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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곱글자부부 Aug 19. 2018

아내가 쓰는 샌디에고 신혼여행 (1)

다들 물어봤다. "왜 신혼여행으로 샌디에고에 가?"


결혼을 앞두고 현실적인 미션들을 하나둘 씩 해결해가며 몸과 마음이 지칠 때마다 우리는 쉬어가는 타이밍으로 종종 신혼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행히 우리 둘은 일반적으로 많이 찾는 휴양지에 대한 로망이 없었다. (이 부분에선 매우 다행이었다.) 하지만 가고 싶다고 느끼는 나라에 있어서는 매우 다른 편이었다.

일단 나는 위험하거나 너무 춥거나 너무 더운 나라, 전반적으로 깨끗하지 않은 나라에 대한 호기심은 없는 편이다. 그렇다 보니 보통은 일반적으로 많이 여행 가는 나라와 도시들을 하나씩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편이다.

이와 반대로 도비는 극도의 추위를 느낄 수 있는 나라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이를테면 알래스카라던지 아이슬란드, 러시아 같은 광활한 자연에서 추위를 온몸으로 맞이할 수 있는 그런 나라들이 좋다고 했다. 너무 도시 느낌, 관광지 느낌이 나는 나라들은 전혀 호기심이 생기지 않는단다. 그래서 신혼여행도 서유럽, 동유럽의 유명한 나라들은 가고 싶지 않아했다. ("그래도 한 번쯤은 서유럽이나 동유럽에 가보고 싶지 않아?"라고 물어봐도 하나도 아쉬워하지 않는 모습을 보니 아마도 도비와 함께 에펠탑 앞에서 사진 찍을 날은 매우 먼 훗날이 될 거라 추측해본다.)


유럽권에 우리 둘 모두가 좋아할 만한 곳이 없을까 고민하다가 떠오른 곳이 포르투갈이었다. 어느 날 우연히 지인의 인스타그램에서 포르투갈 여행 사진을 본 적이 있었는데 '생각보다 포르투갈이 정말 좋다.'라고 다녀온 사람들이 말하는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카메라 셔터를 막 눌러도 다 잘 나올 것 같은 압도적인 건축물들이 가득하고 자연과 도시의 느낌이 공존하는 이 곳에 언젠간 꼭 가봐야겠다 라고 마음먹었었다.

웬일인지 유럽 헤이터 도비도 포르투갈은 좋다고 동의하였고 그렇게 포르투갈로 신혼여행지가 정해지나 하던 차에 스페인에서 안타까운 테러 사고가 터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심지어 안전지대인 줄 알았던 북유럽마저 얼마 뒤 테러가 터지면서 어쩔 수 없이 비유럽 국가로 방향을 선회했다.

우리가 신혼여행을 떠날 3월 중순엔 날씨가 좋은 나라들이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캐나다나 호주도 알아봤지만 우기이거나 너무 춥다고 했고 이제 와서 휴양지로 알아보자니 영 내키지 않았다.


여기다! 싶은 곳이 떠오르지 않아 골치가 아플 때쯤부터 도비가 주장하기 시작한 곳은 미국이었다. 위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도시 느낌이 가득한 곳을 싫어한다고 말하면서 특이하게 미국은 사랑한다. 대학교 시절 건축공모전 대상으로 받은 상금을 털어 혼자 뉴욕 여행을 다녀왔던 일화들을 나에게도 종종 얘기해주곤 했는데 아마도 그때 당시에 뉴요커 놀이를 하며 사랑에 빠져온 것이 아닌가 싶다. 미국에 대한 큰 호기심이 없는 나도 유일하게 미국에서 가고 싶은 곳이라 하면 뉴욕과 시애틀이라고 말해왔다. 동부로 신혼여행을 가면 우리 둘 모두가 만족할 수 있으련만. 당시 동부의 날씨는 매일 비 옴 및 기상이변으로 인한 홍수 등으로 난리도 아닌 상황이었다.


왜 신혼여행으로 샌디에고를 가요?


"샌디에고에 솔크연구소가 있다고 하지 않았나?" 서부는 가고 싶은 곳이 딱히 없다며 머리가 복잡해져 있던 그때 갑자기 솔크연구소가 생각났다.

몇 년 전 우연히 TV에서 루이스 칸이라는 건축가의 다큐를 본 적이 있었다. 그가 지은 솔크연구소를 소개하며 대칭처럼 보이는 양쪽 건물 사이로 태양이 저 멀리서 서서히 내려가는 모습을 타임랩스로 촬영한 모습을 보여주었었다. TV로 마주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대자연 앞에서 겸손해지듯 건축물을 보며 겸손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다큐를 본 이후로 루이스 칸의 다른 건축물들도 궁금해져서 책도 몇 권 사서 읽어봤었다.

도비와 첫 만남 때도 이런 루이스 칸의 이야기를 하며 친해졌는데 도비 또한 루이스 칸을 좋아했고 언젠간 솔크 연구소에 가보고 싶다고 말해왔었다.


더 말할 것도 없이 우리의 신혼여행지는 루이스 칸의 솔크연구소가 있는 샌디에고로 정해지고 있었다. 미국 10대 대도시 중 가장 안전한 도시, 지중해성 기후로 1년 내내 13도~20도를 유지하는 여행하기 좋은 도시, 게다가 솔크연구소까지 있는데 더 이상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그동안 왜 여러 나라를 고민했을까 싶을 정도로 샌디에고로 목적지를 정하고 나니 얼음 탄 사이다를 마신 것처럼 후련해졌다.


신혼여행지를 정하고 나서 부모님이 물어보실 때, 청첩장 모임을 할 때마다 항상 듣는 질문이 있었다. 신혼여행으로 샌디에고에 가는 이유가 뭐냐고. 조금 이상해 보였을 수도 있지만 항상 우리는 똑같이 얘기했다.

"그곳에 저희가 진짜 보고 싶어 하는 건축물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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