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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은호수 Jan 23. 2023

엄마와 매주 약속을 한다면

엄마를 과외하다

엄마가 경도인지장애 진단을 받은 뒤로 나는 주 1~2회 엄마를 만난다. 경도인지장애는 치매는 아니지만 치매위험군이다. 65세 이상의 노인에서 경도인지장애는 10~20%의 유병율을 보인다. 인지장애라니....


노인이 된다는 것은 많은 것이 느려지고, 기능이 떨어지는 것을 감당해야 한다. 관절이 닳아 무릎이 아파 오래 걷지 못하거나, 디스크 탈출로 인해 허리통증을 겪거나, 청력이 나빠지기도 하고, 시력은 흔히 나빠진다. 간염이나 위염, 호르몬장애, 고혈압, 고지혈증 등 온갖 병명이 따른다. 이 모든 노화로 인한 질병들은 서글프기는 하지만 손쉽게 오래 썼으니 고장 나는 게  당연하게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치매는 다르다. 치매는 암선고보다도 무섭다. 암선고는 치료가 가능합니까?라는 질문을 부르고, 불가능하다 해도 남은 시간은 어느 정도입니까?라는 질문이 뒤따른다. 치료를 통해 완치를 꿈꾸거나, 설혹 희망이 없더라도 남은 시간만이라도 의미 있게 보내고 싶은 소망을 품을 수 있다. 하지만 치매는, 현대 의학에서 치료가 불가능한 병으로 알려져 있다. 게다가 몸은 건강한데 정신이 온전치 못한 상태로 10년이고 20년이고 자식들에게 짐이 된다는 생각은 우리 부모님들에게 최대의 공포이다. 


경도인지장애는 치매 위험군이지만 치매와는 다르다. 

그럼에도 다른 질병들과 다른 점, 그리고 치매와 비슷한 점은 '장애'라는 점이다. 보통 노환으로 인한 질병들을 무슨무슨 ~증이나 그 병 이름 자체인데, 경도 인지 장애는 장애가 붙는다. 장애는 영구적인 손상이다. 다시는 회복할 수 없다는 뜻이다. 고혈압이 있다, 당뇨가 있다 이런 질병은 약을 먹거나 식생활 개선과 생활습관 개선을 통해 수치가 정상으로 돌아올 수도 있다. 많은 질병들은 일시적인 것임을 내포하며, 이는 잘~하면 치료가 가능하다는 희망이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치매는 현재로선 치료법이 없다. 경도인지장애 역시 치료가 없다. 고장 난 기관이 뇌이기 때문이다. 우리 몸에는 한번 손상을 입으면 새롭게 갈아 끼지 않는 한 치료가 안 되는 기관들이 꽤 있다. 하지만 장기이식조차 할 수 없는 뇌는 어쩌면 생명 그 자체로 여겨지기도 한다. 뇌사자의 장기를 꺼내어 다른 사람에게 주기는 하지만 심장이 멈춰 죽은 사람의 뇌를 꺼내어 뇌사자에게 이식하는 경우는 없다. 만약 영화에서라도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이식받은 사람은 과연 뇌의 주인인가 신체의 주인인가? 나는 뇌의 주인이 바로 신체의 주인이 될 것 같다. 


슬픈 일이었다. 그리고 무서운 일이었다. 일반 고령자에게서 치매의 유병율은 1%지만 경도인지장애환자에게서 치매의 유병율은 10%란다. 첫 경도인지장애 진단을 받은 뒤 5년이 지나면 30% 이상의 환자들은 치매로 넘어간다고 한다. 우리 엄마는 나머지 70%에 들기를. 그 이후 5년 뒤에는 그 나머지 70% 에 들기를. 하다못해 치매로 넘어간다고 해도 경증의 치매가 전체 치매환자의 60%에 속한다는데, 이 비율 안에 들기를 기대하고 기도한다. 


경도인지장애는 초기치매와 매우 양상이 비슷하기 때문에 사실 구별이 잘 되지 않는다고 한다. 경험상 이런 식의 어떤 증세의 심함과 가벼움의 어느 선에서 인위적으로 기준으로 잡아 여기까지는 정상, 여기까지는 비정상, 여기까지는 치매, 여기까지는 경도인지장애라고 구별하는 질병들은 결국 그 원인과 치료법을 알 수 없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코로나테스트처럼 검체를 떨어뜨리고 기다리면 딱 무엇이다라고 나오고, 그 바이러스를 없애는 약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자폐에 치료법이 없고, 정신지체에 어떤 치료법이 없이 끝없는 교육과 훈련을 통해 최대한 일상생활을 하게끔 만드는 것이 최선이듯이, 이 인지장애는 그냥 인지기능이 정상보다 빠른 속도로 노화하고 있으므로 그 속도를 늦춰주기 위한 노력이 최선이다. 방법은 끝없는 교육과 훈련일 것이다.


아직은 한국사회 내에서 치매환자에 대한 인지훈련, 경도인지장애환자에 대한 전문적인 인지훈련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 재활의학과 내에 물리치료실, 언어치료실, 작업치료실 등에서 아마도 다루기는 할 터인데, 뇌졸중 같은 돌발성 이벤트나 혈관성 문제로 비롯된 급성 실어증 같은 경우에는 언어치료를 하지만 실어증 감별진단을 통해서 치매는 감별해 내고 우선적인 치료대상으로 잡지 않는다. 왜냐하면 치료를 해봤자 회복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청각장애 환자에게 보청기나 인공와우 수술 없이는 듣기 훈련을 계속 시키지 않는 것과 같은 원리이다. 


게다가 대부분의 환자들은 고령이고, 당장의 언어나 인지 보다는 몸을 쓰는 것이 더 중요하고, 다른 질병들을 다루는 것이 더 중요하니 언어는 뒷전으로 밀리는 것이 당연했다. 하지만 내가 언어치료를 공부한 지도 벌써 20년이 되어가고 그때 내가 배운 내용들은 아마도 그보다 더 이전의 내용 들이었을 테니 현재의 상황과는 많이 달라져야 할 것이다. 당장 의학의 발달로 신체는 멀쩡한데 뇌기능이 점차 떨어지면서 나타나는 이 경도인지장애환자가 엄청나게 늘어나고 있다. 이들을 고령이라고 포기해 버리기에는 아직도 이들이 살아야 할 날들이 너무 길다(최소 20년 이상일 것이다). 


엄마가 다니는 병원은 일종의 노인전문병원이었는데, 이미 신경과 내에 언어치료실은 입원환자들을 치료하는데 모든 스케줄이 꽉꽉 차 있어서 엄마가 어떤 서비스를 받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대신 의사 선생님이 자신의 팀에서 만든 인지훈련프로그램책자를 소개해주고 집에서 가족과 함께 해보라고 권해주셨다.


주문해서 보니 내가 공부했던 실어증의 언어치료방법이나 정신지체아동들을 대상으로 한 언어치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언어치료나 인지치료와 같은 기능에 대한 치료들은 원인을 다루는 치료가 아니라 그 증상을 호전시키는데 그 목표가 있는 치료이니 교육과 훈련이 주된 방법이고, 사실 그것은 아이나 어른이나, 그 병명이 무엇이냐에 따라 다를 것이 없다. 


마침 나는 석사논문으로 보호자중재를 통한 실어증환자의 언어치료효과에 대한 치료논문을 썼었다. 문제는 그게 20년 전이었다는 거지만...


성인환자를 본 것은 그때일 뿐 그 이후에는 아동들에 대한 언어치료가 대부분의 경력이었던 언어치료사였지만 그래도 엄마인데 명색이 언어치료사인 내가 모른 척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래서 나는 엄마를 과외하기 시작했다. 아니 홈티라고 해야 할까?


주 2회 시간을 정해두고 엄마를 만나 언어치료 혹은 인지치료라고 할 만한 것들을 했다.

주 교재는 의사 선생님이 권해주신 인지중재프로그램이었지만, 내 직업도 직업인지라 재활치료실에서 근무하는 선후배언어치료사들을 통해 재활치료실에서 사용하는 교재들도 받아 같이 섞어서 진행했다.


하지만 경도인지장애 중에서도 그리 심하지 않은 편이었던 엄마에게는 그 모든 과제들이 초등학생 장난처럼 여겨지셨던 것 같았다.

문제는 그런 과제들을 쉽게 할 것 같으셔도 막상 해보면 실수가 나오고, 잘 안될 때가 많은데, 그럴 때마다 엄마는 필요이상으로 좌절하셨다.

실어증환자들을 치료하다 보면 비슷한 경우가 많아서 쉽게 이해할 수 있고 예상 가능한 반응이었다. 머릿속으로는 다 알고 쉽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막상 말을 하려고 하면 입술에 본드를 붙인 듯 말이 잘 나오지 않는 분들이 특히 화를 많이 내셨다. 

엄마의 경우는 말이 안 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분명히 이 정도는 쉽게 할 수 있는데, 이 문제가 전혀 어려운 문제가 아닌데 금방 풀 수 있을 것 같은데 하는 그 느낌과 실제 수행을 하면 잘 되지 않는 자신의 상태에서 오는 부조화가 괴로움의 근원이었다.  


경도인지장애는 뇌의 기능이 다양한 만큼 다양한 양상을 보인다고 한다. 어떤 사람은 기억력이 특히 떨어지고, 어떤 사람은 논리력, 어떤 사람은 단어생각이 그렇게 안 나고, 시각적 기억력이나 공간지각력 등 다양한 영역 들 중에서 특정 영역이 나이에 따른 규준에 비교할 때 정상에서 크게 벗어나면 경도인지장애 진단을 내린다. 경도인지장애보다 심각하면 중도인지장애일까? 아니면 경도인지장애 다음은 바로 치매일까? 일련의 과정을 지켜보니 이것이든 저것이든 거기에 대해 의학적으로 할 수 있는 대응법은 비슷한 것 같았다. 뇌혈류를 도와주는 글리아타민을 처방하고 또한 치매를 늦추는 것으로 현재까지 밝혀진 약들을 처방하는 것. 엄마의 경우는 노인성우울증이나 불면증 역시 영향을 미칠 수 있기에 관련된 약도 처방을 받는다.


그래서 엄마와 치료라는 것을 진행할 때마다 과연 이 행위가 도움이 될까 처음에는 의심이 되었다. 물론 언어치료의 효과에 대해서는 치료사로서 잘 알고 있지만, 노인의 인지장애치료, 언어치료는 해 본 적도 없고, 그 효과에 대해서도 진행을 늦출 뿐 호전이라는 것이 없는데, 과제를 할 때마다 너무 쉬워서 너무 잘해도 내가 왜 이런 짓을 하고 있나 생각을 하게 되고, 조금 난이도를 올려서 맞고 틀리고 할 때는 그 틀렸을 때 좌절감이 바로 우울감으로 이어지는데 이것이 미치는 악영향이 치료의 효과보다 더 크지 않을까, 이런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 차라리 같이 산책이라도 하면서 걷기 운동을 하는 것이 더 효과가 좋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엄마, 엄마만 그런 게 아니라 병원재활의학과 언어치료실에서 실어증어르신들 오시면 그게 제일 힘들어. 내가 초등학생도 아닌데 왜 이런 유치한 거 자꾸 시키냐고 막 화내고 소리 지르는 할아버지들 정말 많아. 정작 문제내면 못 푸는데 그럼 더 화내신다니까. 어떤 분들은 멋쩍어하면서 웃고 말기도 하시고. 어떤 분들은 기분 나쁘다고 치료 안 받겠다고 안 오시기도 하고, 보호자가 왔다 갔다 힘들다고 안 오시기도 하고. 애들은 아무리 힘들어도 엄마들이 언어치료 꼬박꼬박 오시는데 말이야"


"나 같아도 그러겠다. 내가 너니까 하는 거지. 네가 이렇게 없는 시간 쪼개서 나 가르친다고 애쓰는데 엄마가 돼가지고 하기 싫다고 기분 나쁘다고 안 하면 쓰겄냐. 너랑 얘기하고 그러려고 하는 거지"


그렇다. 엄마도 많이 기분 나쁘고 힘드시고, 하기 싫었지만 딸인 나와 만나고 대화하고 그냥 내가 애쓰는 게 안쓰러워서 하시는 거였다. 나는 엄마를 위해서 내가 시간과 노력을 들이고 뭔가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사실은 엄마는 나를 위해서 참고 계신 거였다. 딸인 나와 시간을 보내는 게 그저 좋으셔서, 내가 애쓰는 게 소용없다고 말씀하기 싫으셔서, 과제는 기분 나쁘지만 딸인 나와 같이 얘기하는 게 좋으셔서 그 주제가 뭐가 됐든 얼마나 기분이 나쁘든 그런 거 상관없이 그냥 하는 거셨다. 


그렇게 나는 일주일에 두 번 엄마를 과외한다. 엄마는 딸과 2시간 올곧이 대화를 나누는 게 좋으셔서. 나는 딴에는 뭐라도 엄마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서. 그렇게 나는 또 엄마에게 더 큰 사랑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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