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갑자기 단독주택을 계약했다.
우리는 양도소득세 비과세가 적용되는 실거주 2년을 채워갈 무렵부터 재미삼아 주택을 알아보러 다녔다. 당장 이사갈 생각으로 알아본 건 당연히 아니었다. 서울을 좋아하는 아내 (본인) 한테 이끌려 주말엔 자주 서울에 가곤 했는데 이 동네 저 동네 구경하다보니 단독주택이 다시 대화 주제로 오르내리게 된 것이었다. 막히는 길을 뚫고 서울에 가는데 한 두시간 놀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긴 아까우니 시세도 파악할 겸 그냥 구경이나 해보자 했다.
처음으로 알아본 곳은 금호동이었다. 서울 전체를 놓고 봤을 때 딱 중간쯤에 위치한 동네라 직장을 어디로 옮겨도 다니기 괜찮을 것 같았고 지도앱으로 봤을땐 단독주택이 굉장히 많아보였다. 급한 상황도 아니었는데 굳이 한여름에 금호동에 주택을 알아보러 갔다. 우리는 금호동이 그렇게 언덕이 많은 동네인줄은 몰랐다. 아마 그걸 알았으면 한 여름에 그렇게 나서지 않았을 것이다. 금호동에서도 몇 군데의 지역이 아파트 재개발을 앞두고 있었다. 재개발 지역으로 선정된 쪽의 단독주택은 매물도 없거니와 이미 우리가 손댈 수 없이 비싼 가격에 팔리고 있었다. 동네의 부동산 대부분은 아파트 전문이라 단독주택 매물을 묻는 우리를 적극적으로 응대하지 않는 사장님들이 많았다. 게다가 우리랑 얘기하는 중에도 사장님의 핸드폰은 아파트 관련 문의로 쉴새 없이 울렸다. 서둘러 이야기를 정리하고 'OO아파트 전문' 부동산을 나서 단독주택이 많은 쪽 사이에 있는 부동산에 가보기로 했다. 딱 봐도 최소 10년 이상 같은 자리에 매달려있었을 것 같은 대나무 발이 가리고 있는 문을 열고 들어가니 실내가 한 눈에 읽히는 작은 공간이 나타났다. 그 곳엔 할머니 부동산 사장님이 부채를 슬렁슬렁 부치며 앉아계셨다. '아! 이분은 왠지 이 동네에 적어도 20년은 사셨을 것 같다.' 라는 느낌이 확 왔다. 추측대로 단독주택을 물어보는 우리의 질문에 2-3개의 매물을 하나씩 읊어주셨다. 아마도 부동산 사장님만큼 이 동네에 오래 사신 동네 할머니들이 친분이 있는 부동산 사장님께만 매물을 내놓은 모양이었다. 왔다 갔다 지나다니면서 "우리 집 좀 팔아줘" 하고 지나가는 소리로 말한 매물들인듯 했다.
주소만 알려주시면 우리끼리만 가서 봐도 됐는데 같이 가서 보여주겠다는 말씀에 그 더운날 부동산 사장님과 함께 매물을 보러 나섰다. 하필 매물은 또 왜 이렇게 언덕에 있는지. 보여주신 매물 모두 언덕배기 주택가였다. 머릿속으로 올라온 길을 되짚어봤다. 역에서부터 얼만큼 올라온건지 감이 안 잡혔다. 거리 상으로는 그리 멀진 않은 듯 했지만 언덕때문에 체감상 한참을 걸어온 느낌이었다. 이 집에 살게되면 매일 이 오르막길을 올라와야한다는건가? 라는 생각을 하니 조금 암담해졌다.
일단 무엇보다 빨리 평지로 내려가고 싶었다. 너무 더워서 집이고 뭐고 오늘은 아니다 싶었다. 힘든 내색을 최대한 숨기며 부동산 사장님과 인사를 하고 "아우 너무 덥다!" 를 연발하며 평지로 내려왔다. 한 여름에 등산한 기분이었다. 마지막에 보여주신 곳이 뷰도 좋았고 크기에 비해 가격도 나쁘지 않았는데 현재 다가구로 사용되고 있는 점이 골치 아프기도 했고 무엇보다 너무나 언덕이었다. 어차피 당장 이사가기 위해 알아본 것도 아니었으니 날이 좀 시원해지면 다시 한번 와보자 했다.
여름이 지날무렵부터는 책 원고 수정 때문에 새로운 집에 대한 고민을 할 겨를이 없었다. 10월 말 책을 출간하고는 한동안 단독주택에 대한 마음을 잊고 지냈다.
해가 넘어갈 무렵부터 또 다시 집을 구경하러 다녔다. 별 일 없는 주말이면 하루정도는 꼭 집을 알아보러 서울로 향했다. 이때부턴 조금 더 진지하게 동네를 고르기 시작했는데 각자가 정한 나름의 동네 선택의 기준이 있었다. 서울에서도 너무 서쪽과 북쪽에 있는 동네들은 일단 배제하기로 했다. 위치가 서울의 중심부에 있어야 그나마 우리가 어디에서 일하든 출퇴근 시간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는 결혼 전 통근시간 1시간 15분에서 결혼 후 최소 20분까지도 경험하며 회사와 집의 거리가 얼마가 중요한지 체감했다.)
위치, 가격적인 면에서 그나마 합격점이었던 동대문구는 우리가 주력으로 알아봤던 지역이었다. 그 중 신당동과 창신동, 장충동은 두 세번 다녀왔다. 장충동은 위치는 좋았지만 소형주택이 없었고 신당동과 창신동은 그래도 꽤 많은 편이었다. 신당동엔 큰 길가를 끼고 있는 단층 가게 매물이 하나 있었다. 유동인구가 많은 길가는 아니었지만 큰 길가를 바로 접한 부분도 마음에 들었고 새로 지었을 때 어떤 모습일지 머릿 속에 잘 그려지는 곳이었다. 마음에 안 드는 건 가격 뿐이었다. 단층 건물이라 신축을 해야했는데 매매 가격에 신축 비용까지 생각하면 무리를 많이 해야했다.
창신동에서는 뷰가 끝내주는 정남향의 2층짜리 집을 봤다. 동대문역에서부터 시작되는 복잡한 시장골목을 뚫고 올라가다보면 주택이 하나 둘 모여있는 조용한 길이 나오는데 그 길도 한참을 올라가야 나오는 언덕 끝 주택가의 집이었다. 복잡하고 시끌시끌한 시장골목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내는 곳이었다. 동네 안엔 채석장 전망대라는 곳도 있었는데 전망대 특유의 촌스러운 분위기가 전혀없는, 건축적으로도 꽤 멋진 곳이었다.
우리가 본 집은 둘이 쓰기엔 큰 집이었다. 옥상에 올라가면 서울이 한 눈에 내려다보였다. 2층에 통유리창을 넣고 창문으로 사계절을 느끼면 너무 좋을 것 같았다. 조용조용한 동네 분위기도 마음에 들고 집 자체도 괜찮았지만 역부터 집으로 향하는 길이 험난하다는게 최대 장벽이었다. 뭐 적응하면 괜찮겠지 라고 생각하며 집까지 가는 길을 여러 방법으로 테스트해보기도 했다.
결혼 전 주택을 알아볼때도 느꼈지만 모든 조건을 만족하는 집은 찾기가 힘들었다. 집의 위치 (역에서의 거리, 언덕인지 아닌지, 큰 길을 끼고 있는지 등), 동네의 분위기, 합리적이며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가격, 집과 그 집이 깔고 앉아있는 토지의 형태. 아파트가 아닌 주택을 고르는거라 최대한 많은 조건들을 따지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첫번째 집을 선택할 땐 어영부영하다 덜컥 계약했었는데. 2년동안 잡지식을 쌓아온건지 괜히 알고있는 정보들을 총동원해 이것저것 따지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처음엔 재미삼아 다닌다 했던 서울 동네투어가 슬슬 의무감이 되어갔다. 급하지도 않은걸 급하게 알아보다가 옳은 선택을 하지 못할까봐 당분간 서울 동네투어는 쉬기로 했다. 느긋하게 마음먹고 있으면 좋은 집을 만나겠지. 라고 생각하며 복잡해진 머릿속에서 잠시 단독주택을 지워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그 집을 만났다. 부동산앱을 통해 몇 평정도 되고 위치가 어딘지 정도만 알땐 남편이 너무 좁지 않을까 하며 직접 가볼까 말까 며칠을 망설인 집이었다. 교통의 요지, 초역세권이라는 단어에 그닥 흔들리지 않는 남편에게 매력을 주는 집은 아니었는데 남편은 실제로 그 집을 보자마자 여기다 싶었다고 했다. 80년도 한참 이전에 지어졌을걸로 추정되는 오래되고 낡은 집인데 나름 귀여웠고 또 멀끔했다. 나도 그 동안 단독주택 투어를 다니며 보자마자 마음에 든다 느낀 곳은 없었는데 그 집은 보자마자 '계약해야겠다!' 생각이 드는 곳이었다. 우리 둘, 우리 부부와 잘 어울리는 집으로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며칠 뒤 우리는 '그 집'을 계약했다. 그 집을 계약하며 만난 부동산 사장님과 이전 집을 매도하며 만난 부동산 사장님이 똑같이 말씀하신게 있다.
집도 보면 다 임자가 있나보다고. 여기저기서 많이 들어본 말이긴 하지만 이번엔 특별하게 들렸다. 우리가 계약한 그 집은 여기저기서 연락도 많이 오고 보러도 많이 왔는데 정작 수리가 엄두가 안나서인지 무엇 때문인지 매번 계약까지는 이루어지지 못했다고 했다. 그러다 젊은 부부가 찾아와 바로 이 집을 마음에 들어하고 계약까지 할 줄은 몰랐다 하시며 한 말씀이었다.
우리는 용기도 가상하게 이전 집을 매도하기 전에 주택을 계약하는 모험을 감행하기도 했는데 코로나가 막 시작되는 시기였음에도 집을 예쁘게 잘 사용해줄 것 같은 임자를 만나 예상보다 빠르게 매도를 했다. 그때도 부동산 사장님은 임자를 잘 만났다고 하셨다.
이사 소식을 접한 지인들은 원래의 집이 아깝지 않느냐며 다들 놀라워했다. 이사 몇 달 전까지도 새로 스위치를 달고 타일의 매지도 교체하며 오래 살 집처럼 다듬어왔는데 갑자기 이사를 결정하게된게 이상하기도 했다. 다른 것도 아니고 집의 매매와 매도를 너무 쉽게 결정해버린 우리가 웃기기도 하고 스스로 걱정되기도 했다. (남편은 절대 쉽게 결정한게 아니라고 하긴 했다. 고민의 시간만 반년이었다며)
양가의 부모님께도 집 계약까지 다 하고나서야 말씀드렸다. (아마도 우리 / 나의 인생 최대의 일탈이었다고 생각한다.)
'그 집'의 공사 기간동안 각자 본가에서 지내며 남편과 이산가족 모드로 지내게 되었다. 가장 더울 때를 피해 공사하고 싶었지만 어쩌다보니 가장 더울 때 공사를 하게 되었다. 이 글을 쓰기 시작한 건 이사도 가기 전이었지만 이 글을 마무리하는 오늘은 벌써 공사 5주차에 접어들기 하루 전이다. 내가 보기엔 아직도 공사판 그 자체인데 조적 사장님 말로는 70프로는 끝난거라고 하신다.
공사가 끝날 때까지 (아파트 리모델링보다 훨씬 험난한) 협소주택 리모델링 과정을 남겨보려 한다. 이미 글로 남길만한 마음고생 에피소드가 몇 개 쌓여있다. 하지만 남은 공사기간 동안은 글로 남길만한 이슈가 없어도 좋으니 아무 사고 없이, 큰 일 없이 무사히 공사가 끝나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