집 좀 잘살고 동네에서 이름 좀 날리는 집안 자제분들이 입은 당시의 최신 유행이다.


이제 진심으로 Beau Brummell에 경의를 한번 표하고 싶지 않은가.


다시 본론으로 돌아오자.


조지 4세는 당시 외모에 열등감이 있었다. 그래서 분장도 가발도 정도가 점점 더 과해지던 어느 날. 더 이상의 불만족을 참기 어려워지자 그의 스타일링을 도와줄 누군가를 찾게 된다. 그렇게 브럼멜이 찾아왔고. 그를 향해 조지 4세는 솔직한 속내를 털어놓는다.

'아 나 너무 못생겼어, 이래저래 해봐도 못생긴 거 같아. 우리 아빠 말론 나는 취향도 별론거 같데. 나 짐 넘 슬픔'

라고 불평을 하자 이를 안타깝게 본 브럼멜이 그의 스타일링을 돕기 시작한다.


별거 없다. 일단 가발과 분장을 먼저 지워줬다.

Beau Brummell 중 브럼멜 스타일 시전 중

이 모습이 어색했던 조지 4세는 말한다.

'아 뭔가 창피한데 벌거벗은 거 같아'라고 하자.

브럼멜이 이때 딱 멋들어진 대사 한마디를 날린다.

'이게 바로 manly다.'

이후 조지 4세는 엄청난 자신감을 갖게 된다.

브럼멜의 스타일링을 거친 조지4세

이것이 아마도 브럼멜의 댄디즘의 기초가 된 시발점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후 브럼멜은 남성의 복식과 자세, 매너와 말투 등등-남성의 라이프스타일 자체에 대한 런던 남성들의 리더가 된다. 집 좀 살고 멋 좀 부린다는 젊은 남성들은 그의 주변에 모여들기 시작했고, 적게는 2시간에서 길게는 6시간이 걸린다는 브럼멜의 그루밍과 복식 방법을 보고 배우기 위해 아침부터 그의 집 앞에 사람들이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씻는 것부터-그루밍하고-옷 입는 것 타이매듭짓는 것 하나까지 다 보고 따라 하려고 말이다.

그렇게 몇 시간을 앉아 관찰하고 배워갔다.

Beau Brummell 중 브럼멜의 아침 워크샵 아닌 워크샵

브럼멜처럼 먹고 입고 자고 씻고 싶어 하는 청년들이 점점 늘어나 이것은 마치 하나의 신드롬과 같았다. 한두 명이 저렇게 앉아 구경한 게 아니라 그냥 열댓 명이 뒤에 브럼멜과 똑같이 입고, 이렇게 서서 구경하고 있다.

Beau Brummell 중 브럼멜의 아침을 보고배우고자하는 런던의 남자들

아마도 저렇게 많은 남자들 앞에서  알몸부터 옷을 한 겹 한 겹 걸치는 모습까지 워크숍을 하는 것으로 보아, 브럼멜은 엄청난 자신감을 가진 사람이 아니었던가 생각된다. 보다시피 브럼멜에게 남자다움이란 타고난 외모 보다, 스스로를 외적으로 얼마나 가꾸는지, 내적으로 얼마나 문학적 소양을 가졌는지, 행동 양식과 품행, 언사 등 후천적 다스림으로써 정의한다고 볼 수 있다.-실제로 그가 미남이라는 내용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Dandyism


이렇다면 지금부터 당신 옷장에 조용히 걸려있는 슈트가 가진 철학에 대해 알아보자.

당신이 입고 있는 슈트는 Minimalism의 사상을 기본으로 하고 있는 것을 아는가?


당시의 귀족사회와 브럼멜스타일의 대조

위에서 확인했다시피, 당시의 귀족사회 패션은 과장됨의 최정점이었다고 볼 수 있다.


아니 왜 이지경까지... 필자가 얇고 넓은 지식을 총동원하여 추측하는 바에 의하면 -1300년대부터 많은 유럽인의 목숨을 앗아간 흑사병에서 기인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1700년대 프랑스 왕실에서는 이 흑사병균이 물에서부터 오는 병균이라는 의사의 말에 '그렇다면 우리 씻지 않기로 해'라는 분위기가 퍼져나갔다고 얼핏 들은 기억이 난다.

자연스럽게 안 씻는 것이 미덕인 분위기가 되니까. 신난다. 그러나 인간은 생각보다 쉽게 더러워진다. 왜냐, 피부는 하나의 거대한 배설기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화장은 하는 것보다 지우는 게 중요하다고 하는 거다.) 본론으로 다시 돌아와. 피부에서 각종 개기름 및 땀등 온갖 것들을 분비하니 온몸이 더러워지는 것은 당연하다. 개기름은 또 흡착 능력이 뛰어나다. 자주 제거하자. 무튼 그렇게

더러운 얼굴을 감추고자 더 하얗게 분칠 하기 시작한다. 머리에 떡 이지니 세상없어 보인다. 가발을 쓴다. 근데 몸에 냄새가 난다. 그것은 옷을 자주 갈아입는 것으로 해결한다. 그럼에도 가시지 않는 몸의 냄새를 가리기 위해 향수를 뿌리자.

이렇게 엎친데 덮친 격으로 나타난 돌려 막기 식 치장 문화는 왕족과 귀족에서 시작해 중산층까지 퍼져나갔다고 한다.  일단 시각적으로 아름다워 보이니까. 그러다 세월이 흘러, 1700-1800년대에는 흑사병 발생 주기가 소강상태가 되었다. 그러나 전통이라는 것이 그렇지 않은가. 왜 하는지 이유는 모르겠지만 옛날부터 그래 왔기 때문에 그냥 하는.


근데 이 남자 브럼멜은 이것이 싫었다. 이미 왜 저렇게 하고 다니는지 그 의미가 많이 희석된 시대적 배경도 있을 것이다. 심플하고 미니멀하게 자신을 자연스럽게 드러내면서 기품과 위용을 뽐내는 것이야말로 남자다운 것이다라고 생각한 브럼멜의 생각은 당시 혁신과도 같았다.-실제로 브럼멜의 댄디에 대한 정의에는 잘 씻어야 한다라는 내용의 정의도 포함하고 있다.-

개인적 사견으로는 아마도 조지 4세가 치장한 모습으로 말미암아 유추해보건데, 중산층인 브럼멜 입장에서는 저런 스타일을 하기 위해 가발도 사야 하고 화장품도 사야 하고 뭐도 사야 하고 기타 등등의 경제적인 비용 문제도 크게 작용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상류층 입장에서 댄디즘은 '우리처럼 사치하지 못하는 자들의 구차한 변명'쯤이라고 여길 수도 있었을 것 같다.


요약하자면,

브럼멜은 경제적으로 귀족사회의 주류 패션문화를 따라가기도 버거운 상태에서 거추장스럽고 과장된 치장이 싫었던 마음이 결부되어 탄생한 것이 아닌가 라는 사견이다. 그러나 사회의 상류층 대세를 거스르고 자신만의 스타일을 확고히 한 것, 이것은 스스로에 대한 엄청난 자존감과 자신감이 바탕이 되었으리라 추측해본다. 그 결과 댄디즘은 합리적이면서 실용주의적 사상을 바탕으로 바로세운 자존감. 이것을 근간으로 시작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아래는 영화 브럼멜에 나온 댄디를 정의하는 관련 대사를 대충 옮겨보았다.

Dandy is a portrait of study de carelessness but without
the appearance of study the dandy style.
Less is more. - no wigs no powder, we don't use scent.
The dandy is cleaned, the dandy is neat.
the dandy does what he wants when he wants, where he wants.

 

Less is more

그렇다 dandyism을 한 번에 정리하는 문구다.

브럼멜의 댄디즘은 일단 거추장스러운 것들을 모두 깔끔하게 들어낸다. 가발을 벗어던지고, 단정한 로마인식의 헤어컷, 짙고 간결한 프록코트와 이에 대조되는 웨이스트 코트, 스타킹을 벗고 길게 내린 트라우져, 화려한 자수의 힐 대신 반짝이게 광을 낸 부츠 혹은 구두. 모든 것을 Less 하면서  Manly를 More 하는 것 (보그체로 써서 미안하다) 이것이 바로 근대 슈츠 기본 형태의 탄생인 것이다. -박수-

브럼멜의 댄디즘은 당신의 타고난 외모에 관한 어떠한 지적도 없다.

 그의 스타일 코칭내용을 정리해보면,

목 위쪽 : 내적인 지적 충만함 / 외적으로 단정한 헤어와 코털과 수염과 눈썹 등 이 털들만 정갈하게 정리하면 된다.

목 아래쪽 : 내적으로는 상식적이다. 그냥 깨끗이 잘 씻는 게 기본 / 외적으로는 최대한 깔끔하고 심플하면서 자연스럽게 착장 하는 것 (여기서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과장된 멋을 부리는 것보다, 자연스러운 멋을 연출하는 시간이 더 오래 걸린다.)

행동 전략 : 자세는 곧고 바르며, 말투는 빠르지 않고 점잖게.

정서적 전략 : 문학적 소양을 깊게.


보다시피 그는 외적 혁신과 더불어 기품있는 자세와 말투, 행동양식 등 사회적 매너에 관한 정의에 대해서도 규정하고 전파한다.  Manners Maketh Man이란 말이 괜히 나온게 아닌것 같다.


한가지 우리가 그에게서 배우지말아야할것이 있다면, 그는 도박을 좋아하며 경제적인 개념이 좀 부족한 삶을 살았던지라, 우리 이런건 배우지 말도록 하자. 브럼멜의 노년은 빚이 이 감당이 안되어 프랑스로 도망가 노후를 보내며 쓸쓸히 생을 마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럼에도 그가 당시 잘 사는 도시에서, 공부 좀 하고 집 좀 사는 상류층 런던 남성들의 선망의 대상이었던 것임은 분명하다. 아마도 그것은 많은 남성들에게 화려한 사치와 치장속에 묻혀 잊어진 남성 본연의 자신감과 자존감을 흔들어 깨워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브럼멜의 댄디즘이 가진 메시지를 필자는 이렇게 정리하고 싶다.


내적 풍부함과 외적 간결함,

젠틀한 상호 인터렉션

자존감을 바탕으로 어떤 삶의 양식을 갖고 사는지가 당신을 정의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당신이 정의하는 대로 자신을 가꾸고 행동하면, 사람들도 당신을 그런 사람이라고 믿을 것이다. 스스로의 존재감을 일깨우는 브럼멜의 댄디즘은 시간이 흘러 유럽 내 문화 예술적 사상에도 영향을 미쳐 예술가의 자존심을 상징하는

정신적인 귀족주의

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는 시간이 흘러 더 내면적 가치로 승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오늘 아침 당신의 옷장을 열어보아라. 지금 입고 나갈 그 슈트는 몇 백 년 전 런던의 한 남자가 남성들에게 심어준 자존감과 자신감을 상징하는 기념비적 의복임을 꼭 기억하길 바란다.



브럼멜이 불어넣은 자신감을 입고

오늘 하루 당신의 비즈니스에 행운이 가득하길 바란다.












안녕하세요. 유리예요.

다음주는 슈트의 시작-셔츠의 해부학이라는 주제로 찾아올게요.

오늘 글 재미있었기를 바라며,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감사합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