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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폴폴 Sep 29. 2022

오 분 전엔 몰랐어요

<성적표의 김민영>


그를 만나는 동안 그녀는 새로운 영화나 드라마를 안 봤어요. 그녀는 봤지만 그는 아직 보지 않은 걸 같이 보고 싶었거든요. 그녀 인생에 같은 작품을 두 번 보는 일은 없다고, 그한테 말하지도 못했어요. 그녀는 그가 웃으면 같이 웃고, 그가 충격을 받으면 같은 크기의 충격을 받았어요. 견고하던 국경이 희미해지 처음 보는 영토가 생기는 걸 느끼면서요.


일하고 돌아오는 길에 맥주를 사기도 했습니다. 그 혼자 마시게 두고 싶지 않아서요. 경보 대회를 준비하는 사람처럼 헐떡이며 들어선 것도 여러 번이었죠. 바람을 휘젓고 온 다리를 쭉 뻗은 채 저녁만 기다린 어깨를 그의 어깨에 기대려고. 드라마나 영화를 같이 보는 뭐 그리 대수냐고 당신이 물을 수도 있겠습니다.


그때 그녀에게 그건 대단한 일이었어요. 오늘 인터넷을 배운 사람처럼 자의 세계에서 영상의 세계로 막 넘어온 그의 손을 잡고 미로처럼 꼬불꼬불한 성곽과 언덕과 광장과 골목을 돌아다니는 일은, 가본 적 없는 나라에 가는 일보다 흥미진진했거든요.


뭐든 자신보다 많이 알아서, 새로운 세계를 보여줄 사람을 기다린다고 말하면서도 그녀가  건 다른 쪽이었나 봐요. 그녀가 아는 걸 모르는 사람. 그녀는 그에게 혼자 살던 동네의 창문을 하나씩 열어 보여주는 게 좋았요. 창문을 열 때마다 다른 날씨, 다른 등장인물이 나타나 이야기를 시작했거든요. 그동안 차곡차곡 이야기를 쌓아둔  그한테 껍질을 벗긴 이야기의 속살을 보여주기 위해서란 생각도 들었어요.


새로운 게 보고 싶어,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 그런 말을 꺼낼 생각도 못했어요. 그와 함께 볼  몇 년 치나 쌓여있었으니까요. 그런데, 그렇잖아요. 이별을 예감하고 몇 년을 끌기도 하고, 몰랐던 마지막이 오늘이 되기도 하죠. 예사로운 날을 고르려고 그는 고심했을까요. 누구의 생일도 명절도 국경일도 아닌 날, 아마도 몰랐겠지만 24절기 중 하루날, 그가 입을 열었어요. 설거지는 내가 할게,라고 말할 때처럼 단조로운 톤이었어요.


이제 느슨하게 연락했으면 좋겠어.


그게 이별의 말인 걸 그녀가 바로 안 건, 그가 다른 사람이랑 연락을 끊으려고 결심했을 때 그렇게 서두를 꺼낸 걸 본 적 있기 때문이에요. 느슨하게 연락하다 차차 멀어질 거란 말을 하는 그의 을, 그때 그녀는 물끄러미 지켜봤죠. 헤어지기로 마음먹으면 지체 없이 헤어지는 자신의 속도와 다른 방식에 침묵했지만, 반응을 안 보였다고 해서 그 일을 잊은 건 아니었어요.


그녀는 그 순간 그와 헤어지기로 마음먹었어요. 무거운 이별의 그림자를 땅에 끌리게 데리고 다니다 진 자루에서 지난 시간이 줄줄 새는 걸 보 싫었요. 자루에 든 게 뭔지 영영 모르게 되더라도요. 함께한 시간만큼 무거운 자루를 내려놓고 그녀는 자리를 떠났어요. 돌아보지않았어요. 돌아보면 다시 그 자루를 지고 다니다 휘청, 쓰러질 것 같았거든요.


그와 함께일 때 작동하던 것들의 절반이 깜깜하게 꺼졌어요. 우주 정거장에서 송신되 신호가 끊겼는데 그걸 고치러 갈 사람이 지구에 없는 것처럼.


그녀가 영화를 보게 된 건 절반쯤 우연이었어요. 영화를 보는데 네 생각이 났어. 어떤 목소리도 들어설 틈 없이 슬픔만 가득한 밀림을 비집고 자란 한마디가 비탄에 잠긴 잎사귀를 건드렸어요. 그녀는 목소리에 어떻게든 답하려고 버스를 타고 시내에 나, 아무 데서나 내려 걷다가 어떤 극장 앞에 다다랐어요. 이십 분 후에 영화가 시작된다고 적혀 있었어요, 그녀가 많이 나온다는 영화가.


작은 극장이었어요. 팝콘도 안 팔고 엘리베이터도 없는 건물 구석에서 그녀는 곧 시작 영화표를 끊었어요. 오랜만에 보는 영화였어요. 그 없이 보는, 혼자서 보는.


좋은 영화는 시작하자마자 알 수 있죠, 눈을 감았다 뜬 순간 어떤 사람한테 반하는 것처럼. 눈초리의 새침한 생김새나, 머리칼이 만곡선이나, 안경을 걸친 각도나, 방금 숲에서 나온 냄새에 끌려서 반하는 것처. 먼저 인사한 적 없지만 속으로는 친해지고 싶었던 사람의 이미지가 처음 보는 사람한테 박혀 있어서 그런 것처럼요.


이건 흑역사가 될 거야.


첫 대사를 듣자마자 그녀는 알았어요. 이건 내가 쓰고 싶은 영화가 될 거야.


한 장면도 버릴 수 없는 영화의 일부만 말하는 건 어려운 일이죠. 그래도 그녀는 다음 영화를 볼 때까지 계속 생각날 장면을 골랐어요. 푸딩과 5분.


푸딩은 아무리 작은 티스푼으로 느리게 떠먹어도 몇 번이면 다 먹을 수 있을 정도로 양이 적죠. 희미하게 흔들리는, 부드럽고 완만한 시간을 삼키는 느낌이고요. 그런 푸딩을 먹기로 둘은 약속했었어요. 푸딩을 먹어본 적 없다는 그에게 언젠가 같이 먹자고 그녀가 흘리듯 말한 게 다였지만요. 무심히 말하고 나서 그녀는 다음날 푸딩을 사 와 냉장고에 넣었어요. 돌아오는 길에 봉투 안에서 술렁거리던 푸딩처럼 기분 좋게 흔들리며 그를 만날 날을 기다렸죠.


지금 그 푸딩냉동실에 있어요. 흔들림도 기다림도, 흔적없이 꽝꽝 언 채로요. 냉동실에 있는 다른 것들, 생선이나 만두나 남은 피자 조각처럼요. 녹이면 갈색과 연노랑 물감 같은 맛이 날지도 모르겠습니다. 처음 샀을 때의 달콤함이 봄날 눈길처럼 녹아버렸으니까요.


영화에선 푸딩 때문에 많은 게 달라져요. 현실의 그녀는... 냉동실을 열 때마다 '느슨한 연락'이라고 적힌 명찰을 보는 기분이에요. 꺼내서 버릴까 잠깐 생각했다가, 결국 유리병을 건드리지도 못하고 조용히 냉동실 문을 닫아요. 그 차고 어두운 방에 하나는 기억하고 다른 하나는 잊어버린 약속이 들어있는 걸 잊으려고.


이야기가 남았어요. 연착 때문에 제주도에 도착한 지 5분 만에 돌아는 비행기를 타야 하는, 서툴고 아름다운 청춘들 이야기. 가능한 일일까요. 힘들게 돈과 시간을 모아 간신히 도착한 꿈의 장소를 5분 만에 떠나야 하는 상황을 순순히 받아들이는 일이요.


영화에선 그래요. 그들은 주어진 5분을 풍경과, 거기 도착한 자신들한테 감탄하는 데 써요. 두 팔로 5분을 감싸 안듯이. 야자수와 하늘과 차뿐인 길을 내다보면서, 찬란한 시간을 보내고 돌아가는 사람처럼 만족한 얼굴을 해요. 후회와 실망으로 얼룩질 수도 있는 시간이었는데 누구도 얼룩을 거기, 남겨 두지 않아요.


얼린 푸딩은 이미 푸딩이 아니고 섬에서의 5분은 순식간에 지나가죠. 헤어지던 날, 그녀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처럼 햇반으로 빚은 흰떡에 카스텔라 가루를 묻힌 경단을 만들었어요. 그가 그녀에게 준 것과 주지 않은 것, 한 번도 줄 생각을 한 적 없는 것과 준다고 말해 놓고 주지 않은 것들을 그 옆에 적어 놓고요. 어쩌면 그걸 적은 종이는


지금 여러분이 읽고 있는 이 화면인지도 몰라요.


접시 밑에 깔아놓은 한 장처럼 화면이 펄럭여요. 바람이 심할 때는 창문을 열지 마세요. 화면이 날아가면 테이블 위에 경단만 남을 거고, 그러면 먼 데서 돌아온 그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다 식은 경단을 집어 먹을지도 모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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