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가 시작하기 전부터 진행해왔던 의미 있는 모임이 하나 있었는데 동네 아줌마들끼리 모여 같이 책을 읽고 나누는 북클럽이었다. 해외 살다 보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되지만 한국에 살 때처럼 어떤 공통의 관심사나 배경으로 묶이는 것이 아니라, 단지 같은 한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도 친근감을 느끼고 의지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나와는 너무 다른 사람들을 만나 갈등을 겪기도 하지만 나는 운 좋게도 마음이 맞는 사람들을 만나 많은 것을 배우고 나눌 수 있었다. 그중에 가장 의미 있는 모임이 북클럽이었다.
책 읽는 것을 좋아하고 즐기는 편이었지만, 육아에 치이고, 해외생활에서 한국 책을 구하기도 쉽지 않다 보니 어느새 책과 멀어지는 삶을 살고 있었는데, 요즘은 e-BooK 리더기나 스마트폰 앱으로도 손쉽게 책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너무나 익숙한 사람들도 있겠지만 나에게는 신기한 경험이었다. 스마트폰 화면이나 컴퓨터 화면에 눈이 쉽게 피로해 지기 때문에 처음에는 거부감이 있었지만 직접 리더기 화면을 보니, 아니 이건 그냥 종이책과 느낌이 똑같았다.
이북리더기 화면
아쉬운 점이 있다면 책장을 넘길 때 손끝에서 느껴지는 서그락하는 감각과 소리, 그리고 책장이 넘어감에 따라 앞부분은 손때가 묻고 뚱뚱해지고, 남아있는 날씬하고 베일 듯 날카로운 깨끗한 종이들이 줄어들어가는 희열이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중간중간 앞부분을 촤라락 넘기며 읽었던 내용을 다시 상기하는 그 느낌이 없어서 아쉬웠고, 그래서 좀 더 자주 목차를 들여다보았다. 얼마나 진도가 나갔고 앞에 무슨 내용이 있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그나마 소설을 읽을 때는 그런 아쉬움 없이 쭉쭉 읽어나갈 수 있어서 좋았다.
이북의 신세계에 빠진 내가 친하게 지내던 주변 사람들에게 얘기하다 보니 이미 다들 리더기 하나씩 갖고 있고 회원제 정기구독 서비스도 이용하고 있다는 것이 아닌가.
소개받은 서비스는 Yes24에서 가입할 수 있는 북클럽이라는 서비스였는데, 월 5천 원가량의 정기구독료만 내면 제공되는 이북을 무제한으로 볼 수 있는 서비스였다. 심지어 리더기를 구입하면 1년 정기구독권도 준다. 망설일 이유 없이 북클럽에 가입하고, 이것이 계기가 되어 yes24북클럽 회원권이 있는 사람들이 모여 북클럽을 시작했다. 나중에 보니 밀리의 서재라는 곳도 유명하고, 오디오북으로 유명한 윌 라라는 곳도 있고, 유튜브나 팟캐스트에서도 책을 읽어주거나 리뷰하는 다양한 채널이 있었다. 때마침 설민석의 책 읽어드립니다라는 프로그램도 유명세를 탔고, 어느 순간 나의 삶에 책 읽기가 깊숙이 들어왔다.
전자책을 읽는 것은 앞서 언급한 단점도 있었지만, 장점도 많았다. 언제 어디서나 들고 다니는 스마트폰에 읽던 책이 들어있어서 잠깐이라도 자투리 시간이 생기면 읽던 책을 마저 꺼내 읽었다. 예전에는 웹서핑을 하거나 하면서 흘려보냈을 시간이었다.
또한, TTS(Text To Speech) 기능을 사용하면, 음성으로 책을 줄 줄 읽어주었기 때문에 운전할 때 듣거나, 집안일을 할 때도 책을 들으며 할 수 있었다. 하루에 두 번, 아이들을 학교에 차로 데려다주고 데려오는 시간이 왕복 40분은 걸렸는데, 이 시간은 3-400page정도 되는 책을 1/3 정도 들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설거지, 청소, 요리하기, 옷장 정리 등 단순노동의 집안일을 하면서 책을 듣다 보면 하루에 한 권 정도 읽는 것도 쉬웠다.
물론 TTS 기술이 많이 좋아졌다고 하기는 하나, 아직 어색한 부분이 많고 한글, 영어가 섞여서 나오는 부분에서 특히 오류가 많고, 엉뚱한 곳에서 띄어 읽기도 해서 무슨 내용이지 싶어 다시 책을 들여다봐야 하는 경우도 많다. 그래도 하루에 책 읽는 시간 1시간을 내기도 쉽지 않은데 내 할 일을 하면서 동시에 거의 하루 종일 책을 읽는 것이 너무 재밌었다. 지루한 집안일이나 운동시간도 어느새 지나가버렸다. 아이들은 너무 듣기 싫고 어색하다며 싫어했지만, 영어도 흘려듣기로 가르친다는데 흘려라도 듣다 보면 뭔가 배우겠지 싶어 내버려 두었다. 아닌 게 아니라 듣기 싫던 TTS도 내용에 집중하다 보면 익숙해지는 데 불평하던 아이들도 재밌는 내용이 나오면 웃거나 한 마디씩 보태기도 했다.
2주에 한 번씩 모이는 북클럽을 위해 정해진 책을 읽고 그 외에도 재미를 위해 소설도 읽고 수필도 읽고 인문서적도 읽고 닥치는 대로 읽었다. 북클럽 회원 중에는 다른 북클럽을 동시에 하고 있는 사람도 있었는데 다른 북클럽에서는 정해놓은 책이 없이 본인들이 읽고 싶은 책을 읽고 모여서 책 소개를 하는 식으로 진행을 한다고 하였다. 우리의 북클럽은 정해진 책을 같이 읽고 토론을 하는 방식이었고, 때때로 자신의 책을 소개하기도 했는데, 두 가지 방법 모두 나름의 장단점이 있었다.
정해진 책을 같이 읽으면, 서로 내용을 다 알고 오기 때문에 대화의 폭과 깊이가 더 넓고 깊어졌다. 바로 각자가 느낀 본인만의 생각들을 나눌 수 있었고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은 서로 설명하기도 했다. 재미있는 것은 단 4명으로 이루어진 북클럽이었는데도 똑같은 책에 대한 감상이 4인 4색이었다는 것이다. 나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내용도 저 사람에게는 이상한 내용이었고, 나는 정말 별로였는데 다른 사람은 굉장히 좋아하기도 했다. 같은 소설을 읽어도 서로에게 감흥을 주는 에피소드가 달라서였는지 심지어 기억하는 내용이 다른 적도 있었고 캐릭터에 대한 애정도나 평가도 제각각이었다. 이러한 경험 자체가 내 안의 틀을 깨는 경험이었다. 혼자 읽고 혼자 다 이해한 척하고 있었는데 나누어보니 내가 읽은 것은 일부분에 지나지 않았다.
각자 다른 책을 읽고 모여서 그것을 소개하는 형태로 북클럽을 진행할 때 가장 좋은 점은 다양한 책을 접할 수 있다는 것이다. 모이는 사람의 수만큼 다양한 책을 간접적으로 경험하게 된다. 또한, 대부분 자신이 관심 있어하는 분야, 좋아하는 장르의 책을 편식하기 쉬운데, 이런 식으로 북클럽을 진행하면 자신이 평소에 관심이 없던 분야나 장르의 책도 듣게 되고, 듣다 보면 또 관심이 생겨서 읽게 되기도 하면서 관심분야가 확장된다. 또한 재미있는 것은 이렇게 각자 서로 다른 책들을 소개하다 보면 이상하게도 그날의 공통된 화제가 생긴다는 점이다. 분야도, 장르도 다른 책들인데 다 쏟아놓고 이야기하다 보면 비슷한 주제로 묶이거나 일관된 흐름이 있거나 서로 접목할 수 있는 부분들이 생겨서 각자 발표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본인이 읽은 내용에 다른 사람이 가져온 내용을 덧붙여 보다 발전적인 사고가 가능해진다는 점이다.
같은 책으로 시작해도 서로 다른 결론과 시각을 갖게 된다는 점, 그리고 그것을 나누는 과정을 통해서 나의 시각이 확장되는 경험, 다른 책으로 시작해도 같은 결론이나 공통된 화제로 모인다는 것, 그리고 또한 그것을 통해서 나의 사고가 깊어지고 넓어지는 경험, 이 두 가지 경험이 모두 의미 있었다.
그리고 책을 읽고 같이 토론을 하기 위해 의무는 아니었지만 간단히 정리하고 서평을 쓰기도 했는데, 확실히 그냥 읽는 것과 서평을 쓰는 것은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었다. 아무리 가벼운 책을 읽는다고 해도 서평을 쓰려고 하면 더 꼼꼼히 읽고 생각을 많이 해야 했다. 생각을 정리해 글로 옮기는 과정 역시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들었지만, 그 자체로 즐거움을 주었다. 그리고 한편씩 서평이 쌓여갈 때마다 온전히 내 것이 된 내 책을 갖는 느낌이었다. 종이책을 사서 읽던 시절 책장에 한 권씩 꽂으며 가끔 꺼내보던 습관 대신에 저장해둔 서평을 열어서 한 번씩 읽어보면 손발이 오그라들기도, 몇 줄 더 적어 넣고 싶어 지기도 했다.
아이들이 갑자기 엄마가 모임을 한다, 책을 읽는다 하며 자신들에 대한 관심을 거두고 눈에 띄게 잔소리가 줄어들자 신기한 듯 관심을 보였는데, PC를 펴고 서평을 쓰고 있는 나를 보더니 경악하며 물었다.
"엄마 지금 독후감 쓰는 거야? 북클럽에서 그런 숙제도 나와? 친구들끼리 하는 거라며?"
"숙제는 아니고, 책 읽고 얘기를 해야 하는데 바로 하려면 정리가 잘 안돼서 미리 해두려고 써보는 거야"
아이들은 세상에 이런 일이에 나온 신기한 동물이라도 보는 듯이 나를 쳐다보고는 오 마이 갓을 외치며 갔다.
숙제도 아닌데 스스로 독후감을 쓰는 사람이 있다니 도저히 이해가 안 가는 모양이었다.
나도 이렇게 읽고 쓰는 일이 이렇게 재미있을 줄은 몰랐다.
내가 나이 40 넘어 새롭게 시작한 것
2. 북클럽
이 경험을 통해 새롭게 얻은 것.
1. 읽고 쓰는 즐거움(잊고 있던 걸 되찾았다)
2. 이북리더기
3. 이북 정기구독 서비스 이용능력
yes24에서 제공하는 ‘북클럽’이 가성비 측면에서 최고이다.
지금은 ‘밀리의 서재’를 이용하는 중인데, 구독료는 더 비싸지만 신간이 더 많고, 오디오북을 비롯해 다양한 기능들이 있고 계속 추가되고 있어서 이용하는 재미가 있다.
4. Google Docs의 사용법
서평을 회원들과 카톡으로 공유하기에 쉬운 방법을 찾다가 알게 되었는데, 구글 앱 그룹에 기본으로 깔려있는 워드 프로그램이다. 워드와 사용법이 거의 동일하고 호환도 잘 되고, 가장 좋은 것은 인터넷만 연결되어있으면 스마트폰에서 열어 언제든 편집하고, 번거로운 저장, 복사 등의 과정 없이 내 구글 아이디만 있으면 어느 기기에서나 바로 열어서 작업을 계속할 수 있다는 편리함이다. 또한, 만든 문서를 공유하는 것도 링크만 복사해서 보내주면 링크를 타고 바로 문서로 들어와 볼 수 있고, 실시간으로 내가 수정을 해도 바로 반영된다는 것이다. 여러 사람들과 같은 문서로 작업을 할 때도 정말 편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