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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은호수 Jan 21. 2021

너의 욕망, 나의 욕망

무개념과 개념의 한 끗 차이

 내 몸을 새로운 생명과 공유하고, 세상에 태어난 나의 분신과 애착을 형성하는 과정은 너(아기)의 욕망이 곧 나(엄마)의 욕망이 되는 과정이었다. 내가 자고 싶어도 너가 먹고 싶으면 나는 너를 먹여야 했고, 그렇게 너의 욕망을 나의 욕망에 앞서서 채워주는 것이 내 마음을 편하게 하였다. 신생아의 욕망이라고 해봐야, 먹고, 싸고, 자고, 안기고, 이런 기본적인 욕구가 대부분이었기에 엄마로서 나의 욕망 역시 단순해졌다. 아기가 잘 먹고 잘 자면, 나도 잘 먹고 잘 잔 것 같았을 뿐 아니라, 실제로 애가 잘 먹고 잘 자야 나에게도 먹고 자고 할 수 있는 시간이 생겼다.


 100일의 기적이라는 말들을 한다. 하루 24시간을 균일하게 2-3시간으로 나누어 먹고, 자고, 싸던 아이가 낮과 밤이 생겨서 밤 시간에 깨지 않고 8시간 이상 통잠을 자는 기적을 말한다. 두 아이를 키우면서 나는 한 번도 경험해본 적이 없는, 인터넷에서만 보이는 엄친아, 엄친딸들만이 보이는 기적이다.


 그렇지만 나의 아이들도 100일의 기적은 아닐지라도, 통잠에 있어서 1000일의 기적쯤은 보여주었다. 또한, 잠자는 것만 빼놓고는 아이들은 매일매일 기적처럼 자라났다. 목을 가누고, 기고, 앉고, 서고, 걷고, 말을 배우고, 사람을 알아보고, 몸도 커졌다. 뒤늦게 되돌아보면 아이들은 하루하루가 기적처럼  자란다.


100일의 기적은 아이에게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나에게도 일어난다. 나는 원래 잠귀가 밝고 예민한 편으로 자다가 쉽게 깨고, 한번 깨면 좀처럼 다시 잠들지 못했다. 하지만 하도 잠을 못 자다 보니 애가 울어도 잠이 완전히 깨지지가 않았다. 반쯤 자는 상태로 젖을 먹이고, 아이가 잠들자마자 내가 다시 잠드는 데에는 채 5분도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이걸 밤새 10번쯤 반복할 수 있게 되었다.


화장실 갈 때는 문을 꼭 잠그고 옷 갈아입을 때도 문을 잠그는 나였지만, 아기와 함께 100일쯤 살다 보니 화장실 문은 열려있는 것이 기본이었고 옷은 반쯤 벗고 지냈다.


 30년 가까이 살면서 익혀왔던 문명인의 모습은 기억 저너머에 있을 뿐, 나에게도 오직 생존을 위한 욕구 충족이 우선순위가 되어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아이의 욕망이 곧 나의 욕망이 되는 심리상태는 사실상 두 존재가 공존하기 위해서는 필수불가결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100일쯤이 바로 그것이 이루어지는 시기가 아닐까. 인간이며 동물인, 아니면 인간도 동물도 아닌 어머니라는 무성화된 존재가 되는 기적.


 아기의 욕망과 나의 욕망이 일치하는 기적이 일어난 뒤에 나는 문명화된 나의 판단력을 곧잘 잃곤 했다. 아기가 8개월쯤 되었을 때였다. 하루는 아기띠를 하고 은행에 갔다. 서류를 작성하려고 보니 앞쪽에 매달려있는 아기가 불편하기도 하고 어깨도 아파서 아기를 내려놓고 싶었다. 혼자 앉을 수 있는 아기지만 의자에 혼자 앉혀두고 서류를 작성할 수는 없었기에 서류를 작성하는 테이블 위에 아기를 앉혀두고 서둘러 양식을 채워나갔다.


 그때 같이 계시던 친정어머니께서 아기를 들어 안으며 말씀하셨다.

“니 눈에는 니 아기가 이쁘고 귀하겠지만, 남들 눈에는 그렇지가 않은 법이다. 네가 우리 집에서 애를 데리고 무슨 짓을 하든 내 눈에는 제일 이쁘고 귀한 손주이니 상관없지만 남들 앞에서는 그러면 안된다. 더 조심해야지. 귀한 손주 욕 먹일 짓을 할 수는 없다”


 그깟 서류 작성하는데 몇 분이나 걸린다고 유난스럽게 혼내시는 엄마가 좀 서운하기도 하면서 민망함에 얼굴이 훅 달아올랐다. 나중에 따로 조용히 얘기해도 될 것을 꼭 이렇게 무안을 줘야겠어? 하는 마음도 들었다. 하지만 어머니 말씀에는 반박할 여지가 전혀 없었다.


식당에 가서 밥을 먹을 때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아기가 테이블 위에 높인 수저통 뚜껑을 열고 손으로 수저통 속을 휘저으려 할 때였다. 그 때도 역시 베테랑 친정어머니의 지적이 이어졌다.


“남들 먹는 숟가락 애기가 다 손 대면 누가 좋다고 하겠니? 얼른 못하게 해라”


 그저 음식이 나오기 전까지 아이가 울거나 떼쓰지 않고 잘 놀았으면 하는 마음만 가득해 있던 나는 아이가 수저통을 장난감 삼으려 한다는 것조차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채 그저 잘 놀고 있구나 하고 있었던 순간이었다.


 맘충이라는 혐오의 언어를 싫어하지만, 나도 모르게 미성숙한 엄마로서 잘못된 행동들을 했던 그때를 떠올리면 아직도 뺨 뒤쪽이 화끈해진다.


 ‘너무 힘들어서 그래’라는 말로서도 잘 이해되지 않는 무개념의 행동들. 다행히 친정어머니께서 몇 번이나 옆에서 지적을 해주셨기에 망정이지, 나도 모르게 무개념스러운 행동들을 많이 했을 것 같다.


 아가씨 때에는, 아니 아이를 동반하지 않을 때에는 누구보다도 예의 바른 성인이 왜 아기를 동반할 때는 때때로 무개념스러운 행동을 하게 될까?


아이의 욕망이 바로 나의 욕망이 되는 것에 익숙해진 때문이 아닐까. 다른 무엇보다도 이 아이의 욕망을 채워줘야 한다는 것이 나의 욕망이 되는 순간, 예의나 눈치, 다른 사람의 이목이 중요하지 않게 느껴지면서 잘못된 판단을 내리게 된다.


 아이를 키우는 일은 이 욕망덩어리 아이에게 욕망을 통제하고 사회적 규범에 따라 행동하게끔 가르치는 일임을 누구나 안다. 하지만 육아 초기에 특히 신생아기의 잠 안 재우기 고문을 비롯해 각종 비위 맞추기 미션으로 인해 신체적인 한계상황까지 내몰리게 되면, ‘가르치기는 뭘 가르쳐 일단 이 아기의 비위를 맞추자’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엄마가 아이를 사회화시켜야 하는데, 주객이 전도되어 아이의 욕망이 사회화된 엄마를 이기는 상황이다.


그래서 소위 무개념이라 욕먹는 엄마들에게 조금은 더 따뜻한 시선을 보내고 싶다. 그들이 잘했다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처한 상황이 이해가 가기 때문이다. 친정어머니께서 나에게 하셨듯이,  뒤에서 욕하기보다는 넌지시 일러주고 싶다(물론 나의 친정어머니께서는 넌지시 일러주시기보다는 돌직구를 날리셨다). 아이가 없을 때 어떻게 행동했겠는가를 생각하면 늘 답은 나온다. 아이가 없을 때 행동하고 판단하던 기준이 옳다. 물론 아이가 있든 없든 진상을 피우 사람에게는 해당하지 않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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