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여름휴가. 반짝이는 바다. 뜨거운 태양. 모래사장에 서 있자니 발이 달구어진다. 시원하게 물놀이를 즐기고 썬베드에 누워 모히또를 한 잔 마시며 최대한 휴가를 만끽하는데, 옆에서 아까부터 계속 책을 읽는 사람이 눈에 거슬린다. 진지한 눈매. 굳게 닫힌 입. 왜 여기까지 와서 책을 읽는 거야? 보여주기인가?
독서는 대게 어떠한 우아한 취미로 여겨진다. 그래서 책을 읽으면 주변 사람들에게 동경받거나 놀림을 당한다. 물론 독서를 여가활동 중의 하나로 즐기는 사람도 있지만, 누군가의 삶에선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열심히 일한 누군가에게 휴가가 절실히 필요하듯, 누군가에겐 열심히 일하고 휴가 가는 삶으로부터 분출구가 필요하다. 이들은 의미에 대한 갈망 때문에 책을 읽는다.
나는 누구인가? 어떻게 살아야 할까? 유한한 삶에 의미가 있을까? 이런 질문들은 한 번 생기면 어딜 가질 않고 먹구름이 되어 머리 위를 맴돈다. 차라리 비가 확 내리고 말았으면 하는 답답한 마음이다. 정답을 제시하는 책이 있을까? 그 책은 종교의 영역에 꽂아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종교로 가서 비가 내리고 무지개를 봤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비종교적) 책의 역할은 무엇일까?
1. 이해
죽음 뒤의 일은 알 수 없지만, 삶에 대해선 더 알 수 있다. 여러 인물이 겪는 사건과 감정을 통해 인간의 모든 가능성을, 곧 나를 이해할 수 있다. 나는 분당 중산층 가정의 “공부 잘하는 착한” 둘째 딸이지만, 프라하에 사는 남의사가 되어 한 여자를 사랑하면서 다른 여자를 탐하고, 그 바쁜 와중 공산주의 사회가 민주화되는 숨 막히는 과정을 경험했다. 성폭행을 당한 여자가 손에서 전기를 쏘는 판타지 세상에 가서 사람의 악함과 약자로써 겪는 공포와 분노도 가늠해보았다. 인물들이 나에 대해 무엇을 말해주는가? 책을 많이 읽을수록 혼란스럽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좋은 집안”에 시집가서 “잘” 살라고? 그것보다 좋은 답이 있을 것 같다. 책을 읽고 나 자신과 세상을 더 알게 될수록 좋은 답을 찾게 된다.
2. 위로
우리는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의 소용돌이에 휩쓸릴 때가 있다. 누구에게 설명한 번 해본 적 없이 눌러놓고 지나치기 일수일 것이다. 그때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하는 인물을 목격한다. 러시아 소녀 캐챠 같은 타인이 내 속을 들여다본 듯 내 상황과 감정을 유창하게 기록하는 걸 한 자 한 자 읽으면 나만 겪은 일이 아니구나. 내 감정이 틀린 것이 아니구나 위로를 받는다.
독서는 보여주기 식이 아닐 경우가 많다. 목이 마를 땐 물 (또는 모히또)을 마시고, 일을 많이 한 후엔 쉬어야 하듯, 삶에 대해 이해하고 감정을 공감받아야 할 필요에 의해서 인간은 오늘도 해변가에서까지 책을 집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