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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지데이지 Jan 26. 2020

<방랑자들> 올가 토카르추크

여행과 글쓰기의 연결고리


<방랑자들>은 여행길에 만난 100여 명이 넘는 사람들의 에피소드를 담은 장편소설이다. 공항에서 진행되는 여행 심리학 강의. 쿠바를 여행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대화하는 두 커플. 섬에서 부인과 아이를 잃어버린 남자. 다리를 절단한 뒤 섬망증에 시달리는 해부학자. 처음에는 다양한 스토리가 맥락 없이 나열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런데 계속 읽으며 깨달은   모호함 자체가 작가의 메시지란 사실! 토카르추크는 자신이 심리학자의 길에서 떠나 호텔 청소를 하며 글을 쓰기 시작한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나는 당연함을 모호함으로 만들고, 반박할 수 없는 논거에 끊임없이 의심을 품는 성향을 지니고 있었다. 그것은 일종의 습관, 두뇌의 비뚤어진 요가, 내면의 움직임을 자각하는데서 오는 미묘한 희열 같은 것이었다. 나는 모든 판결을 의심의 눈으로 보고 혀로 직접 맛보면서 궁극적으로 내가 예상한 결론에 이르곤 했다. 진짜는 하나도 없고 죄다 가짜일 뿐이며 복제품에 불과하다는 결론. 나는 일관된 견해를 갖고 싶지 않았다. 그건 그저 불필요한 짐가방이나 마찬가지니까. (28)


그녀는 어떠한 확신도 거부한다. 심리학, 통계학, 신학, 바다의 부표, 위키피디아 등이 측정할 수 없는 것을 측정하려는 인간의 시도라 말하며, 그 결과에 대한 확신은 망상으로 간주한다. 특히 신에 대해 설명하려는 것은 물고기가 물에 대해, 혹은 어류학자에 대해 묘사하려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사람은 측정할  없는 것을 이해하기 위해 무얼   있단 말인가? 그녀가 찾은 방안이 바로 여행과 글쓰기다.


여행의 의미

인간을 설득력 있게 묘사하기 원한다면 우리는 인간을 한 지점에서 다른 지점까지 향하는 움직임 속에서 파악해야 합니다... 여행 심리학의 핵심적인 개념은 바로 욕망입니다. 바로 이 욕망이 인간에게 이동성과 방향성을 부여하고 어디로 향하려는 성향을 일깨웁니다. 욕망 그 자체는 무의미합니다. 그저 방향만을 가리킬 뿐, 목적지를 드러내진 않으니까요. 목적지는 신기루 같은 것이고 불확실한 것입니다. (120)

본문에서 멈춤은 확신의 상징이고, 여행은 불확실함에 대한 인정을 의미한다. 그녀에게 여행이란 “일관된 견해,” “불필요한 짐가방”을 내려놓고 모든 해설의 가능성을 오픈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여행에 있어서 목적지는 예를 들어, 쿠바가 아니라, 쿠바에서 우리가 발견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 신기루 같은 목적지를 향해 끊임없이 도전할 때, 우리는 비로소 진실에 가까이 갈 수 있다.  이것이 또한 그녀의 글쓰기의 본질이다. 그녀는 소설 쓰기를 학문적 글쓰기와 다음과 같이 비교했다.  


글쓰기의 의미

... 그저 단순한 강의록의 형태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 그러면 나는 텍스트를 마음대로 지배하는 주인이 될 수 있을 것이고, 텍스트에 필요한 단어 하나하나를 매우 성실하게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나는 텍스트의 주인이 되는 대신 씨앗을 파종하는 게 주된 업무이고, 그러다 시간이 좀 지나면 잡초와 지루한 싸움이나 벌이는 정원사 혹은 산파의 역할을 수행하는 중이다. 이야기에는 완벽한 통제가 도저히 불가능한, 고유의 타성이 내재되어 있다. (323)

그녀는 알 수 없는 곳으로 여행하듯이 결론을 내지 않고 글을 쓰는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다양한 에피소드를 앞뒤로 배열해 놓고, 어떠한 연결고리가 수면으로 떠오르길 기대한다. 물이 요동쳐 흐릿하게 보일지라도 괜찮다. 포기하지 않고, 정착하지 않고, 계속 여행하는 것이 유의미하니까. 여행과 소설쓰기는 작가가 실천하고 있는, 독자에게 추천하는 삶의 방식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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