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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은호수 Mar 30. 2021

슬기로운 봉쇄 생활

집밥, 홈베이킹, 뜨개질

전세계적인 재앙인 코로나 사태에서 우리집 역시 온 가족이 봉쇄를 경험해야 했다. 남편은 재택근무를 몇 달씩 이어갔고, 아이들은 학교에 가지 못하고 집에서 하루 종일을 보내야 했다. 그리고 나는 돌밥돌밥의 가정주부의 생활이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의욕을 가지고 봉쇄 생활에 임했다. 하루 세끼를 다 차리는 것이 힘들기는 했지만, 식탁에 남편이 늘 같이 있다는 것은 특별한 경험이었다. 특히 아이들에게는 아빠와 같이 매일 점심을 먹는 경험이 평생 지금 아니면 또 있을까 싶었기 때문에 세끼 밥 중에 점심을 가장 정성 들여 차렸다. 



명절도 아닌데 온 가족이 둘러앉아 만두를 빚어 먹기도 했다. 



나중에는 빵을 만들기 시작했다.

빵을 만들기 시작한 이유는 순전히 실용적인 의도였는데, 빵을 사러 마트에 자주 갈 수가 없어서였다. 봉쇄가 시작된 이후 마트는 사람이 가장 붐비는 장소였기에 가장 절실하면서도 피하고 싶은 장소였다. 빵을 한 번에 많이 사놓자니 3일 정도 지나면 금세 곰팡이가 피어 냉동을 하거나 냉장보관을 해야 했다. 그런데 냉동실에 보관하기에는 부피가 너무 크고 냉장보관 빵은 진짜 너무 맛이 없었다.

그래서 빵을 만들어 먹기로 했다. 영국 사람들도 나와 같은 이유로 베이킹 붐이 일었다. 그들은 빵이 주식이니 우리보다 더 절실했을 것이다. 


그러자 마트에 밀가루가 동이 났다.



당시 가장 사기 힘든 두 가지가 밀가루와 달걀이었는데, 달걀은 인당 1개 구매로 한정하자 상황이 좀 나아졌지만 밀가루는 한 달이 넘도록 구경도 할 수 없었다. 


다들 빵 만들어 먹느라 그런가 싶었는데, 신문에 관련 기사가 났다. 밀가루 생산량은 전혀 부족하지 않은데, 포장용지와 인력이 부족한 게 원인이라는 것이다. 원래 밀가루는 1kg 단위의 작은 포장의 비중은 높지 않고, 쌀 한 포대 수준의 대용량 포장이 수요가 많다. 빵집이나, 식당으로 공급되는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식당과 빵집이 다 봉쇄로 문을 닫았으니 큰 포대는 안 팔리고 소포장은 모자라는데 갑자기 그 시스템을 바꾸는 게 어려웠던 것이다.


기사를 보고 든 생각은 아, 그렇다면 식당용 대용량 밀가루는 팔겠네? 싶어서 아마존을 검색해보니 정말 있었다.


도착한 밀가루 포대를 보니 생각보다 정말 컸다. 빵이라도 만들어 먹지 않으면 몇 년이 지나도 다 못 쓸 것 같았다. 

그래서 빵을 구웠다.



새로운 걸 하니 재미도 있었다. 은근 시간도 많이 걸리는 일이라 한동안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빵을 구웠다. 하지만 이것도 곧 싫증이 났다.


그래서 다음에는 뜨개질을 했다. 뜨개실을 파는 샵이 다 문을 닫았기에 아마존을 통해 구입하려 하니 

세상에, 뜨개실도 다 품절이었다. 

실이 없어서 큰 작품은 할 수가 없었고, 적은 양으로 시간이 오래 걸리는 도일리 뜨기를 했다.


그런데 이걸 떠도 쓸모가 없었다. 예쁘긴 한데 한 두 개면 모를까 집안 여기저기에 둘 데도 없고 해서 친구들에게 나눠줬다.


소소한 모임들이 사라지고 장보기도 1-2주에 한 번으로 줄어들자 시간이 남았다. 아이들은 제법 제 할 일을 알아서 할 줄 알았고, 온 식구가 집에 있어 가사가 늘기도 했지만 늘어난 여유시간을 다 채울 만큼은 아니었다. 외출하지 않기에 세탁, 옷 정리 시간이 줄었고, 외모를 꾸미는 데 들이는 시간도 줄었다. 사회적 접촉 자체가 없었기에 불필요한 갈등이 생길 일도 없었고 감정 소모도 줄어들자 그만큼 에너지도 남았다. 


물론 봉쇄 생활에서 오는 스트레스와 코로나가 주는 불안함과 우울함은 관리가 필요했기에 두 가지 활동에 집중했다. 첫째는 운동, 둘째는 책 읽기였다. 


그리고 이 두 가지가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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