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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은호수 Apr 05. 2021

무력감을 떨쳐내는 첫 단추- 달리기

새롭게 배운 것 1. 달리기

가정주부의 삶은 육체노동과 감정노동의 혼합이다. 특히 육아는 신생아기에는 90% 이상의 육체노동이었다가 아이가 자람에 따라 점차 육체노동의 비중이 줄어들고 감정노동의 비중이 높아가는 과정이다. 신생아를 키우는 엄마가 학교 다니는 아이의 엄마를 부러워하고, 초등학교 아이 엄마는 제 할 일을 알아서 하는 중고등학생 엄마를 부러워하지만, 정작 중고등학생의 엄마는 신생아를 키우는 젊은 엄마를 보면서 “좋을 때다”라며 부러워하는 아이러니가 생기는 이유이다.


적당한 육체노동과 적당한 정신노동의 조화는 삶에 안정과 만족을 주지만 어느 한쪽으로의 쏠림은 스트레스를 준다. 가사노동은 대체로 육체노동에 속하지만, 그 단순하고 반복적인 특성과 성과가 쌓이지 않고 소모적인 특성 때문에 쉽게 좌절감을 준다. 그래서 또한 감정노동이다. 그 좌절감을 이기고 계속해서 해야 하니까.

 

아이가 어릴수록 육체노동의 비중이 높다. 육아에서나 가사노동에서나 있는 체력, 없는 체력 다 짜내어서 하루하루를 견디다 보면 어느새 저질체력이란 말이 너무 친숙한 상태가 된다. 그래서 가정주부에게 무력감은 늘 상존한다. 아이가 어릴 때는 어차피 애의 생리적 욕구를 채워주다 보면 내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너무 피곤해서, 무력하다.


아이가 자람에 따라 육체노동의 비중도 줄어들고, 체력에도 여유가 생기고 아이가 유치원에라도 가면 여유시간도 많아진다. 그러나 이 여유시간과 여유 체력이 새로운 시도나 자신감 회복으로는 이어지지 않는다. 긴 육아기간 동안 생활의 반경도 엄청나게 좁아지고, 시야도 좁아졌기 때문이다. 직장을 다니던 사람도 긴 육아휴직기간 이후에 복직하는데 마음의 갈등을 많이 겪고, 휴직 대신 퇴직을 선택한 사람들은 더더욱 그렇다.


또한, 출산 및 육아를 거치면서 주부들은 신체에 많은 변화를 겪는다. 살이 찌거나, 몸매가 망가지고, 피부가 나빠지거나 머리가 빠지기도 한다. 또한, 어딜 가나 아이를 데리고 다녀야 하며, 아이와 함께 다니기 위해 편한 신발과 질끈 묶은 머리, 산더미 같은 아이짐을 챙겨 넣은 기저귀 가방 패션은 길 가다 아는 사람을 만나는 것조차 피하고 싶게 만든다.


살을 빼기 위해 헬스클럽에 등록하고 운동을 해야 하는데, 뚱뚱한 몸으로 헬스클럽에 가서 운동하는 것 자체가 수치스러워서 아예 시도조차 안 한다. 체력이 너무 저질이라 운동해야 돼 하면서도 시작하지 않는 이유도 많다.


입을 옷이 없어.
헬스장 끊어놓고 며칠 가고 안 갈게 뻔한데 돈 아까워.
걷기 운동할 거야. 걷는 게 진짜 몸에 좋대
나는 운동이 필요한 게 아니라 휴식이 필요해. 금쪽같은 시간에 잠을 자거나 나에게 힐링을 주는 드라마라도 볼래.


이 모든 게 내가 했던 생각들이다.

사실 운동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조차 안 하고 살았다.


한국에서는 초등학교 때조차 체육수업의 비중이 높지 않고, 중고등학교로 가면 그나마 있던 것도 입시교육에 밀려 유명무실해진다. 한국 여성에게 운동이란 살 빼기 위한 다이어트와 동급처럼 취급된다.


즉, 살 빼고 예뻐지겠다는 의지가 없으면 절실하지 않다. 건강상의 큰 문제가 생겼을 경우에나 어쩔 수 없이 하는 재활치료 수준인 것이다. 몸짱 아줌마 열풍에 많은 사람들이 헬스장으로 갔지만, 그보다 더 많은 나 같은 아줌마들은 그저 나와는 상관없는 얘기겠거니 하며, 그냥 살던 대로 살았다. 어디가 크게 아픈 것도 아니고, 아이들도 제법 커서 육아에서 육체노동의 비중이 낮아지니 체력 소모도 줄고, 나름 살만했다.


그러다 코로나를 계기로 운동을 시작했다.


봉쇄가 시작되면서 당연히 운동부족이 걱정이 되었기에 꾸준히 산책이나 홈트를 통해 운동량을 채우려고 노력은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친구에서 런데이라는 앱을 추천받았다. 달리기 훈련 앱이었는데, 나는 달리기를 정말 싫어하고 못했다. 학창 시절 달리기에서 꼴등을 벗어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친구가 하도 추천을 하기에, 앱을 깔았다.

1단계의 목표는 30분 동안 쉬지 않고 달리는 것으로 주 3회를 기준으로 8주 코스였다.


30분이라니. 고등학교 때 오래 달리기 2분 30초도 죽을 것 같았다고.


그런데 첫 회가 너무 쉬웠다. 1분 뛰고, 2분을 걸었다. 이걸 5번 반복.


그리고 뛸 때는 신나는 음악을, 걸을 때는 달리기에 관련된 정보를 들려줬다.이어폰을 끼고 앱에서 시키는 대로 뛰고 걷고 설명 듣고 하다 보면 금세 30분이 지나갔다.


오, 할 만한데?


그렇게 1분, 2분, 3분 천천히 뛰는 시간을 늘려주는 게 이 앱의 포인트였다.

그리고 끊임없는 설명과 응원.

진짜 사람이 아닌데도 젊은 여성이

 “정말 잘하고 있어요! 조금만 더 뛰면 이제 걸을 수 있어요”


하며 응원을 해주면 정말 힘이 났다.


“당신은 혼자가 아니에요. 런데이가 같이 뛰어줄게요! 당신은 나의 스타예요!”


라는 응원을 받았을 때는 나도 모르게 울컥 눈물이 날 뻔했다.


아니, 이 유치하기 이를 데 없는 응원에 왜 이렇게 울컥하지 하면서 드는 생각은


아, 내가 진짜 칭찬에 목말라 있었구나.


내가 하는 일은 늘 그냥 해야 하는 일이었다.

가사는 하면 티가 안 나는데 안 하면 티가 난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청소를 해서 깨끗한 집안을 만들어도 누구 하나

“정말 청소 잘했어. 집이 아주 깨끗해졌네”


이런 말을 하지 않는다. 깨끗한 게 당연한 거니까.

청소하지 않았다고 뭐라 하는 사람은 없지만 지저분한 집을 보면 스스로 위축이 된다. 그건 내 일이니까, 뒹굴어 다니는 먼지가 나에게 욕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앱에서는 나에게 칭찬을 해주었다. 그저 달리기만 했을 뿐인데, 잘했다고 더 잘할 수 있다고 북돋워주었다.  


달리기를 해보니 나름의 매력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단순 무식함이었다. 어떤 도구도 필요 없고 특별한 자세도 없다. 물론 정확한 달리기 자세는 중요하지만, 비교하자면 요가처럼 특별히 그 순간에만 취하는 자세가 아니라 일상적인 자세라는 점에서 특별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냥 내 몸으로 나 스스로 속도를 조절하면서 강도를 조절하는 게 온전히 내 몸을 내가 통제한다는 느낌이 들어 좋았다.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마음의 비밀이라는 책도 있듯이 내 마음도 내 뜻대로 안 되고 내 몸도 내 뜻대로 안 될 때가 많다.


하지만 달리는 순간만큼은 내가 내 몸을 지배한다. 런데이 앱의 6주 차에 접어들면 뛰기 5분+걷기 2분 세트를 4번 정도를 해서 20분 이상 뛰기 시작하는데, 어떤 단계에서든 마지막 러닝타임이 가장 힘들다. 이때쯤에는 그냥 걸을까 하는 갈등도 많이 생기는데, 그럴 때면 앱에서 이런 말이 나온다.


“포기하지 마세요! 포기하지 않고 훈련을 마쳤을 때의 기분을 생각해보세요. 운동을 다 하고 집에 가서 따뜻한 물에 샤워할 생각을 해보세요”


귀신같이 잘도 만든 앱이다. 그 말에 또 기운을 얻어 달린다.


발 앞에 발.

이 음악이 끝날 때까지만, 발 앞에 또 발. 그냥 발만 보고 달리자 발 앞에 발.


이런 생각을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다리에 감각이 없어지면서 기계적으로 자기가 알아서 움직인다. 어느 순간 그날의 훈련이 끝나고 도장이 찍힌 모습을 보면 어린 시절 “참 잘했어요”도장을 받은 듯이 기뻤고, 뿌듯했다.



그리고 달리기라는 운동의 종목도 나에게는 특별한 의미였다. 달리기는 내가 운동을 한다면 고를 수 있는 가장 마지막의 마지막에 속하는 운동이다. 어렸을 때부터 키가 작았던 나는 신체사이즈에서 밀릴 뿐 아니라 실제 운동능력도 굉장히 부족했는데, 이 때문에 모든 종류의 체육을 못했지만 특히 달리기를 못했다. 달리기 시합을 하던, 100m 기록을 재던, 내가 뛴 기록은 전교에서 꼴찌였다.


초등 2학년 때인가 운동회날 우리 반 계주 대표로 출전한 적이 있다. 이날 내가 주자가 된 이유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달리기 잘하는 순서가 아닌 것은 확실하다. 번호나 키 순서 뭐 그런 것으로 정해졌던 것 같다.  내가 3번째 주자였는데, 내 앞에 두 명이 어찌나 잘 뛰던지 다른 팀보다 한 바퀴가량 앞서고 있었다. 바통을 넘겨받은 나도 죽을 힘을 다해 달렸지만 나는 한 바퀴 가량을 다 따라 잡히고도 모자라, 역전을 허용하고 말았다.


그리고 우리 반은 결국 졌다. 누가 봐도 나 때문에 졌다. 이 경기에서 나온 대역전극은  그날의 운동회에서 하이라이트였다. 승리한 그 친구에게는 더없는 짜릿함으로, 나에게는 더없는 비참함으로.


그런 내가 달리기를 좋아하게 된 것이다.

이것은 내가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주었다.


“평생을 싫어하는 달리기도 몇 달째 재밌게 하고 있는데, 다른 것도 해보면 재밌지 않을까? 내가 의외로 잘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는 8주면 끝나는 1단계를 3개월 뒤에야 끝낼 수 있었다. 앱에서는 격일로 뛰고, 적어도 일주일에 3회는 뛸 것을 권장하지만, 바쁘거나 하기 싫거나 여러 가지 이유로 그렇게 하지 못했다. 습관이 몸에 배지 않은 것이 첫 번째 이유일 것이며, 솔직히 처음에는 달리기가 너무 싫고 힘들어서 어떻게든 핑계를 댄 것이 두 번째 이유일 것이다. 당연히 육아와 가사에 치여서 일주일에 한 번 겨우 달릴 수 있었다는 것도 필수도 들어가야 할 핑계일 것이다.


그럼에도 꾸준히 달렸다. 중간에 쉬는 기간이 너무 길어서 자신이 없으면 앞서서 마쳤던 단계로 되돌아 가서 다시 시작했다. 어느새 1단계, 2단계를 다 마치고, 나는 30분을 중간에 쉬지 않고 달릴 수 있게 되었다. 처음에는 걷는 속도와 뛰는 속도가 거의 비슷할 정도였지만, 2단계를 반복하면서 속도를 높이는 것도 가능해졌다. 이제는 3일 이상 뛰지 않으면 몸이 근질근질 해지는 수준에 이르렀다.


다리가 너무 아프고 힘들어서 그만 뛰고 싶은 순간은 아직도 늘 온다.


그러나 발 앞에 발을 생각하며 그 순간만 참으면 어느새 아픔은 사라지고 머리가 맑아진다. 그리고 뛰는 시간을 다 채우고 마무리 걷기로 들어갔을 때  밀려오는 뿌듯함과 개운함을 생각하면 멈출 수가 없다. 또한, 아침에 뛰고 나면 오전 시간의 업무효율이 놀라울 만큼 좋다. 달리고 오면 한동안 심장이 빠르게 뛰는 걸 느낄 수 있는데 그 속도에 맞춰서 일을 하게 된다. 심장이 평소대로 돌아오기 전에 간단한 청소와 설거지와 같은 재미없는 집안일을 하면 빠른 속도로 해치울 수 있었다.  게다가 하루 종일 기분도 좋다. 달리기와 함께 나는 오랜 기간 동안 가정주부 생활을 하면서 나도 모르게 쌓여있던 무력감을 털어낼 수 있었다.


그리고 생각지도 못한 또 하나의 아주 큰 수확이 있었다. 바로 운동을 정말 싫어하는 중학생 딸아이가 달리기를 좋아하게 된 것이다. 딸아이가 나와 같이 런데이를 시작하고, 계속하게 된 데에는 나름의 사연이 있지만, 중요한 것은 운동을 좋아하지 않고, 그중에서도 특히 숨이 차는 운동을 좋아하지 않는 딸아이가 달리기를 좋아하게 된 것이다. 이제 아이는 나보다 더 길게 더 빠르게 뛰면서도 숨이 차 하지도 않는다.


 내가 바쁘면, 혼자서라도 30분을 뛰고 온다.


 상상이 되는가? 중학생 여자아이가 '나 뛰고 올게' 하면서 혼자 30분을 뛰고 볼이 발개져서 돌아오는 모습이.


운동을 시작하지 않았으면, 아직도 무기력감에 하루 종일 억지로 집안일을 하며, 남는 시간에는 '억지로 하는  집안일' 로 인해 생긴 스트레스를 푼다며 밤늦게까지 넷플릭스를 보다가 결국 늦게 자고, 다음 날도 무거운 몸을 겨우 일으켜 무기력하게 하루를 살았을 것이다.


거창한 도구도, 훈련도 없이 그저 달리기만 했는데, 이렇게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고 감사했다. 게다가 딸아이에게도 돈 주고도 가르치지 못할 값진 경험을 하게 한 것도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내가 나이 40 넘어 새롭게 시작한 것

1.달리기


이 경험을 통해 새롭게 얻은 것.

1.  자신감.

2.  넘치는 에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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