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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곱글자부부 Apr 25. 2021

서울에서 2평 정원을 가졌다. (4)

정원 : 더 파이널


공사의 시작은 자갈을 들어내는거였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마당은 평평하지 않고 생각보다 많이 굴곡져 있었는데 아마도 예전에 배수가 잘 될 수 있게 하기 위해 그리 만들었던 듯하다. 그래서 자갈도 배수구 근처로 갈수록 많이 쌓여있었다. 어느정도 깊이냐 하면 깊은 곳은 대략 손 길이보다도 더 들어가는 정도로 깊었다. 아마도 들어내야할 자갈의 양이 꽤나 많을 것 같았다. 처음 계획한 자갈을 바깥으로 옮기는 방법은 2층 도로쪽 창문으로 자갈이 든 마대를 던지는 방법이었다. 마대를 들고 좁은 계단으로 왔다갔다 하는 일이 번거로울 수 있어 이 방법을 시도하셨지만 자갈이 생각보다 무거운지 조금만 담았는데도 마대가 터지는거였다. 결국은 마대 여러봉지에 나눠담은 자갈을 대부분 계단을 통해 밖으로 옮겼다.


퍼내도 퍼내도 끝이 없던 자갈...
처음의 주황색 타일이 드러났다.

주말이 지나고 월요일, 방수 공사를 했다. 정원을 예쁘게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건 방수였다. 집 공사때는 마당 타일의 깨진 부분 위주로 방수제를 바르는 정도로 끝냈었다. 노후화된 타일이라 그 상태로 오래 두면 이격이 발생할게 분명했고 그러면 언젠가는 바로 아래, 1층의 화장실로 물이 샐 수 있었다. 만약 정원을 만들고 1층에서 물이 새면 흙을 다 뒤집을 수도 없는 일이고 그때는 답도 없을 것이니 방수공사에 특별히 신경써달라고 부탁드렸다.  


마당 바닥 전체와 흙이 올라오는 벽 아랫 부분까지 모두 방수작업이 들어갔다. 본드냄새와 비슷한 엄청나게 독한 방수제 냄새를 맡으며 직접 공사하시느라 대표님 부부가 정말 고생을 많이 하신 날이었다.

초여름 같은 더위가 왔던 주에 방수 공사를 해서인지 2-3일이 지나니 완전히 방수제가 말랐다.


목요일, 밑작업을 하러 대표님 부부가 다시 방문하셨다. 밑작업이라 함은 흙과 나무를 올리기 전에 방근시트를 까는 일이었다. 나무의 뿌리는 생각보다 강력해서 보통 실내 건물에 인공적으로 화단을 만들면 뿌리가 건물 틈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균열을 만들 수 있다고 한다. 그걸 막기 위해 방근시트를 까는 것이었다. 마당의 너비를 잰 뒤 실내에서 방근시트를 크기에 맞게 잘라 제일 먼저 바닥에 얹었다. 그리고 그 위에는 배수판이라는 것을 올리셨다. 배수판의 모양은 계란판 같았는데 그게 물이 흘러갈 수 있도록 해주는 역할을 한다고 하셨다. 이제는 진짜 끝. 인줄 알았는데 마지막으로 그 위에 부직포 같은걸 한겹 더 덧대셨다. 이 것의 역할은 흙이 빠져나가지않도록 막아주는 역할이었다. 가드닝 또한 베이스가 가장 중요하구나 싶었다. 방수제와 꼼꼼한 밑작업을 보니 올해 장마에도 거뜬하겠구나 싶어 마음이 놓였다. 약 3시간 동안 밑작업을 하시고 5시가 다 될 무렵 끝이 났다.


생각보다 손이 많이 가는 것 같던 밑작업


다음날인 금요일, 드디어 나무가 들어오고 정원이 완성되는 날이었다. 아침 일찍부터 작업이 시작되었다. 사다리차 그리고 흙과 나무를 심은 트럭이 집 앞에 도착했다. 미국 산딸나무와의 첫만남이었다. 묘목은 검은 포대에 감싸져 끝부분만 빼꼼히 고개를 내밀고 있었는데 아기를 낳아본 경험은 없지만 마치 포대기에 쌓인 아기와 첫 만남을 하는 듯 했다. 사진에서 본 것과 똑같이 크림색의 꽃잎을 지닌 청순한 나무였다.



나무를 집으로 들이는 방법은 가히 스펙타클했다. 일전에 사다리차 사장님이 집에 한 번 방문하신 적이 있었는데 나무 및 흙을 어떻게 옮기면 될지 파악하시기 위해서였다. 키가 큰 나무를 마당으로 들여오려면 도로쪽에 사다리차를 놓고 지붕 위로 나무를 올려 마당에 안착시키는 방법밖에는 없었기 때문이다.


드디어 묘목 무사착륙

이끼나 작은 식물들, 일부 가벼운 짐은 대표님 부부와 그날의 작업자분 두분이 직접 계단을 통해 2층으로 옮기셨고 나머지는 모두 사다리차를 이용해 지붕으로 배송되었다. 흙을 어느 정도 먼저 깐 뒤 지붕을 통해 묘목을 마당으로 이동시켰다. 생각보다 키가 커서 놀라긴 했지만 수형도 너무 예뻤고 가지가 굵지 않아 채광을 방해하지도 않을 것 같았다. 나무가 들어와서 심겨지는 순간,  기분이 오묘했다. 화분으로 식물을 데려올 때랑은 또 다른 느낌이었다. 화분에 있는 나무와 아예 집 안의 땅에 심겨지는 나무, 물론 둘 다 책임감이 막중하지만 아무래도 후자는 더욱 그랬다.


도착하신 이후부터 정신없이 움직이시던 대표님은 나무가 들어오고 자리를 잡고 나니 그제서야 마음을 놓으시는 듯 했다. 잘 어울릴까 걱정 했는데 예뻐서 너무 다행이라고 말씀하시며 한결 편해진 얼굴로 웃으시는 모습을 보니 대표님이 이 일에 얼마나 진심을 다했는지가 느껴져 감동이었다. 단지 클라이언트에게 의뢰받은 작업이 아닌, 내 공간을 꾸미는 것처럼 고민하고 몰입해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전문가. 다시금 대표님 부부에게 이 작업을 맡긴건 정말 잘한 일이었다고 생각했다.


생각보다도 더 예뻤던 돌, 이끼, 비비추, 섬백리향의 조합


나무를 먼저 위치시킨 후 지붕을 통해 흙을 위에서 부어 마저 채웠다. 실내에서 봤을 때 유리블럭쪽 벽면쪽으로 갈수록 봉긋하게 높아지는 형태로 흙이 채워졌다. 그래야만 나무가 더 잘보이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하셨다. 나무 근처는 마치 섬처럼 돌과 이끼, 그리고 비비추와 보랏빛의 섬백리향이라는 지피식물로 꾸며졌다. 지피식물을 세월이 지남에 따라 주변으로 번지기 때문에 약간의 거리를 두고 심어졌다. 이끼영역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은 마사토로 채웠다.


우리가 바랐던 상상 속의 정원이 실현된 순간이었다. 대표님과 첫 미팅부터 그 이후의 대화들을 통해, 아마 구체적으로 원하는 그림을 말씀드리지 않아도 알아서 잘해주실거라는 무한 신뢰감이 들었었는데 우리의 추측은 정확했다. 아니다. 생각했던 것보다 더욱 우리집에 어울렸고 너무 예뻤다. 점심시간을 틈타 잠깐 집에 들린 남편은 보자마자 말을 잇지 못하며 이런 비유를 들었다.


동네에 작은 갤러리가 생겨서 들어가 봤는데
피카소랑 모네랑 막 그런 그림들이 걸려있는 느낌이다.

통창으로 보이는 새로운 정원은 진짜 작품 같았다. 이런 작품이 공공장소도 아니고, 카페도 아니고, 매일매일 생활하는 우리 집에 있을 수 있다고? 내일 아침 자고 일어나면 바뀌어있는 마당의 모습이 왠지 낯설게 느껴질 것 같았다.



이 정원을 통해 곧 느끼게 될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이 기대되었다. 조만간 꽃은 지고 푸른 잎사귀들이 나뭇가지를 가득 채울 것이다. 지피식물들과 이끼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땅에 잘 어우러지겠지. 그리고 우리가 잘 키운다면, 열매도 맺을 것이다. 아기를 낳은 것도 아닌데 왜 자꾸 어깨가 무거워지면서 책임감이 막중해지는 것인지. 부디 몸살은 짧게 하고 우리 집에 잘 적응하길 바라본다.


전지한 산딸나무 가지 몇 개를 따로 챙겨주셔서 화병으로.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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