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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은호수 Jan 28. 2021

우물

- 나의 엄마이야기 1






 보통 외가집이라하면 엄마의 친정집, 즉 외할머니가 사시는 집을 말한다. 나는 외갓집에 대한 기억이 거의 없다. 어렸을 때 엄마는 시댁, 즉 나의 친가를 다니시느라 명절에도 거의 아이들을 데리고 친정에 가시질 않았다. 외할머니는 전주에 사시는 외삼촌네 집과 전주에서 한시간 남짓 더 내려가야하는 도산이라는 곳의 시골집을 오가며 지내셨다. 외삼촌네 집은 엄마가 가기 불편해하셨고, 도산의 시골집은 나의 친오빠가 아주 어렸을 때는 다니셨던 것 같은데 나도 가보았는지는 불확실하다. 내가 기억하기에 어려운 어린 나이에 다닌 탓도 있고, 엄마가 해주신 이야기나 사진을 통해 주입된 기억이 내 기억인지, 그냥 듣고서 내 기억이겠거니 한 것인지 알 수 없는 탓도 있다. 그럼에도 나는 전주의 아파트에 있었던 외삼촌네 집보다는 도산의 시골집이 내 외갓집같다.


 내 기억 속의 외갓집은 조용한 농촌마을이었다. 덜컹거리는 국도를 따라 어느정도 가다보면 끝도없이 펼쳐진 평야에 반듯반듯한 논이 있었다.  내 기억의 논은 벼이삭이 영글어 누렇게 변하고 고개를 숙인 모습이었다. 바람이 불면 다함께 쓰러질듯 흔들리며 촤르르하고 이삭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엄마는 그 모습을 보며,

“나는 벼 익은 논이 그렇게 예쁘더라. 한창 잘 익었을 때는 꽃밭보다도 더 예뻐” 

라고 하셨다.

 그 때부터 내 기억 속의 외갓집은 그렇게 황금빛 들녘을 가진 평화로운 시골마을이었고, 가을들녘의 논은 봄의 화려한 꽃밭보다도 아름다운 것이 되었다. 

 

 도산은 어린 나에게도 무척 작은 곳이었다. 아마도 외할머니의 집이 도산에 있었다는 것이지 내가 기억하는 마을의 원래 이름은 다른 것이었으리라. 할머니가 사는 마을은 아주 작은 곳이어서 차로 한 십여분만 돌아도 다 돌아볼 수 있을정도였다. 엄마는 마을입구에서부터


 “여기 있는 땅들도 다 원래 너네 할머니네 꺼였어. 지금은 다 팔거나 갖고있는 땅도 다 소작주시는데, 제대로 지대나 받으시는 줄 몰라” 라고 하셨다.


 아닌게 아니라 동네어귀에만 들어가도 사람들이 다 엄마를 알아보고 


 “정희 딸 왔구나”하면서 아는 체를 하셨다.(정희는 할머니 이름이다. 옛날 이름치고 참으로 세련되지않았는가!) 


 엄마에게 저런 얘기를 들어서 인지 사람들이 엄마를 마치 “아가씨”라고 부르는 것만 같고, 왠지 지주 대접을 받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엄마는 평소에 옷이나 세간살이가 낡거나 질려서 버려야할 때가 되면 버리지 않고 잘 모아두셨다. 우리에겐 필요없지만 도산 할머니께 가져다 드리면 할머니가 집에서도 쓰고 동네에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눠준다고 하셨다. 이 사람들이 그 모아두었던 물건들을 받는 사람들이로구나 하고 생각했었던 것같다.


 할머니집은 다른 집들에 비해 크고 좋았다. 마을의 가장 안쪽이면서도 중앙쪽에 자리잡고 있었고, 담장이 있는듯 없는듯 얕으막했다. 대문을 들어서면 오른쪽에 외양간부터 사랑채, 안채가 차례로 있었고 한쪽에는 공포의 화장실도 있었다. 외양간에 소가 있는 것은 본 적이 없었다. 옛날에는 소를 길렀지만 직접 농사를 짓지 않으시면서부터는 소가 없었다. 외양간에는 지푸라기가 잔뜩 쌓여있었고, 저녁이 되면 달려드는 모기를 내쫓기 위해 그 지푸라기들을 모아 모깃불을 만들어 태웠다.


 마당 한 가운데는 우물이 있었는데 이미 물이 마른지 오래라 막아두었다. 엄마는 그 우물이 기억이 난다고 하셨다.

“내가 1살도 되기전이었을거야. 말도 못하고 아기봐주는 언니한테 업혀있을 때니까. 언니 등뒤에 업혀있으면 언니가 두레박으로 이 우물에서 물을 퍼 올렸거든. 등 뒤에서 보면 우물 속이 훤히 보이는데 너무 시커멓고 깊고 물이 출렁출렁 하는 것이 무서운거야. 그런데 두레박을 끌어올리느라 언니가 몸을 숙일 때마다 내가 포대기에서 쑥 빠져나와 그만 저 우물 속에 풍덩 빠져버릴 것같은거야. 그게 얼마나 무서운지 안 보고 싶은데 언니한테 말도 못하고 그저 등 뒤에서 언니가 물 길어올릴때마다 벌벌 떨면서 무서워했던 게 아직도 기억에 생생해. 그렇게 어린 아기였는데 어쩜 얼마나 무서웠으면 그걸 기억할까”


우물 속


 라고 하셨다. 아직도 그 생각을 하면 등골이 오싹할 정도로 그때의 무서웠던 기분이 생생하다고 하셨다. 

 

 나는 마치 내가 그 아기였고 우물에 빠질 것만같은 그 무서웠던 기억이 내 기억인 것만같다. 엄마가 들려주는 이야기의 힘이 이런걸까? 내 자신 스스로의 어렸을때 기억은 별로 특별한 게 없지만, 엄마의 이 이야기는 묘한 공감이 있었다. 그 우물을 직접 봤기 때문일까? 솔직히 외갓집에 진짜 그 우물이 있었는지, 막혀있었는지, 그냥 흔적만 있었던 것은 아닌지 분명하지않다. 엄마의 이야기 속에 마당에 우물이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기억이 남은 것도 같다. 하지만 그 이야기만은 마치 내가 겪은 듯 또렷하게 기억에 남는다. 


 등에 업힌 아기, 그리고 몸을 숙일 때마다 깊은 우물 속으로 빠져버릴 것같은 그 아슬한 느낌. 나는 내 아이를 낳고 업고 기르면서 아기를 업을 때마다 이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 아슬아슬한 느낌과 함께. 그렇게 엄마의 불안은 이야기를 통해 나에게도 전해졌다. 


 엄마의 이야기는 잊혀지지가 않는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존재, 절대적인 존재가 들려준 이야기이기 때문일까. 어린 시절 엄마에게 들었던 이야기는 너무나 생생해서 영화를 보거나 내가 직접 그 일을 겪은 듯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 감정. 엄마가 겪었던 사건 속에서 엄마가 느꼈던 그 감정 역시 고스란히 느껴졌다. 세대를 걸쳐 내려가는 감정의 유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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