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저녁. 집에서 멀지 않은 산책로에는 항상 많은 사람들이 모여든다. 모인 이유는 각자 다르지만 목적은 대게 비슷하다. 건강을 생각해 운동을 하려는 것. 많은 사람이 모이는 만큼 그 군상 또한 다양하다.
산책로 초입에는 에어로빅 강사의 율동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 그 아래로 마련된 농구장에는 젊은 아이들이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고, 그 옆으로 마련된 체육시설에는 머리가 희끗희끗한 어르신들이 저마다의 운동기구에 몸담고 있다. 나머지 길게 놓인 산책로는 뛰고 걷는 사람들의 몫이다. 그렇게 매일 저녁이면 낡은 하천을 따라 만들어진 오래된 산책로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든다.
내가 산책로를 찾기 시작한 건 불과 1년 전부터였다. 망가져 버릴 대로 망가져버린 몸을 조금이나마 추슬러보려는 심산이었다. 언제 다쳤는지 모르는 허리는 나을 줄 몰랐고, 통증은 날로 심해졌다. 오래된 음주 생활과 불규칙한 식습관은 날 포동포동하게 살찌웠다. 물론 운동 따위는 하지 않았다. 바쁘다는 핑계, 전날 술을 먹었다는 핑계, 갖가지 핑계를 대며 방바닥과 일체가 되기 일쑤였다. 몸이 아픈 건 지극히 당연한 결과였다.
지금처럼 무더운 어느 날이었던 거 같다.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운동을 해야겠다는 막연한 생각에 계획도 없이 산책로로 나갔다. 지금 생각해보면 동물에게 필히 있는 생존본능 같은 게 아니었을까 싶다.
친구와 농구를 하거나 집에 돌아갈 때 산책로를 이용한 적은 종종 있지만 혼자, 그것도 운동을 목적으로 찾은 건 처음이었다. 산책로는 이제껏 느끼지 못한 건강한 에너지로 넘쳐흘렀고, 그 사이에서 나는 갈피를 못 잡고 방황했다. 익숙한 산책로였지만 이날은 유독 낯설기만 했다.
오래 동안 운동을 하지 않은 몸으로 할 수 있는 운동은 많지 않았다. 젊었을 적에는 온갖 운동을 섭렵하고 다녔지만 무려 10년 전 이야기고 이제는 30분도 채 걷기 힘들었다. 혹여 많이 걷는 날이면 다리가 저리기도 했고, 허리를 곧추세울 수 없을 정도로 뻐근했다. 이미 나는 서른보다 마흔이 더 가까운 나이었고, 과거는 그저 아쉬움일 뿐이었다.
이런 내가 할 수 있는 건 달리기 밖에 없어 보였다. 가장 기초적인 운동. 그리고 알았다. 나는 달리기조차 제대로 할 수 없다는 걸.
5분 정도 뛰었을까. 숨을 제대로 쉴 수 없을 정도로 호흡이 가빴고, 허벅지에는 경련이 일었다. 산소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지 팔이 저리기 시작했고, 속은 울렁거렸다. 1킬로도 안 되는 거리였음에도 흡사 마라톤 완주라도 한 것처럼 피로했다. 충격이었다. 내 몸은 생각한 것보다 더 엉망이었다.
멈춰 선 나를 많은 사람들이 스쳐갔다. 하나같이 발걸음이 가벼웠다. 나이가 어리면 어린 대로 많으면 많은 대로 건강한 에너지를 풍겼다. 그들을 보고 있자면 뽈록 배만 나온 내 몸뚱이가 더 비루해 보였다. 평범히 달릴 수 있다는 사실이 부러웠고, 나도 그들처럼 달리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