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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지데이지 May 30. 2019

부끄러움

진솔한, 그래서 고독한 프랑스 작가 아니 에르노


비가 추적추적 오던 어느 봄날, 혜화역 근처의 작은 서점에 갔다. 가는 길은 관광객과 연극 티켓을 파는 사람들로 북적였는데, 지하에 있는 서점으로 내려가자 깔끔한 인테리어와 조용한 분위기가 나를 반겼다. 

소설 쪽 한편에 세워진 <부끄러움>이 눈에 띄었다. 얇고 예쁜 소라 빛 도는 보라색의 책. 이목구비가 또렷한 백인 여인의 흑백 사진에 <부끄러움>이라는 제목이라니. 그 속이 궁금했다. 

우리는 누구나 수치를 느끼는 영역이 있다. 외모, 가정 불화, 사회, 경제적 위치, 종교 등에서 스스로를 남과 비교했을 때 열등하다고 생각하는 영역. 부끄러움은 지극히 사적인 감정이며, 나만 느낀다고 때문에 더욱 끔찍하다.


6월 어느 일요일 정오가 지났을 무렵, 아버지는 어머니를 죽이려고 했다. 


소설의 첫 문장이다. 읽을수록 아니 에르노는 허구적 세계가 아닌 자신의 어릴 적을 회상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아버지가 어머니의 멱살을 잡고 다른 손엔 낫을 들고 부들부들 떨던 오후는 누구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는 (그러나 한 번은 말해야 하는) 그녀의 원체험이다. 


그녀에게 있어 부끄러움은 노동계층 부모와 기독교 사립학교 간의 간극에서 온다. 사립학교의 품위와 완벽함에 그녀의 가족은 어울리지 않는다. 마을 지배계층의 생활방식이 그녀의 가족 몸엔 배어있지 않다. 학교 친구들과 선생님이 집 앞에 서있는데, 어머니가 눈을 비비며 속이 훤히 보이는 티셔츠를 입고 걸어 나온다. 상류층 어머니라면 레이스가 달린 가운을 걸치고 있었을 텐데. 새벽같이 일하러 나가야 하는 어머니에게 가운이란 우스꽝스러운 사치이다. 어머니의 몸이 훤히 비치지만 않았어도 이토록 끔찍한 기억으로 자리 잡진 않을 것을...


<부끄러움>은 아니 에르노 자의식을 형성한 사건들을 검토하기 위해 쓴 회고록이다. 개인의 경험을 낱낱이 검토하는 과정에서 그녀를 둘러싼 당시 시대를 기록해, "사회적 보고서"라는 평판을 받기도 했다. 프랑스 시골마을을 배경에 60년대 언어 때문에 프랑스 독자에게 그 시대의 생활방식을 재발견하는 즐거움을 주지만 한국 독자에겐 시공간의 여행을 하는 듯한 낯선 느낌을 준다. 그러나 유년기부터 쌓인 한 개인의 소외감과 고독은 국적과 언어에 무관하게 누구나 공감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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