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꽃잎지던날 Feb 13. 2019

군바리의 식판 #1

군바리는 식판으로 밥을 먹는다.

*본 이야기는 개인적인 경험과 상상력에 의한 허구가 섞인 소설임을 밝힙니다.


내가 군에 입대를 한 건 2003년 7월의 어느 날이었다. 이제 막 피어나는 청춘의 사형선고와도 같은 입대 영장이 날아온지 얼마 되지 않아서였다. 다니던 대학을 서둘러 휴학하고, 스쳐 지나가듯 친구들과의 송별회를 마치고 나니 어느새 논산훈련소 앞이었다. 내 나이 스물한 살이었다.

함께 온 가족들과 아쉬운 마음을 달래고 있을 때 연병장 한편에서 방송이 흘러나왔다.


  “자! 이제 입대 예정자는 가운데 연병장으로 모여 주십시오!”


가족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주위의 수많은 사람들이 나와 함께 연병장으로 향했다. 나는 그렇게 군인이 됐다.

입대하고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전투복, 전투화 같은 보급품을 받는 것이었다. 한 번 받으면 군생활 내내 입어야 하는 것들이라 몸에 잘 맞는 걸 골라야 하지만 군대라는 곳이 그렇게 개개인을 신경 써주는 집단이 아니었다.

오늘 나와 같이 입대한 사람만도 백 명이 넘는다. 시간은 없고 사람은 많다. 몸에 대충 맞는다 싶으면 골라 받아야 했다. 그래서 받은 전투복을 입고 나면 누군가는 바지가 터질 듯 작았고, 어떤 이는 너무 커서 당장에라도 흘러내릴 것 같아 손으로 꼭 쥐어야 했다. 그런 모습들을 보고 있으면 하나같이 어딘가 모자란 사람들 같았다. 사회에서는 모두들 평범한 청년들이었을 텐데. 군대라는 곳은 멀쩡한 사람도 어딘가 모자란 사람으로 만드는 묘한 곳이었다. 물론 나라고 그들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


보급품 배급이 끝나면 신체검사가 이뤄진다. 반바지 하나만 입혀 놓고 이런저런 형식적인 검사가 끝나고 나면 식사시간이 이어진다. 군대에서 먹는 최초의 식사이자 훈련이기도 했다.

눈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깊게 모자를 눌러쓴 조교는 취사장 앞에 우리를 이열종대로 세워 놓고는 소리 높였다.


  “이제부터 본 조교가 식사에 대한 예절을 설명하겠습니다. 조교의 말을 잘 듣고 훈련병들은 따라 하면 되겠습니다. 알겠습니까?”


우리는 큰 목소리로 대답했지만, 조교는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다시 물었다.


  “목소리가 작습니다. 알겠습니까?”


나는 악을 쓰듯 소리쳤다.


  “네에!!”


조교는 먼저 우리에게 투박하게 생긴 숟가락을 하나씩 나눠줬다. 끝이 삼지창처럼 세 갈래로 갈라져있는 포크숟가락이었다. 얼마나 오랫동안 사용됐는지 겉이 닳고 닳아 윤이 반딱반딱 나고 있었고, 이 빛나는 숟가락은 훈련소 내내 내가 사용해야 할 숟가락이었다. 조교는 지급받은 숟가락을 허벅지쯤 달린 건빵 주머니에 넣으라고 말했다. 숟가락을 그냥 주머니에 넣는다는 게 께름칙했지만 하는 수 없었다. 모두가 숟가락을 넣자 조교는 절대 숟가락을 잃어버리지 말라고 강조했다. 이유야 뻔했다. 숟가락이 없으면 밥을 먹을 수 없으니까.


조교는 우리 앞에 은색 철제 판때기를 들어 보였다. 세 개의 작은 홈과 두 개의 넓은 홈이 파인 식판이었다. 조교는 식판에 대해 이것저것 설명하기 시작했다. 식판의 용도야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었고, 결론은 다음 사람을 위해 잘 닦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다음으로 조교는 식사하는 법에 대해 설명했다. 군대는 군대만의 식사법이 존재했다. 전우가 다 자리에 앉고, 식사에 대한 감사의 기도 후 먹을 것. 절대 숟가락을 든 손 외에 다른 손을 식탁 위로 올리지 말 것. 식사하는 팔의 팔꿈치가 식탁에 닿지 않게 할 것. 서로 대화하지 말고 빨리 먹을 것, 음식을 남기지 말 것 등등. 우리는 이런 긴 의식 같은 설명을 다 듣고 나서야 취사장에 들어갈 수 있었다.


배식은 나와 똑같은 훈련병이 하고 있었다. 식판을 들고 음식 앞에 서면 배식을 맡은 훈련병이 내 식판에 음식을 떠 주었다. 음식을 받으면 옆으로 이동해서 다음 음식을 받고, 그렇게 수십의 훈련병은 차례대로 줄을 서서 배식을 받았다.


모든 음식을 배식받자 조교는 손짓으로 내가 앉아야 할 식탁을 가리켰다. 식탁은 열두 명이 앉을 수 있는 긴 식탁이었고, 나는 앞선 조교의 설명대로 식탁에 모두가 앉을 때까지 잘 훈련받은 개처럼 기다렸다.

식탁의 자리가 모두 채워지자 조교는 식사에 대한 감사의 기도를 외우라고 지시했다.


  “식사에 대한 감사의 기도.”


우리는 그의 말을 복창하며 식탁 가운데 적혀있는 문구를 큰 소리로 읽어 나갔다.


  “식사에 대한 감사의 기도!! 음식을 준비해 주신 국가와 부모님, 전우들의 정성에 감사드립니다!!”

  “바로! 식사 시작.”

  “감사히 잘 먹겠습니다! 식사 맛있게 하십시오!!”


내 식판에 놓여 있는 건 짜장밥과 계란국, 오이무침, 김이었다. 메뉴가 짜장밥이긴 했지만 짜장은 밥의 절반 정도만 겨우 덮고 있었고, 딱 봐도 건더기는 보이지 않았다. 요령껏 잘 비벼도 절반은 맨밥으로 먹어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김이 함께 나왔나 보다. 그렇지 않고서야 짜장밥에 어울리지도 않는 김이 반찬으로 나온 게 설명되지 않았다.


국은 계란국인 줄 알았는데 옆 동기를 보니 북엇국이었다. 북어는 없고 계란만 떠있어 그런 줄 알았다. 잘 저어서 배식했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테지만, 배식하는 이들도 결국 나와 같은 훈련병이었다. 그들이라고 어디 가서 배식을 해봤겠는가. 양도 조절할 줄 몰랐고, 요령도 없었다. 짜장에 건더기가 없던 것도 아마 같은 이유였을 것이다.


멀겋게 계란만 떠 있는 북엇국을 보고 있자니 내가 건더기 없이 국물만 먹었으니 나중 누군가는 국물 없이 건더기만 먹겠구나, 하는 부질없는 이타심이 들었다. 그것도 그것 나름대로 괴로울 테니까.

식사하는 동안에도 조교는 잠시도 우리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식탁에 팔 올리지 않습니다!”, “옆 사람과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음식 흘리지 않습니다.”


나 역시 그의 불호령을 피할 수 없었다.


  “103번 훈련병!”


나는 씹고 있던 음식을 급하게 삼키고 어색한 관등성명을 댔다.


  “103번 훈련병 하정식!”

  “조교 말 벌써 까먹었습니까?”


그의 말을 이해하는 건 금방이었다. 조금 전 움직이는 식판을 잡기 위해 왼손을 잠깐 올렸는데 자연스럽게 식탁 위에 올려놓은 모양이었다.

조교는 한 동안 아무 말 없이 날 내려다보기만 했다. 그러는 동안 나는 뱀 앞에 놓인 개구리처럼 움직일 수 없었다. 이럴 땐 어떤 말을 해야 하고,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알지 못했다. 사회였다면 사과라도 했겠지만 군대라는 조직은 사회의 통상적인 교양이 먹히는 곳이 아니었다. 조교의 시선이 거둬지고 나서야 난 겨우 밥을 다시 먹을 수 없었다.


식사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식사시간이 짧았으니까. 아마도 10분 정도였던 거 같다. 조교는 손목에 찬 시계를 한 번 보고는 말했다.


  “식사시간 1분 남았습니다. 훈련병은 그동안 마무리할 수 있도록 합니다.”


내 식판에는 아직 먹지 못한 밥이 많이 남아있었다. 나는 평소 밥 먹는 게 느렸다. 가족과 함께 식사를 할 때도 늘 뒤처졌다. 함께 고기라도 먹을 때면 몇 점 못 먹고 끝나버리는 경우도 많았다. 그래서 어머니는 자주 내 몫을 따로 챙겨주시고는 했다.

밥을 다 먹은 동기들도 있었지만 나처럼 아직 먹지 못한 동기들도 여럿 있었다. 그러나 조교는 개개인의 식사속도에는 관심 없었다. 아직 취사장 밖에는 식사를 못한 훈련병이 많았다. 그들에게 자리를 내줘야 했다.


조교의 제한시간이 떨어지자 아직 밥이 남은 동기들은 속도를 높였다. 밥을 몽땅 국에 말아 마시듯 먹거나, 입 안 가득 밥과 반찬을 쑤셔 넣고는 충분히 씹지도 않고 삼켰다. 한 숟갈이라도 더 먹으려는 몸부림은 처절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모두들 20대 초반의 나이었고, 소위 돌도 씹어 먹을 나이었다. 나도 숟가락을 서둘러 놀렸다.

최후의 1분이 지나자 조교는 가차 없이 우리를 일으켜 세웠다. 마지막까지 한 숟갈이라도 더 먹어보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이미 입 속은 음식물로 가득했다. 더 넣었다간 오히려 뱉어낼 판이었다. 나는 결국 절반의 음식을 남긴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앞서 조교는 음식을 남기지 말라고 했지만 이런 식이면 안 남길 수가 없었다.


식사를 마치고 나면 길게 마련된 수돗가에서 식판을 닦아야 했다. 수돗가 한편에는 식판을 닦을 수 있게 주방용 세제를 물에 풀어 대야에 담아놓았다. 그 속에는 수세미가 담겨있었는데, 죄다 손바닥 반만 한 크기였다. 수세미 하나를 반으로 잘라 놓은 거 같았다. 얼마나 오랫동안 사용했는지 걸레보다 더 헤지고 낡은 수세미였다. 이런 거지같은 수세미였지만 이마저도 넉넉지 않아 기다렸다 사용해야했다. 군대라는 집단은 정말이지 멀쩡한 게 하나 없었다.

설거지를 할 때도 조교는 우리를 가만두지 않았다.


  “빨리빨리 깨끗이 닦습니다.”


나도 그의 말대로 깨끗이 닦고 싶었다. 그러나 수세미는 엉망이었고, 세제를 풀어놓은 물은 묽디묽었다. 용빼는 재주가 있지 않는 한 식판을 깨끗이 닦는 건 무리였다. 열심히 수세미로 식판을 문대 봐야 기름기는 사라지지 않았다.

조교는 수시로 우리를 채근했다. 손이 조금 느리다 싶으면 어김없이 훈번을 부르며 지적했다.


  “빨리 안 닦습니까?!”, “뒷사람 기다리는 거 안 보입니까?!”


전쟁이 난 것도 아닌데, 밥도 빨리빨리, 설거지도 빨리빨리. 신경쇠약에 걸릴 거 같았다. 대한민국의 빨리빨리 문화는 분명 군대 때문에 생긴 게 분명했다.


  “야! 존나 웃기지 않냐?”


옆에서 설거지하던 동기 윤립중이었다. 나보다 한 살 많았던 그는 내무실에서도 바로 옆자리였다. 그는 102번. 나는 103번.


  “깨끗이 빨리 닦으라는 게 말이 되냐? 깨끗이 닦으려면 천천히 닦아야지. 안 그냐?”


그의 말이 맞다. ‘깨끗’과 ‘빨리’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런데 군대에서 말이 되는 게 있던가. 나는 체념한 듯 대답했다.


  “군대잖아.”


마법 같은 말이었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받아들이게 하는 말. 제아무리 억울하고 이해가지 않아도 이 한 마디면 모든 게 납득이 됐다. 군대란 그런 곳이었다.


나는 식판에 묻은 잔반을 빠르게 처리하고 설거지를 끝냈다. 겉보기에는 깨끗해 보이지만 만져보면 여전히 기름기가 남아 미끈거렸다. 어차피 깨끗하게 닦는 건 불가능했다. 남은 건 빨리 뿐이었다. 내가 사용할 때도 누군가 이렇게 대충 닦아 놓았던 거라 생각하니 찜찜함을 지울 수 없었다. 원효대사 해골물은 진리였다.


식판을 반납한 훈련병들은 취사장 앞으로 다시 모였다. 막사로 돌아가기 위해서였다. 손에는 훈련받는 6주 동안 사용해야 할 숟가락이 들려있었다. 먹기 위해서 무엇보다 잘 간수해야할 물건이었다. 립중이는 숟가락에 ‘세바스찬’이라는 이름도 붙여줬다. 당시 인기 있던 개그프로에 나오는 캐릭터 이름을 따온 것이었다. 어딘가 별난 사람이었지만 활발하고 긍정적인 성격이 싫지 않았다.




매거진의 이전글 군바리의 식판 #0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