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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욱 Dec 23. 2023

관동대지진 100주년

요코아미초 공원, 고려박물관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 1923년 9월 1일 11시 58분, 관동 대지진(関東大震災)이다. 희생자는 10만 5천 명에 달한다. 당시에는 대부분이 목조건물이었고, 희생자의 대부분은 지진으로 인해 발생한 화재로 사망했다.


도쿄 스미다(墨田)구에 위치한 요코아미초(横網町) 공원은 관동 대지진으로 인한 희생자들을 기리는 공원이다. 원래 이곳은 육군 피복창이 있었던 곳인데, 관동 대지진이 발생한 직후 도쿄 시내에서 피난민들이 몰려들었다. 그때 회오리바람과 화재가 발생하면서 3만 8천 명이 사망, 단일 장소로는 가장 많은 피해가 발생했다.


1930년, 그 터에 요코아미초 공원이라는 이름으로 공원이 만들어졌다. 58000여 명의 무연고자 유골을 납골한 위령당이 세워졌고, 이곳은 관동 대지진을 추모하는 대표적인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그런데 요코아미초 공원은 관동 대지진의 추모 공간으로 끝나지 않았다. 1944년부터 1945년에 걸쳐 미군은 도쿄를 폭격해 초토화시켰다. 특히 1945년 3월 10일의 폭격은 가장 큰 피해를 입혔다. 이때의 사망자는 10만여 명에 달한다. 단일 도시로서는 히로시마나 나가사키보다 더 큰 사망자가 발생한 것이다.


태평양전쟁이 끝난 후, 요코아미초 공원은 관동 대지진의 희생자에 더해 도쿄 폭격의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공간으로 거듭나게 된다. 유골은 16만 3000여 명으로 늘었다.


도쿄에서 많은 사람들이 희생된 사건이라는 점에서 관동 대지진과 도쿄 공습을 함께 기억하는 것은 당시 사람들에게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둘 모두 도쿄를 철저히 파괴했다는 공통점이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지진이라는 천재지변과 전쟁은 엄연히 성격이 다르다. 관동 대지진의 희생자들과 도쿄 공습의 희생자들을 함께 추모하는 기념물들을 보며 위화감을 느꼈다.


요코아미초 공원은 JR 료고쿠(両国) 역에서 북쪽으로 도보 5분 정도 거리에 있다. 료고쿠 역은 도쿄 역에서 전철로 10분 정도 걸리는 곳에 있다. 스모(相撲) 경기장인 국기관이 있는 곳으로 유명하고, 스카이트리 타워가 가까이 있다.

공원에는 관동 대지진과 관련된 여러 추모 시설들이 있는데, 가장 규모가 큰 건물은 위령당과 기념관이다.

위령당 외부


위령당 내부

위령당 안에 들어가 묵념을 했다.

기념관

기념관은 관동 대지진과 도쿄 폭격에 대한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다.

지진의 피해를 전하는 타자기

지진 직후 화재로 불탄 타자기가 전시되어 있다. 당시의 참상이 생생하게 전해지는 것 같다.

<유언비어로 인한 치안 악화>

100개는 족히 되는 전시물들 중에서 조선인 학살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패널은 이게 유일하다.


대지진으로 많은 사람들이 냉철한 판단력을 잃고 불안에 빠진 결과, 수많은 유언비어가 만들어져 무질서하게 확산되었습니다.
특히 피해의 핵심이 된 이들은 당시 일본 통치하에 있던 조선에서 온 사람들이었습니다. 9월 1일 저녁부터 퍼진 "조선인들이 습격해 온다"라는 소문이 퍼지고, 2일 밤, 정부는 긴급 계엄령을 선포했습니다. 군대, 경찰, 신문도 일시적으로 소문을 믿은 탓에 이것이 유언비어를 더욱 퍼지게 했습니다. 소문을 믿은 시민들이 자경단을 결성해 조선인이나 조선인으로 오인한 중국인, 일본인을 폭행, 살상했습니다. 그밖에도 사회주의자가 희생이 된 가메이도 사건 등 인재로 인한 살상 사건이 많이 일어났습니다.

설명 자체는 딱히 틀렸다고 할 수 없지만, 조선인 학살에 대한 설명으로 차지하고 있는 비중은 전체적으로 부족하게 느껴진다. 전시의 주제가 '일본의 비극적 사건'으로 관동 대지진을 다루고 있고, 조선인 학살은 그 중 지엽적 에피소드로 처리된 것 같아서 그런 것 같다.


지진의 참상을 나타내는 그림 <이튿날의 비탄>

위령당과 기념관에는 화가 도쿠나가 히토오미(徳永仁臣, 1871-1936)의 그림들이 전시되어 있다. 실감 나면서도 박력 있는 그림들이 인상적이다.


<자경단>

그런데 일련의 그림들 중에서 꺼림칙한 그림을 발견했다. <자경단>이라는 제목과 함께 "불탄 흔적에 불씨가 남아 한밤을 밝힐 뿐이었는데, 어디선가 유언비어가 흘러와 불온한 정세였기에 시민들은 각자 자경단을 조직해 폐허를 지키며 오래 살았던 거주지를 지켰다"라는 설명이 있다. 자경단은 그 유언비어에 휘둘려 조선인들을 학살한 이들이기도 했다. 조선인 학살에 대한 이야기는 생략한 채 자경단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설명문만 있다니 씁쓸한 일이다.


조선인 희생자 추도비

이렇듯 전시물 중에서 조선인 학살 사건은 경시되지만, 요코아미초 공원 위령당 옆에는 조선인 희생자 추도비도 있다.


한국에서 관동 대지진은 당시 일본에 살던 조선인들이 학살당한 사건으로 기억된다. 조선인들이 폭동을 일으켰다는 유언비어가 퍼지자 일본인들은 조선인들을 죽였다. 조선인처럼 보이는 사람이 지나가면 "15엔 50전(쥬고엔고쥿센)"이라고 말하도록 시켰다. 일본어 발음이 서툰 조선인들을 가려서 죽인 것이다. 방언이 심한 지방 출신 일본인과 중국인, 사회주의자 등도 살해당했다.


당시 상해 임시정부는 희생당한 조선인의 숫자를 6661명으로 추산했다. 물론 상해에서 일본 현지의 조선인들을 통해 수집한 정보인 만큼 숫자는 정확하지 않을 수 있다. 당시 일본에서 이뤄진 조사는 2600여 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적어도 수천 명의 조선인이 희생된 것이다.


그런데 최근 깜짝 놀랄 뉴스를 들었다. 올해 8월 30일, 마쓰노 히로카즈(松野博一) 관방장관이 조선인 학살에 대해 "조사한 바로는 사실관계를 파악할 수 있는 자료가 없다"라고 발언한 것이다. 일본 인터넷에는 조선인 학살을 부정하는 세력이 예전부터 있었지만, 정부의 공식 입장을 대변하는 관방장관이 조선인 학살을 부정하다니, 일본의 역사왜곡이 한층 더 심해진 것을 실감했다.(참고로 마쓰노 관방장관은 그 후 비자금 문제로 교체되었다.)


매년 9월 1일, 요코아미초 공원에서는 희생자들의 추도식이 열린다. 조선인 희생자들의 추도식도 열리는데, 역대 도쿄 도지사는 조선인 희생자들에 대한 추도 메시지를 보내왔다. 심지어 극우 정치가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慎太郎)조차도 보냈던 추도 메시지를 고이케 유리코(小池百合子) 현 지사는 조선인 학살에 대한 사실 관계가 불명확하다는 2017년 이후 추도 메시지를 보내지 않고 있다.

"이 역사를 영원히 잊지 않고, 재일조선인과 결연히 손을 잡고, 일조(日朝) 친선, 아시아 평화를 세우리라"


일본의 역사 부정을 보면 조선인 추도비에 새겨진 문구가 공허하다. 일본의 역사 부정이 계속되는 한, 관동대지진의 조선인 학살의 역사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라 할 수밖에 없다.

관동 대지진과 도쿄 공습 16만여 명의 유골이 납골된 위령탑



한인타운으로 유명한 신오쿠보(新大久保)는 거리에 걸린 한국어 간판이 낯설지 않은 곳이다. 한류 문화를 즐기러 온 일본인 (주로) 여성들로 붐비는 오쿠보 거리에서 남쪽으로 한 블록 떨어진 곳에 쇼쿠안 거리(職安通り)가 있다.

주변에 한국 음식점들이 있는 사이로 고려박물관이 있다.

쇼쿠안 거리의 돈키호테 근처에 고려박물관이 있다. 2001년 12월, 신오쿠보에 개관한 고려박물관은 민간에서 자발적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한다.

관동대지진의 조선인 학살 100주년을 기념하여 올해 7월 5일부터 12월 24일까지 관련 자료들을 전시한 기획전이 열렸다.

고려박물관은 한국광장이라는 한인마트 건물 7층에 있다. 규모는 그리 크지 않다.

고려박물관의 목적

아쉽게도 관동대지진 관련 전시물들은 촬영할 수 없었다. 조선인 학살에 대한 상세한 내용들이 전시되어 있어 알찬 구성이었다. 평소보다 관람객도 크게 늘었다고 한다.

한국 문화를 보여주는 전시물들. 평소에는 한글강좌를 비롯해 한국의 문화를 알리는 활동도 하고 있다.

조선인 학살과 같은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과거를 배우고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


참고문헌

西崎雅夫編(2018)『関東大震災の直後 朝鮮人と日本人』筑摩書房

藤野裕子(2020)『民衆暴力』中央公論新社

源川真希(2023)『東京史』筑摩書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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